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M] "24시간 불 밝힌 대한민국"..야간 노동자의 하루

이미경 2020. 12. 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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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 앵커 ▶

최근 야간 택배노동자들의 잇단 사망 사건으로 야간 노동자들의 열약한 근무 환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야간 노동자의 통계조차 제대로 집계되지 않을 정도로 야간 노동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실정인데요.

오늘 집중취재M에서는 밤낮이 바뀐 환경으로 과로에, 수면 장애, 사회적 단절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노동자의 하루를 따라가 봤습니다.

◀ 리포트 ▶

(*오후 7:00 경기도 파주시)

오후 7시 전제희씨는 파주의 집을 나섭니다.

남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출근한 지도 벌써 1년 6개월 째.

어느새 어둑한 출근길이 익숙합니다.

[전제희/야간청소노동자] "아무래도 남과 밤이 바뀌어서 처음에는 조금 그랬는데, 어차피 제가 일을 가진 이상 해야 되기 때문에…"

(* 오후 7:30 시장 순댓국집)

[전제희/야간청소노동자] "안녕하세요. 포장 좀 하겠습니다. 순댓국 2인분."

출근 전 시장에 들러 직장 동료들과 함께 먹을 야식거리를 챙깁니다.

[전제희/야간청소노동자] "국물을 식구들이 많아서 좀 많이 주셔. 식구들 같이 많이 먹어야 되니까."

[전제희/야간청소노동자] "잘먹을게요."

(*오후 8:00 버스정류장)

전 씨가 버스정류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데요.

바로 퇴근하는 아내.

낮에 식품회사 생산직에서 근무하는 아내와 하루 중 유일하게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전제희/야간청소노동자] - 애들 다 나갔더라고 - 다 나갔어? - 응 다 나갔어. - 밥 없어서 못 먹었겠네? - 감자국 말았는데, 그거 좀 쉰 것 같더라. - 쉬었어. - 근데 속은 괜찮아. - 아휴. - 얼른 올라가.

5분도 안되는 짧은 대화후 전 씨는 서둘러 출근을 위해 지하철을 탔습니다.

(*오후 9:20 서울역)

전제희씨는 서울역에서 야간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전제희/ 야간청소노동자] "형님 오셨어요? 잘 쉬셨어?"

도착 후 옷을 갈아입고, 청소 도구들을 챙기고, 출근 일지까지 적고 나면 어느새 업무 시작 시간입니다.

[청소 노동자들] "안전! 안전! 파이팅!"

(*오후 10:00 서울역 광장)

오늘은 제일 먼저 역 광장 청소에 나섰습니다.

광장 구석구석을 돌며 비에 젖은 종이 상자를 줍고 숨어있는 담배꽁초도 놓치지 않습니다.

거세진 빗줄기에도 청소는 계속됐습니다.

이어진 역사 청소.

이용객들 사이사이를 돌며 쓰레기를 쓸고 컵을 줍고 바닥 청소를 합니다.

이렇게 전씨가 쉴틈 없이 청소하며 걷는 걸음만 하루 약 3만 여보.

청소를 시작한지 채 2시간도 안돼, 전씨의 이마는 땀에 젖었습니다.

[전제희/야간청소노동자] "쫓아오기 힘드시죠? 이렇게 빨리빨리 하지 않으면 업무를 할 수 없어요."

(*오전 12:00 휴게실)

오전 12시.

앞으로 두시간 반 동안이 야간 청소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법정 휴게시간입니다.

졸음이 쏟아지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습니다.

[전제희/야간청소노동자] "더 자야 하는데, 오히려 잠깐 잠드는 게 일어날 때 더 많이 피곤하더라고요. 잠이 덜 깨서 그런지."

그렇다고 낮에 쉽게 잠 들지도 못합니다.

[전제희/야간청소노동자] "낮에 잠자는 시간을 놓쳐버리면 잠이 잘 안 오더라고요. 전화가 울린다던가 하면 중간중간 깨기 때문에 깊게 자진 못하죠. 많이 자면 4시간에서 5시간, 덜자면 3시간 4시간…그렇게 자면 머리가 무겁죠."

