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中반도체, 기업 국유화하고 日브레인 영입

성호철 기자 2020. 12. 1.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美中, 테크 2차대전]

미국 하원은 오는 2일(현지 시각) ‘미국 증시에 상장한 외국 기업은 자국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퇴출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처리한다. 사실상 240여 중국 기업을 타깃으로 한 법안이다. 미 의회는 또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250억달러 보조금을 지급하는 반도체 진흥법을 만드는 데도 합의했다. 미국 정부는 이르면 다음 달 중국 반도체 위탁 제조(파운드리)업체 SMIC를 안보 위협 요인이라는 이유로 무역 제재 명단에 올릴 예정이다.

바이든 정권의 출범을 앞두고 미·중 테크 전쟁의 2막이 오르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화웨이·ZTE 등 중국 핵심 테크 기업을 정밀 타격하는 방식이었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 정부가 주도하는 반도체 굴기(崛起·우뚝 섬) 전반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법률과 규제 등 시스템을 통한 압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전열 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왕즈쥔(王志軍) 공업정보화부 부부장(차관)은 28일 중국 발전 계획 포럼에서 “그동안 반도체에 맹목적인 투자가 이뤄졌다”며 “인수합병을 통해 전략적 신흥 산업을 빠르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1조7000억위안(약 290조원) 규모의 50여 프로젝트가 진행됐지만 별다른 성과를 못 낸 데 대한 반성이다. 대안은 반도체 기업의 재편과 국유화, 일본을 통한 기술의 확보다. 미⋅중 반도체 전쟁이 예고된 가운데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는 한국 반도체는 위험한 외줄 타기를 강요받고 있다.

美에 맞선 中의 실험… 공산당이 반도체 회사 직접 운영

중국 반도체 굴기(崛起·우뚝 섬)의 선봉인 칭화유니그룹(清華紫光)은 지난 13일 상하이은행이 주관한 채권단 회의에서 13억위안(약 2200억원)의 회사채 만기 연장에 실패했다. 애초 만기 연장에 80% 이상 채권단이 찬성했는데, 뜻밖에 중국 국유기업 채권단에서 반대표가 나왔다. 일부에선 중국 정부가 칭화유니그룹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고 분석했다. 하지만 중국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은 정반대 해석을 내놓고 있다. 민간에 반도체 기업 경영을 맡기고 뒤에서 자금을 댔던 중국 정부가 미국의 정권 교체를 앞두고 국유화와 경영권 장악을 통해 반도체 산업을 직접 키우는 전략으로 선회하는 상징적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핵심 반도체 기업을 속속 국유화(國有化)하며 경영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중국은 수년간 수십조원의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미국 측이 건 특허 소송이나 장비 반입 금지와 같은 견제 탓에 세계 반도체 패권은커녕 중국 내 자급에도 실패했다. 이젠 민간에만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공산당 주도로 반도체 업계를 재편해 일사불란한 ‘원차이나 반도체’를 만드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인적·기술적 파트너를 대만에서 일본으로 바꾸려는 시도도 뚜렷해지고 있다.

◇공산당원이 경영권 장악

중국 국립대 칭화대학이 설립한 칭화유니는 양쯔메모리(YTMC), 유니SOC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양쯔메모리는 앞으로 10년간 메모리 반도체에 8000억위안(약 134조원)을 투자할 계획이고, 유니SOC는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화웨이의 자회사 하이실리콘과 함께 중국 최고로 꼽힌다.

이런 중국 반도체 굴기의 핵심 기업인 칭화유니에 최근 큰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회사채 만기 연장 실패 이틀 전인 지난달 11일에는 국유기업 칭화홀딩스의 룽다웨이 공산당 서기가 회사 경영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그가 곧 공동 회장에 취임한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진 엔지니어 출신의 자오웨이궈 회장이 단독 회장(CEO)이었다. 만기 연장 거절은 공산당의 경영 참여 명분이자, 민간인 경영자에 대한 경고였던 셈이다. 중국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한 기업인은 “당의 대변인 격인 서기가 CEO 역할까지 맡는 것은 이례적이다”라고 했다.

칭화유니는 또 지난 6월에는 ‘국유기업 양강산업그룹이 지분 33%의 신규 주주로 참여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유와 시점은 밝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자오웨이궈 회장이 창업한 민간기업 치엔퀀투자그룹의 칭화유니 지분은 49%에서 33%로 줄고, 중국 정부 지분(칭화대와 양강산업)은 66.6%가 된다.

다른 중국 반도체 기업도 속속 국유화되고 있다. 이달 중순 반도체 위탁·제조(파운드리) 업체 훙신반도체(HSMC)는 민간 지분을 모두 우한 지방정부 소유 기업에 넘겼다. 지방정부가 100% 지분을 확보한 것이다. 세계 5위 반도체 파운드리인 중신인터내셔널(SMIC)은 1·2대 주주가 모두 국유기업(다탕홀딩스 17%, 신신홍콩캐피털 15.76%)이다. D램 제조업체인 푸젠진화(JHICC)의 1대 주주인 푸젠진장산업발전그룹(35.86%)도 국유기업이다. 푸젠진화는 중국 공산당이 경영권을 완전히 가져간 사례다. 이 회사는 작년 1월 제1차 사내 당원대회를 열고 선거를 통해 신임 회장으로 루원성 부회장을 선출했다. 주주총회가 아닌 공산당원 대회에서 CEO를 선출한 것이다.

◇일본에 손 내미는 중국

지난 8월 중국 포털 바이두는 “중국 반도체의 빠른 진격에는 백전노장 일본인이 있다”는 기사를 올렸다. 당시 칭화유니의 자회사 서안칭화유니가 8기가바이트의 DDR4램을 공개했는데 그 배경에 일본인이 있다는 것이다. 바이두는 “72세 일본인인 사카모토 유키오 전(前) 엘피다메모리 사장이 작년 11월 칭화유니그룹의 고급부총재 겸 일본 지사장으로 취임해 D램 개발에 전기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사카모토는 한때 ‘한국 타도’를 외치며, ‘히노마루(일장기) 반도체’인 엘피다를 이끈 인물이다. 사카모토는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 인터뷰에서 “내년 봄 경쟁력 있는 D램을 내는 게 목표”라며 “일본인 최고 개발자 100명을 모으는 중”이라고 말했다.

사카모토는 지난달엔 대만인 가오치취안 D램 경영·개발 총괄이 퇴임하자, 그 뒤를 이었다. 세계 반도체업계에선 영어 이름인 찰스 카우로 유명한 가오치취안은 대만 D램 업체인 난야의 CEO를 역임, ‘대만 D램의 대부’로 불린다. 2015년 칭화유니에 와, 128단계 적층 3차원 플래시 메모리의 개발·양산을 이끌었다. 대만 인재로 한계를 느낀 중국이 일본에 러브콜을 던지는 것이다. 과거 반도체 1위였던 일본은 반도체 산업은 붕괴했지만 인재와 기술은 여전히 최고 수준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의 고위 임원은 “중국은 2025년 반도체 자급 70%가 목표지만, 올해도 20%에 그쳤다”며 “실패를 인정한 중국이 국유화로 장기전을 대비하면서 일본과 연대로 돌파구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