"코로나19 확진됐다고 퇴사 종용"..치료 후에도 차별과의 싸움

김세희 2020. 11. 30.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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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확진되면 직장이나 학교 등 사회로부터 잠시 격리돼 치료를 받은 뒤 완치 판정을 받고 일상으로 복귀합니다. 독감을 앓게 된 사람이 며칠 쉬었다가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 처럼 말이죠.

하지만 일부 코로나19 확진자들은 일종의 낙인이 찍혀 예전 자신의 자리를 되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힘들게 병과 싸우고 돌아왔더니 자신을 대하는 달라진 분위기를 마주한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 신입 직원 확진 받자 "인사상 확실한 불이익 주겠다" 공지

DB금융투자의 신입 직원이 지난 15일 확진 판정을 받자 다음 날인 16일, 한 지점에 "코로나 확진으로 징계를 할 수는 없겠으나, 확진 경위에 따라 승진/평가 등 인사상 불이익을 분명히 줄 것"이라는 공지가 내려왔습니다.

해당 공지는 "코로나 확진 사태로 현재까지 회사 내 50여 명의 직원이 검진을 받았고, 검진결과가 나온 19명은 모두 음성판정을 받았으나 음성으로 나오더라도 자가격리에 들어가 이번 검사로 낭비된 시간은 1명의 1년 치 근무시간에 해당한다"라며 "한 사람의 생각 없는 무책임한 행동이 어떤 나비효과를 가져오는지,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직원들에게 명확히 주지시켜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공지에 대해 노조는 시정 조치를 요구하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코로나19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감염되고 말고 할 일이 아닌데 승진과 평가 등 인사 불이익을 거론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정희성 민주노총 DB금융투자 비상대책위원장은 "불합리하고 부당한 처사기 때문에 시정 조치를 요구했지만, 사측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별것 아닌데 왜 이렇게 난리냐고 말했다"라며 "문제의식조차 없는 그런 인식 자체가 잘못됐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신입 직원이 입사해서 꿈을 펼쳐 나가려고 하는데 시작도 전에 이런 불이익을 당하면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냐"라며 "확진 판정이 나서 힘들 텐데 공지까지 보고 얼마나 답답했겠냐"라고 말했습니다.

DB금융투자 측은 "해당 공지는 특정 지역의 본부장이 작성했으며 본사 전체 차원의 공지는 아니다"라면서도 "공지 자체의 취지에는 공감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공지를 철회하거나 경위를 파악할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정부가 권고한 개인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아 확진 판정을 받을 경우 인사상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라며 "확진된 신입 직원의 경우 개인 방역수칙을 잘 지킨 것으로 파악돼 불이익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 "확진됐다고 퇴사 종용"…'코로나 낙인'과도 싸워야 하는 확진자들

직장인 김 모 씨는 5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할머니 장례식장을 찾아준 친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마련한 식사 자리에서 친구로부터 감염됐습니다.

김 씨는 확진부터 완치 이후까지 '해명의 시간'을 보냈다고 설명합니다.

확진 사실을 알리자 회사 측은 "어쩌다 걸렸냐, 조심하지 그랬냐며 걱정 같은 원망"을 했다고 합니다. 이어 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김 씨에게 "회사 사람들에게 누를 끼쳤으니 사과를 해야 하지 않겠냐"라고 말했고, 김 씨는 결국 감염 경위와 치료 상황 등을 상세히 적은 해명문을 작성했습니다.

김 씨가 작성한 해명문 일부


50여 일 만에 격리 해제된 뒤 출근하겠다고 말하자 회사 측은 "회사에 나오면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3주 정도 재택근무를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회사에는 김 씨가 출근하면 휴가를 가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재택근무 2주차쯤 회사 측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었으니 프리랜서로 자유롭게 일해보는 게 어떠냐"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김 씨는 4년을 다닌 회사를 나왔습니다. 친구도 비슷한 이유로 완치 뒤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회사뿐만이 아니었습니다. 3년을 다닌 헬스장에 운동을 다시 가고 싶다고 말했더니 "비즈니스에 위협을 가할 수도 있으니 경영진과 얘기해보고 알려주겠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김 씨에게 "재감염될 수도 있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김 씨를 보면 갑자기 안 쓰던 마스크를 쓰며 "다 완치된 거 맞냐, 음성 나온 거 맞냐, 너랑 있으면 코로나 걸리는 것 아니냐"라는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병과 싸우고 나오니 세상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김 씨는 병원 치료를 받으며 자신의 투병 상황 등 경험담을 SNS에 꾸준히 올렸습니다.

확진자나 그들의 가족 혹은 친구들이 찾아와 공감의 댓글을 남겼고, 조회 수만 24만 회를 넘겼습니다.

반응이 뜨거웠다는 건 확진자들을 향한 차별과 배제가 생각보다 일상적인 일이었다는 것의 반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김 씨는 확진 전후의 글을 모아 『코로나에 걸려버렸다』라는 책도 펴냈습니다.

■ "방역의 완성은 완치자들의 일상 복귀"…혐오와 차별 멈춰야

실제로 코로나19 확진자들은 낙인의 두려움을 크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경기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과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이 7월 발표한 '경기도 내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자 인식조사' 결과 확진자들은 '완치되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2.75점/5점 만점)이나 '완치 후 다시 감염될 수 있다는 두려움'(3.46점)보다 '주변에서 받을 비난과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3.87점) 더 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접촉자들도 감염 확진이 될 것에 대한 두려움(3.77점) 다음으로 접촉자란 이유로 주변으로부터 비난과 피해를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3.53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유명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감염 발생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면 가해자-피해자 구도로 확진자를 향한 낙인이 생길 수 있다. 그런 낙인은 감염병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도 "코로나19 초기 과도한 정보 공개와 사생활 침해, 구상권 청구 등으로 감염을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감염보다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더 두려워하는 흐름이 만들어졌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확진자와 완치자를 위한 비공식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는 김 씨


이어 "완치자 실태 조사가 부족하다"라며 "감염병 위기가 앞으로 계속 온다고 하는데, 그때마다 차별과 혐오, 낙인을 계속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 수집하고 조사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씨도 "사회로 돌아간 이들을 위한 가이드라인까지 마련돼야 완전한 방역이라고 생각한다"며 완치자들을 위한 비공식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들에게 '방역의 완성'이란 완치가 아니라 완치자들의 일상 복귀입니다.

김세희 기자 (3h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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