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엘리트·'빠' 세력 결합..입법 독재로 삼권분립 훼손"

구경우 기자 2020. 12. 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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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법치주의]
'최순실 게이트' 특검 후보 추천 때도 與는 관여 안했는데
민주, 헌재 결정 나오기도 전에 공수처법 개정안 강행 움직임
"선출된 정부에 의해 민주주의 점진적 침식..전례없는 위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윤호중(왼쪽) 위원장과 김도읍(〃 두 번째) 국민의힘 간사,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간사가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 회의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현안 질의 문제를 놓고 언성을 높이고 있다./연합뉴스
[서울경제] 현재 한국 정당 구조에서 ‘민주주의 붕괴’는 낯선 단어다. 군부의 쿠데타와 폭력을 수반한 집권이나 민중 봉기에 의한 민주주의 붕괴가 일어날 수 없어서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7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대통령 권력과 지방 권력, 사법 권력과 언론 권력, 심지어 시민사회 권력까지 완벽히 장악한 상황에서 이제 마지막 남아 있던 의회 권력마저도 완전 장악하고 돌격 태세를 구축함으로써 일당 독재, 전체주의 국가가 돼가고 있다”고 지적할 때만 해도 설마 했었다.
하지만 여당이 상임위원회에서 국정원법 개정안과 삐라금지법(대북전단살포금지법 개정안) 등을 의결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등에 대한 여당의 일방 독주가 예상되면서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거여의 입법 독재가 한국의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거대 여당의 정치적 판단이 입법으로 이어지면서 토론과 합의를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학계에서도 과거 운동권과 시민 단체 출신 정치인의 계몽주의적 사고와 특정 정치인만을 추종하는 이른바 ‘빠’ 세력이 결합하면서 여당의 통제 불가능한 입법 폭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아울러 야당의 비토권을 삭제하는 내용의 공수처법 개정안이 강행 처리될 경우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닌 특정 정당·정치인에 의한 지배가 이뤄지면서 법치주의 정신이 훼손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 10월 30일 서울 여의도 정치 문화 플랫폼 하우스(How’s)에서 ‘위기의 한국민주주의 보수정당이 한국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길’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입법 독재, 전체주의로 번질 수도

학계에서는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거침없는 행보를 놓고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시작됐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야당이 헌법재판소에 위헌 청구를 신청한 가운데 여당은 결과가 나오기 전에 정치적 중립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야당의 공수처장 비토권마저 삭제하는 시도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는 “현재 일어나는 민주주의 위기는 군사 쿠데타나 민중 봉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폭력적으로 붕괴하는 전통적 위기가 아니다”라며 “선출된 정부에 의해 민주주의가 점진적으로 침식된다는 점에서 전례 없는 위기”라고 정의했다. 민주주의 붕괴가 합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린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도 ‘다시 한국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라는 기고 글에서 “지금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진보의 위기가 중심에 서 있고 그것을 선도했던 학생운동 세대의 엘리트 그룹과 그들과 결합된 이른바 ‘빠’ 세력이 있다”며 “오늘의 정치 위기는 이들의 정치적 실패를 표현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촛불 시위 이후 대통령과 집권 세력은 개혁의 사령탑을 자임했다”면서 “사회로부터 개혁 요구가 강하게 분출될 때 이를 수용하고 통합하기보다는 독점적이고 일방적으로 통치권을 부여받은 것처럼 이해하고 대응했다”고 되짚었다.

정치권 안팎에서도 거여 입법 독주의 뿌리로 운동권 출신 인사들을 지목하고 있다.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은 “민주당 폭주의 뿌리는 소위 운동권 출신 인사들의 소영웅주의적 사고에서 찾을 수 있다”면서 “대학생 시절부터 시민운동을 하고 우리나라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해 여전히 1980년대 운동권 사고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삼권분립과 법치주의 훼손 우려 확산

법률 전문가들은 여당의 공수처법 개정안 강행 움직임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절차에서도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의 정신이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당이 야당의 비토권을 삭제한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면 법치가 아닌 인치가 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수처장이 가진 무소불위의 기소권을 통해 삼권분립의 정신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석훈 성균관대 법학과 교수는 “야당의 비토권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출된 공수처장은 태생적으로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아 수사권을 남용해 법치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면서 “특히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닌 정치인에 의한 지배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법치를 위해서는 야당의 비토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2016년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 후보 추천 당시 민주당과 국민의당·정의당 등 야 3당은 조승식 변호사와 박영수 변호사를 추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박 변호사를 특별검사로 임명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여당은 후보 추천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다.

한 교수는 또 “막강한 권한을 가진 공수처라면 헌법에 근거해야 함에도 헌법은 여전히 영장은 검사만 청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어 공수처는 태생적으로 헌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헌법이 명시한 검사는 검찰청법의 검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공수처의 검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구경우기자 bluesq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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