[전제희/야간청소노동자] "형님 불좀 꺼줘요."

이 날도 전씨는 눈만 감은 채 휴식을 취했습니다.

야간 노동자 대다수는 전씨처럼 수면장애에 시달립니다.

야간 전담근무 간호사 10명 중 8명이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야간 배달노동자] "잠을 자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게 잠을 더 안 오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동네의원에서 수면제 같은 것도 처방 받아 먹고."

[임상혁/녹색병원 원장] "밤에는 쉬고, 낮에는 일하는 생체리듬이라는 게 있는데요. 야간노동은 그 생체리듬을 파괴해요. 그러면 잠을 못자게 되고 그렇죠. 잠못자면 어떻게 되나요? 화나고 우울하고, 이래서 정신적 질환들도 생기고요. 뇌혈관이나 심장혈관에 질환도 생기게 됩니다."

이진영씨(가명)는 지난 10월, 야간 근무 중 자신이 운전하던 택배트럭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도기성/사고 현장 출동 소방교] "환자분은 덤프트럭 차 안에서 운전석에 앉아 계셨고요. 호흡이랑 맥박이 없는 걸 확인한 후에…"

이 씨도 야간노동자들의 고질적인 문제인 수면 장애에 시달렸습니다.

[고 이진영씨(가명) 사위] "안방에 커튼도 다 달아드리고 문도 다 닫아서 그렇게 자게끔 했는데, 밤하고 낮하고 바뀌다 보니까 많이 잠을 못 주무셨습니다."

거기에 더해진 과로.

[고 이진영씨(가명) 사위] "보통 (오후) 10시에 출근해서요. 부산이라든지 광주로 근무를 나가셨습니다. 집에 오시면 아침 9시에서 11시 사이… "

[고 이진영씨(가명) 사위] "돌아가시기 3주 전인가 2주전에 장인어른이 처음으로 힘들다 하면서 "이직해야겠다"…살이 3~5Kg 정도 빠졌다고."

유족들은 평소 건강했던 이 씨의 죽음이 아직 믿기지 않습니다.

[고 이진영씨(가명) 사위] "며칠전에도 저희 딸이 일기를 썼거든요. 할아버지 보고 싶다고 그런 일기를 썼더라고요. 그걸 보니까 참 마음도 많이 아프고."

야간노동으로 인한 사회적 단절도 흔히 겪습니다.

[김영선/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야간노동의 불규칙한 특성이 그런 사회관계를 좀 불편하게, 다르게, 어렵게 하는 요인이 돼요. 잠을 충분히 자고 싶어하는 남편과 가정생활을 꾸리는 아내와 또는 뛰어놀려고 하는 아이들의 이해가 서로 달라지면서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오전 2:30 서울역)

새벽 2시 30분, 동료와 새벽 밥을 먹은 전씨는 다시 역사 청소에 나섰습니다.

이용객들의 출입이 통제되는 4시까지는 못 치운 역사 곳곳을 청소합니다.

어두운 기차 플랫폼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를 조심해야 합니다.

[전제희/야간청소노동자] "아이고 위험하게 병이 깨졌네…"

[전제희/야간청소노동자] "주변이 어둡잖아요. 저희들은 이 안에 내용물을 알 수가 없으니까 무심코 하다가 찌르는 경우도 있고…"

최근 늘어난 마스크 쓰레기는 불안하기도 합니다.

이용객들의 통제가 풀려 조금씩 붐비기 시작하는 역사.

(*오전 5:50 서울역)

이제 근무를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청소노동자들] -고생들 너무 많이 하셨어요. -다 젖었어 다젖었어 싹 다젖었어.

[전제희/야간청소노동자] "안전하게 마감해서 좋고요. 고객들도 좋아하실 것 같고 뿌듯합니다. 힘들어도 가장이니까 해야죠."

24시간 불 꺼지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

그 이면엔 편리와 안전을 이유로 자신들의 밤과 잠을 희생한 야간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영상취재:박종현·최재훈/영상편집:김정은·강다현/취재구성:이미경/내레이션:김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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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기자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desk/article/6008697_325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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