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 실험실 성층권 풍선 뜬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한국천문연구원 공동 연구팀은 지난해 9월 태양의 주변에서 나타나는 코로나(태양풍)의 온도와 방출 속도를 동시에 관측하는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코로나는 태양 대기의 가장 바깥층을 구성하고 있는 엷은 가스층으로 온도는 100만~500만도에 이른다. 태양 표면 온도인 6000도 보다 월등히 높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아 과학계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이런 미스터리를 푸는 데 관측정보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두 나라 연구팀은 코로나그래프라는 관측장비를 개발했다. 하지만 지구 대기가 코로나의 빛을 대부분 차단하기 때문에 지상에선 관측이 어려웠다. 고민을 해결해준 것은 바로 성층권 풍선이다.
○ 40km 상공 올라가는 대형 풍선
성층권 풍선은 지구 상공 10~50km의 성층권까지 올라가는 대형 풍선이다. 크기가 폭 140m 높이 216m로 축구장만 하다. 풍선 안에는 산소보다 가벼운 헬륨이나 수소 가스가 들어간다. 풍선에 이들 기체를 채우면 시속 20km 정도의 속도로 수직으로 올라간다. 연구팀은 이 성층권 풍선에 코로나그래프를 달아 지구 대기가 희박한 약 40km 상공에 띄운 뒤 코로나의 온도와 방출 속도를 동시에 측정하는데 성공했다.
성층권 풍선은 코로나 관측 외에도 이전부터 다양한 목적의 과학 관측장비로 사용되고 있다. 날씨와 대기, 기후을 관측하는 기상풍선과 우주관측 풍선, 미세운석입자 수집풍선, 우주광선연구용 풍선, 자기장관측 풍선 등 그 종류만 수십개에 이른다. NASA는 컬럼비아과학풍선시설(CSBF)을 1961년 설립해 성층권 풍선 발사 서비스를 과학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도 성층권 풍선을 과학 연구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성층권 풍선을 과학 관측에 활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운용 비용이다.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인공위성은 쏘아올리고 유지 보수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성층권 풍선은 운용 비용이 100분의 1에서 10분의 1로 저렴하다. 인공위성은 크기에 제한이 있지만 성층권 풍선은 지상에서 사용하는 장비를 그대로 띄울 수 있다. 언제든 회수하거나 반복해 재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이런 이유로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사용할 각종 과학장비를 사전 검증하는데 성층권 풍선을 활용하고 있다. 코로나그래프 연구에 참여했던 조경석 천문연 책임연구원은 “코로나그래프의 성능 검증을 마치는대로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설치될 예정"이라며 "이번 코로나 관측은 장비를 우주로 쏘아 올리기 전 기술 검증 과정에서 거둔 값진 성과"라고 말했다.
○구글도 인터넷 서비스 위해 성층권 풍선에 관심
성층권 풍선은 별도 추진장치가 없어 자세와 위치를 제어하기 쉽지 않다. 성층권에는 공기의 상하이동이 비교적 덜하고 구름이 없지만 거친 바람이 부는 영역이 있다. 고도 12km 부근에서 바람이 가장 강하고 고도 18~20km에서 가장 약하게 분다. 이런 이유로 성층권 풍선은 바람을 이겨내고 제 위치를 지키고 있어야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지상국에서 풍선 제어시스템을 통해 제어를 시도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바람에는 대응이 어렵다.
구글 브레인팀은 성층권의 거친 바람에 대응하는 인공지능(AI) 풍선 자율제어시스템을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3일 공개했다. ‘스테이션시커’라 부르는 이 시스템은 심층강화학습이라는 AI 기술이 적용됐다. 심층강화학습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해 컴퓨터를 학습시킨다. 과거 바람 기록, 일기 예보, 현재 바람 형태 등을 참조해 다양한 높이에서의 풍속과 방향을 예측하고 최적의 경로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풍선은 스테이션시커가 찾아낸 최적의 경로를 따라 상승하거나 하강해 원하는 방향의 대기 흐름을 탄다. 연구팀이 스테이션시커로 성층권 풍선을 제어해본 결과 최대 312일 동안 제자리를 지키는데 성공했다. 이전까지는 223일이 최대였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구글 모회사 알파벳이 추진하는 성층권인터넷서비스 ‘프로젝트 룬’의 풍선들에 적용했다. 프로젝트 룬은 성층권에 풍선을 띄워 전지구에 인터넷을 공급하는 계획으로 지난 7월 아프리카 케냐에서 공식서비스를 시작했다. 과학 관측이 아닌 상업 서비스에 성층권 풍선이 사용된 사례다.
○ 성층권에서 가상 우주체험 여행 상품 등장
성층권 풍선을 이용한 우주여행 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성층권 풍선은 로켓처럼 고도 급상승에 따른 위험과 고통이 훨씬 덜하다. 우주비행사들처럼 특별한 체력을 갖추거나 훈련을 받지 않아도 된다.
과학적 활용도도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학자들은 성층권에 대형망원경을 올려 우주를 관측하는데도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앨런 코구트 NASA 고다드우주비행센터 연구원팀은 대형망원경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보온장치를 개발했다고 이달 1일 공개했다. 대형망원경은 풍선을 타고 성층권을 올라가는 과정에서 온도에 따라 서리가 생기지 않아야 한다. 연구팀이 개발한 보온 장치는 음료캔 만큼 얇지만 어떤 환경에서도 절대영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성층권 풍선을 활용하는 분야가 늘고 있지만 한계도 있다. 날씨와 장소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조 책임연구원은 “성층권 풍선을 띄울 수 있는 기간은 1년에 2달 정도이고 풍선이 바람이 불어 휘청거리며 지상에 추락해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도시 주변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NASA도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미국 뉴멕시코와 남극에서 성층권 풍선 실험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성층권 풍선 관련 연구가 활발하지 않은 이유다. 지난 2018년 이관중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팀이 ‘스누볼’이라는 과학실험용 성층권 풍선을 개발하고 비행과 해상회수 시험에 성공했지만 이후 국내에 뚜렷한 성과는 없는 실정이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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