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밤 원전파일 444개 지운 그들 "감사 전날 삭제는 우연"

신진호 2020. 12. 3. 05: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전지검, 2일 3명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감사원 조사 앞두고 월성 원전 자료 삭제
공무원들 "감사 전 자료삭제 우연의 일치"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2일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이들에 대한 혐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전지검은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과 관련, 2일 오후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진은 대전지검 모습. 신진호 기자


대전지검 형사5부(이상현 부장검사)는 이날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과 감사원법 위반 혐의로 A씨(53) 등 산업부 국·과장급 공무원 3명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은 감사원 자료 제출 요구 직전인 지난해 11월 월성 원전 1호기 조계 페쇄 결정 감사가 착수되자 관련 증거 자료와 청와대 보고 자료 등 444개 파일의 삭제를 지시하거나 이를 실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과 감사원 등에 따르면 A씨의 부하 직원 B씨는 감사원 관계자와의 면담을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1일 오후 11시쯤 정부대전청사 산업부 사무실에 들어가 2시간가량 월성 1호기 관련 자료 444건을 삭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일은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은 일요일이었다. 평일에는 야근하는 직원이 많아 자료 삭제에 부담이 되자 휴일을 택했다고 한다. 삭제를 지시했다는 간부는 “주말에 삭제하는 게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파악됐다. 산업부는 감사원에 삭제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전국 검찰청 순회 간담회를 재개한 윤석열 검찰총장(왼쪽부터)이 지난 10월 29일 대전지검에 도착해 강남일 대전고검장, 이두봉 대전지검장 등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감사원 감사 결과 B씨는 중요하고 민감하다고 판단되는 문서를 먼저 삭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처음에는 삭제한 뒤 복구해도 원래 내용을 알아볼 수 없도록 파일명을 수정한 뒤 저장·삭제하는 방법을 썼다. 하지만 삭제할 자료가 너무 많자 아예 삭제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이후에는 폴더 자체를 지운 것으로 나타났다.

B씨는 감사원 조사에서 “감사 관련 자료가 있는데도 없다고 진술하면 마음에 켕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과장이) 주말에 자료를 삭제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 밤늦게 급한 마음에 그랬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대전지검은 지난달 5일 산업부와 한국수력원자력 등을 압수수색한 뒤 A씨 등을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했다. 하지만 삭제 지시와 실행 과정에서 피의자들 사이에 진술이 엇갈리자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구속 수사로 방향을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자료 삭제 이유가 석연치 않은 점에 주목하고 있다. A씨 등은 “감사원 조사 하루 전에 자료를 삭제한 건 우연의 일치였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대전지검 검사와 수사관들이 지난달 6일 오전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등과 관련, 경북 경주시 양북면 한국수력원자력(주) 본사에서 이틀째 압수수색을 하기 위해 들어가고 있다. 뉴스1


앞서 산업부는 지난해 11월 26일 월성 1호기 관련 내부 보고자료와 청와대 협의 자료 일체를 제출하라는 감사원 요구를 받았다. 이후 대통령 비서실에 보고한 문서 등을 빼고 소송 동향 등 일부 자료만 같은 달 27∼28일 감사원에 보냈다. 삭제는 그로부터 사흘 뒤 이뤄졌다.

검찰은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의 월성 원전 조기 폐쇄 방침 결정과 산업부가 이를 한국수력원자력에 전달하는 과정에 청와대 관계자가 관여했는지 수사 중이다. 검찰은 A씨 등에 대한 구속 여부가 결정된 뒤 백 전 장관과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도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대전=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