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게만 허락된 표현의 자유

반기웅 기자 2020. 12. 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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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반 공무원들은 처벌받아… 누구나 표현의 자유 누릴 수 있어야

11월 12일 대법원은 세월호 참사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 32명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교사들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3차례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당시 교육부는 시국선언 참여 교사들이 공무원의 집단행위를 금지하는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다며 고발했다. 2016년 검찰은 일부 교사들을 기소했고, 대법원은 유죄 확정판결을 내렸다. 전교조는 논평을 통해 “시국선언은 헌법 제21조에 따른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범위 내의 행위”라며 “대법원이 표현의 자유와 정치기본권을 억압하는 구시대적 질서를 연장했다”고 비판했다.

현행법은 공무원의 집단행위를 허용하지 않는다. 검찰이 기소하면 법원은 엄격하게 판단한다. 헌법재판소도 지난 4월 23일 공무원 집단행위를 금지하는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에 대해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지난 2014년에도 헌재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공무원이 집단적으로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는 경우 정치적 중립성의 훼손으로 공무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킬 수 있다”며 “공무원 집단적 의사표현에 대한 제한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한국사회에서 공무원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영혼 없는 존재’다. 다른 목소리는 징계와 처벌로 이어지기 때문에 공직사회는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피동적인 조직이 됐다. 2011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조차 부당해고에 반발해 1인 시위를 벌인 직원에게 정직처분 등의 징계를 내린 바 있다. 당시 인권위가 내세운 징계 명분도 국가공무원법 위반이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검찰청 직원들이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집단행위를 해도 처벌받지 않는 검찰

반면 검찰은 한국사회에서 집단행위를 벌이고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 유일한 공무원 집단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검찰 인적청산 방침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검사들의 집단행위는 2005년과 2011년 검·경 수사권 조정에 맞선 평검사 회의, 2012년 중수부 폐지에 반대하는 평검사 회의로 이어졌다. 집단행위 이후에도 검찰은 ‘기소’되지 않았다. 집단행위로 받은 불이익은 여론의 비판이 전부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배제와 관련해 벌어진 검찰의 조직적인 반발 역시 이전과 같은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교수·연구자 모임인 사회대개혁 지식네트워크는 지난 1일 성명을 통해 “검찰조직의 집단 성명 발표와 반발은 국가공무원법 제66조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집단행위는 검찰조직 내에서도 ‘검사’들에게만 허용된 특권이다. 2006년 대구지방검찰청에서 근무했던 검찰수사관(7급) A씨는 내부 통신망에 공무원 노조 결성을 독려하는 글을 올렸다가 직위해제를 당했다. 당시 전국공무원노조는 성명을 통해 “검찰청 최고의 직위인 검사들은 대통령에게까지 고충을 토로하고 검찰통신망으로 이익과 단결을 도모하고 있는데 정작 하위직 검찰직 공무원들은 의견을 말하는 것 자체가 원천 봉쇄되고 징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6급 이하 검찰수사관은 검찰조직 구성원의 절반에 달하지만, 여전히 이들의 의사소통 창구는 마련되지 않았다. 검찰의 집단행위는 검찰 내에서도 특정 직위만 누리는 특권인 셈이다.

그렇다면 검찰의 집단행위를 금지해야 할까.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의 집단행위는 불법과 합법 둘로 나누어 판단할 사안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 교수는 “검찰이 시국선언 교사에게 들이댄 공무원법의 잣대로 보면 검찰의 집단행위 역시 수사와 처벌 대상이다. 검찰이 막강한 권력에 기대 특권을 누린 것은 맞지만 이를 부당하다고 문제 삼기는 어렵다. 공무원의 집단행위는 보장되어야 할 마땅한 권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무원의 집단행위를 금지한 현행법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도 검찰의 집단행위는 비판해야 마땅하지만 집단행위 자체를 막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김 소장은 “일반 공무원들은 연서명만 해도 징계를 받고 처벌을 받는데 검찰은 집단행위가 자신들의 고유권한인 양 누리고 있다. 법은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적용돼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검찰의 집단행위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불법행위”라며 “그럼에도 표현의 자유는 기본권이다. 검찰의 특권도 문제가 있지만 더 시급한 일은 교원이든, 검찰이든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정치적 기본권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 정치적 자유 보장은 국정과제

국제노동기구(ILO)는 한국법률이 교원·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것은 ILO 협약 위반이라고 밝혔다. ILO는 국가공무원법 제65조 등이 ‘정치적 견해에 따른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국회입법조사처 역시 지난 5월 보고서를 통해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은 최소한의 제한만 정하도록 해 기본권을 보장하면서도 중립성을 준수할 수 있도록 입법개선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 보장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다. 국회개헌특위자문위원회는 공무원 노동 3권과 정치기본권 보장을 개헌안에 포함할 것을 제안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국가공무원법 등 관련 법률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지난달에는 공무원·교원 정치기본권 보장 관련 법률 개정에 관한 청원이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에 회부됐다. 관련 법안은 정당법,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개정안이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달 최고위원회의에서 “(현행법은) 헌법에 비추어 공무원, 교원의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하고 있고 시대에 뒤떨어져 있으며, 국민이라면 누구나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해당 상임위 여야 의원들의 올바른 판단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권 후반에 이르기까지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 관련 논의는 진전이 없었다. 왜 그럴까. 정치적 기본권 관련 논의는 국내 정치 현안과 지형에 따라 방향과 속도가 수시로 바뀐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민주당은 공무원에게 복종의 의무를 명시한 국가공무원법 제57조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영혼 없는 공무원’을 양산한다며 공무원에게 명령 거부권을 부여한 개정안(기동민 민주당 의원)을 발의했다. 하지만 정권 교체 뒤 해당 법안은 계류를 거듭했고 결국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송상교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는 “(정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이 있으면 상황에 맞춰 활용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라며 “표현의 자유는 어떤 상황에서든 보장받아 마땅한 권리”라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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