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보루' 무료 진료소도 중단..취약계층 소리없이 죽어간다

박동해 기자 2020. 12. 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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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층 의료체계와 연결하는 고리.."방역 지침 마련, 지원 필요해"
재확산 기조에 운영 여부 고민.."입원·수술 연계할 병원도 없어"
지난 4일 대전 벧엘의집이 운영하는 무료진료소 '희망진료센터' 내부 모습. 코로나19로 치과 진료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20.12.4/뉴스1 © News1 박동해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지난 7월 방글라데시 국적의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A씨(49)는 남양주의 한 공장 기숙사 방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며칠간 방을 나오지 않는다는 주변의 소식을 듣고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 직원들이 잠겨있는 방문을 따고 들어갔을 때의 풍경은 충격적이었다. 곰팡이가 가득 핀 방에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못한 모습으로 깡말라 있는 A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A씨는 목의 림프절 부위가 염증으로 부어올라 일부 괴사한 상태였다. 후에 확인한 A씨의 병명은 결핵성 릴프절병증과 당뇨, 그리고 이로 인한 여러 합병증들이었다. 외국인복지센터직원들에게 발견되기 전 A씨는 영양부족과 계속되는 구토로 여러 차례 쇼크상태에 빠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조금만 더 발견이 늦었다면 생명에 위험이 있을 수 있었다.

이영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센터에서 운영하는 무료진료소가 문을 닫으면서 A씨처럼 지역에서 발생하는 응급 환자들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특히 이 중에서도 취약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진료비 부담과 단속에 대한 두려움으로 일반 병원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병이 생기거나 다치면 무료진료소를 먼저 찾는데 코로나로 인해 이런 의료체계가 무너진 것이다.

이주노동자뿐만 아니라 무료진료소는 빈곤층, 노숙자 등 취약계층의 1차 병원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 환산 우려로 상당수의 무료 진료소들이 별다른 대책 없이 문을 닫게 되면서 취약계층이 의료공백에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불안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센터장은 "코로나 이후로 (무료진료소) 운영이 전면 중단돼 버리니 이런 친구들은 어디에서도 진료를 받을 수가 없다"라며 "당장 위급한 상태가 되었을 때나 확인이 되고 선제적으로 예방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구 성서공단노동조합이 운영하는 무료진료소의 경우에도 지난 2월 대구·경북지역의 코로나19가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5월 초까지 운영이 중단됐다. 당시 차민다 성서노동조합 부위원장에게는 무료진료소를 이용할 수 있는지를 묻는 이주노동자들의 전화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공공병원들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입원 중이던 환자들이 마저 퇴원 조치되고 보건소도 일반 진료소 중단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이 환자들이 도움을 구할 곳은 더욱 줄어든 상황이었다.

성서공단노조는 2003년부터 무료진료소를 운영해 장기간 약을 타가는 환자들도 많았다. 이들의 경우 주기적으로 약을 받지 않으면 건강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어 무료진료소에서 봉사자들이 약만 제조해 전달하기도 했다.

다행히 대구 지역의 코로나 감염 확산이 누그러지기는 했지만 차민다 부위원장은 또다시 감염이 확산되면 무료진료소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는 "환자분들이 계속 오는데 이분들을 누가 도와주겠냐고 생각해 보면 답답한 마음이다"라며 "어떤 방식으로도 이분들을 도울 방법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오후 대구 성서공단노조 사무실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료진료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2020.12.2/뉴스1 © News1 박동해

대전 벧엘의집이 쪽방촌 거주민과 노숙인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무료진료소인 '희망진료센터'는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문을 닫지는 않았지만 진료 과목을 대폭 줄일 수밖에 없었다. 환자와 얼굴을 가까이하고 진료를 해야 하는 치과, 안과는 감염 우려로 운영이 불가능해졌다. 환자와 직접 접촉을 해야 하는 물리치료도 진행할 수 없었다.

봉사자를 구하기 힘든 것도 무료진료소 운영을 힘들게 하는 원인 중 하나였다. 진료를 위해서는 의사들의 봉사가 필수적인데 코로나 확산으로 의사들도 정식 의료 활동 외에 불특정 다수를 만나야 하는 무료진료소 활동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의사 이외의 일반 봉사자들도 무료진료소를 찾지 않아 희망진료소의 경우 내부 직원들이 두배로 일을 하면 이 빈자리를 메꿀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무료진료소 운영을 중단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원용철 벧엘의집 담당목사는 '취약계층을 의료 시스템과 이어주는 최소한의 고리가 끊어 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무료진료소가 문을 닫으면 노숙인과 쪽방촌 거주민들을 1차적으로 진료하고 추가적인 치료가 가능한 공공, 민간병원으로 인계 시켜 주는 역할을 할 존재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코로나19 사태속에서 취약계층의 의료공백을 채워주던 무료진료소들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상태가 계속되자 정부가 무료진료소를 대상으로 코로나 관련 대응 지침을 만들고 인적·물적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최규진 인도주의실현사협의회 인권위원장은 "무료 진료소 운영자들이 취약계층의 현실을 가장 잘 알고 있음에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방역당국의 별도 정보와 지침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방역당국이 무료진료소가 코로나19 발생에 대응할 수 있는 지침을 하달하고 이를 지킬 수 있도록 물리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 위원장은 "취약계층들이 무료진료소 같은 곳에서라도 빨리 건강 문제를 알 수 있고 미리미리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지만 코로나19 사태 같은 감염 상황도 빠르게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보건당국에서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서 무료진료소 같은 곳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무료진료소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코로나 사태 속에서 취약계층들이 무료진료소를 거쳐 도달할 수 있는 2차 의료 시설이 부족해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취약계층들은 진료비에 대한 부담 때문에 공공의료기관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들 대부분이 코로나 방역에만 집중하면서 취약계층의 입원, 수술 등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대구 지역에서 무료진료 활동을 하는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공공병원들이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전환이 되다 보니 (취약계층들은) 수술, 입원, 출산의 경우에도 상당히 곤란을 겪고 있다"라며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어서 힘든 취약계층들을 (공공에서)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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