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부장판사 "법관 사찰은 재판의 독립성 침해 위험..법관회의에서 공론화해야"

박은하 기자 2020. 12. 3. 16: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대검찰청의 ‘주요 사건 재판부 분석’은 법관과 재판의 독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의견이 법원 내부망에 올라왔다.

청주지방법원 송경근 판사는 3일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글을 올려 “오는 7일 예정된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송 판사는 “소추기관인 검찰이 이를 심판하는 기관인 법관을 사찰했다고 충분히 의심할 만한 정황이 나왔다”며 “검찰에서는 ‘판사의 재판 스타일을 파악하여 공소유지를 위한 참고자료를 만든 것’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검찰의 책임있는 사람 그 누구도 사과는커녕 유감 표명 한 마디 없이 당당하다”고 밝혔다.

송 판사는 “어떤 사람들은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까지 제한·침해할 수 있는 강력한 강제수사권을 가진, 그것도 그 정점에 있는 국가 수사기관의 행위를, 로펌의 변호사나 스포츠팀 감독과 같은 개인의 행위와 동일시하여 비교한다. 너무나 옹색하다”고 했다. 그는 “경찰청 범죄정보과가 서울중앙지검의 주요 검사들에 대하여 평소 성향, 수사지휘 방식, 세평은 물론 가족이나 지인 관계, 취미, 학생운동 참여 경력 등 지극히 개인적인 사항들을 수집하여 파일로 만든 다음 이를 경찰청장에게 보고하고 이를 다시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에 넘겼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겠느냐”고 물었다. 검찰·법원의 관계를 경찰·검찰의 상황으로 빗댄 것이다.

송 판사는 “해당 법관 개인이나 재판부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전국법관회의에서 의견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논란을 만들기를 꺼려하는 사법부 내부의 분위기를 지적하며 “법관은 국민이 들고 일어나면 뒤늦게 과실만 받아먹었다”고 말했다. 법관은 판결을 통해 최종적인 사법적 판단을 해야 할 기관이니 이 문제를 법관회의 안건으로 삼지 말자는 의견을 겨냥한 것이다.

그는 “게다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집행정지결정이 내려지자마자 대검은 법원으로부터 적법하게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이를 집행한 감찰부에 대하여 ‘상부 보고 해태’를 이유로 전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며 “우선순위가 바뀌어도 너무 바뀐 거 아니냐. 왠지 지난 독재정권·권위주의정권 시절의 기시감이 드는 것은 저의 지나친 망상인가”라고 했다.

송 판사는 ‘법관은 그날그날의 날씨를 고려해서는 안 되고 그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는 고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의 말을 인용하며 “남이 짜놓은 프레임에 습관적으로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무엇이 지금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시대정신인지’를 창의적으로 생각하면서 형식적인 균형이 아닌 실질적으로 균형감을 갖춘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4시를 기준으로 해당 글에는 “원론적인 수준에서의 의견 표명은 필요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판사 문건의 문제점에 공감하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치적 논쟁에 법원이 휘말릴 우려가 있다”는 댓글이 올라왔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