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공사 날벼락… 위층 주민 2명이 유독가스로 사망

군포/권상은 기자 2020. 12. 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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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 아파트 화재 현장 4시간 감식, 폴리우레탄폼 캔 15개·시너통 발견

지난 1일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아파트 화재는 인테리어 공사를 하던 12층 한 가구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피해는 해당 가구보다 이웃 주민들이 더 컸다. 불이 난 가구의 위층 5가구에서 2명이 사망하고, 7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화마를 피해 옥상으로 급박하게 대피하던 주민은 유독가스에 희생된 반면 집 안에 머물렀던 주민은 봉변을 면했다. 특히 최근 아파트 인테리어 공사가 늘어나면서 주민의 불안을 더하고 있다. 인테리어 공사는 따로 신고 등 규제를 받지 않고 대개 영세 업체가 맡기 때문에 안전 관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경찰의 수사 내용과 본지 취재 등을 종합하면 화재가 발생한 1205호에서는 1일 오전부터 작업자 5명이 투입돼 창문 섀시 교체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국인 1명과 외국인 4명이었다. 집 안에는 주민 3명도 함께 있었다. 화재 발생 직후 작업자 2명은 거센 불길을 피하다 추락해 숨졌다. 나머지 3명과 주민 등 6명은 긴급히 건물 바깥으로 대피했다.

화재 현장 합동 감식 - 2일 오전 화재로 불에 탄 경기 군포시 산본동 아파트에서 경찰과 소방 당국이 화재 현장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전날 이 아파트 한 가구에서 인테리어 공사를 하던 중 불이 나 작업자 2명과 주민 2명이 사망했다. /뉴시스

그러나 이웃 주민들은 삽시간에 퍼진 유독가스와 검은 연기 때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생사의 고비를 만났다. 119에 화재 신고가 접수된 오후 4시 37분 이미 불길과 연기가 1205호 외부로 분출되고 있었다. 아파트는 15층이며 3·5호 라인이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1205호 아래층 주민들은 이때까지도 대피에 장애가 없었다. 그러나 위층 주민들은 12층 아래로 탈출하는 길이 막혔다.

이 때문에 당시 1303호 주민 A(여·36)씨, 1505호 주민 B(여·52)씨와 C(23)씨 모자는 옥상으로 대피를 시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구조대원이 도착한 이후인 오후 4시 56분쯤 17층 엘리베이터 기계실 앞에서 A씨와 B씨는 질식해 숨지고, C씨는 중상을 입은 상태로 발견됐다. 옥상 통로는 16층에 있지만 구조가 복잡하고, 이들은 사전에 지식이 없어 꼭대기까지 올라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화재 현장인 1205호 바로 윗집인 1305호에 있던 주민 3명은 문을 닫아 연기를 차단하고 구조대원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구조됐다. 또 1205호 옆집인 1203호에는 연기와 불길이 번졌으나 안에 있던 20대 주민은 인테리어 작업을 위해 나와 있던 사다리차 기사 한상훈(29)씨에게 구출됐다. 한씨는 사다리차로 1503호의 10대 남매 2명도 구출했다. 남매 가운데 한 명은 3일 수능시험을 치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 현장 합동 감식 - 2일 오전 화재로 불에 탄 경기 군포시 산본동 아파트에서 경찰과 소방 당국이 화재 현장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전날 이 아파트 한 가구에서 인테리어 공사를 하던 중 불이 나 작업자 2명과 주민 2명이 사망했다. /뉴시스

특히 주민들은 계단 통로를 타고 급속하게 확산한 유독가스 때문에 참변을 만났다. 화재로 발생하는 유독가스에는 일산화탄소, 맹독성 물질인 시안화수소 등이 포함돼 있다. 특히 우레탄폼이 내뿜는 시안화수소는 연기를 한 모금만 들이켜도 의식을 잃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찰 등의 합동 감식에서 1205호 실내에서는 폴리우레탄폼 캔 용기 15개와 우레탄폼 분사기, 시너 통이 발견됐다. 우레탄폼은 창문틀과 섀시를 메우기 위한 마감재로 사용된다. 불이 쉽게 붙고 유독가스가 대량으로 배출되며 유증기가 발생하기 때문에 밀폐된 공간에서는 폭발하기 쉽다. 38명이 사망한 4월 이천 물류센터 화재에서도 우레탄폼이 발화 원인이 됐다.

특히 거실에는 전기난로도 있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대피한 외국인 근로자들로부터 “펑 소리가 나서 보니 전기난로에서 불이 올라오고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가연성 물질인 우레탄폼을 다루면서도 적절한 안전 조치 없이 전기난로를 함께 가동하는 등 현장 관리가 부실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소방 관계자는 “아파트 화재 시 외부에 연기가 많아 밖으로 대피가 어려울 경우 경량 칸막이를 파괴하고 옆집으로 대피하거나, 실내의 안전한 공간에 대피해 소방대원을 기다리는 게 안전하다”고 말했다.

한편 대피하다 숨진 1303호 주민 A씨는 간호사로 이날 하루 연차휴가를 쓰면서 여섯 살 아들을 태권도장에 보내고 집에 혼자 있다가 희생됐다. 1505호 주민 B씨는 이 아파트로 이사 온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발코니에서 작업하다 떨어져 숨진 작업자 C씨는 내년 2월 결혼을 앞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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