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만육천원 팔았어" 눈물나는 상인들, 명동의 몰락

정진영,문수정 2020. 12. 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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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 '임대·폐업' 안내문 나붙어.. 3분기 소규모 상가 공실률 28.5%
6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골목길이 오가는 사람이 없어 한적한 모습이다. 윤성호 기자


“(내가 장사하는) 이쪽 골목은 거의 전멸이라고 봐도 돼요. 사람이 너무 안 다니니까 저녁 여섯시만 돼도 무서울 지경입니다.” 6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에서 만난 액세서리 가게 주인 조모(60)씨의 말이다. 조씨는 임대계약이 끝나는 내년 5월 ‘20년 장사’를 접는다고 했다.

대한민국에서 평당 땅값이 가장 비싼 곳, 서울 최대 상권인 명동은 지금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외국인 관광 필수 코스로 매년 이맘때쯤이면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활기가 넘쳤던 이곳은 곳곳에 ‘임대’ 안내가 나붙은 을씨년스러운 거리가 됐다.

유니클로 명동중앙점이 내년 2월 운영을 중단하기로 했다. 매장 앞에 붙어있는 영업 종료 안내문을 한 행인이 보고 있다. 윤성호 기자


세계적인 SPA 브랜드 H&M의 국내 1호 매장 명동 눈스퀘어점은 지난달 문을 닫았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의 여파까지 덮친 유니클로 명동중앙점은 내년 2월 운영을 중단하기로 했다. 유니클로 명동중앙점은 세계적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다. 중국인 일본인 등 외국인 관광객 수요가 절대적이었던 명동 상권은 코로나19 장기화로 글로벌 기업조차 버티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이날 오후 취재진이 찾은 명동 거리는 황량했다. 구세군 종소리가 울리고, 캐럴이 흐르고, 드문드문 군고구마와 군밤을 파는 노점상들이 보였지만 예년 크리스마스 풍경과는 확연히 달랐다. 곳곳에 보이는 굳게 닫힌 ‘폐점’ 매장들은 스산함마저 자아냈다. 주말 오픈 시간이 낮 12시로 적힌 한 화장품 매장은 오후 2시가 다 돼서야 문을 열었다. 이 매장 점원은 “가맹 계약이 끝나면 가게 문을 닫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6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골목길 상점이 모두 문을 닫은 모습. 윤성호 기자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3분기 명동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8.5%였다. 지난해 4분기부터 지난 2분까지 공실률은 0%대였다. 2017년 사드 보복도 버티고, 지난해 일본불매운동도 이겨낸 명동이었지만 코로나19에는 무너지고 말았다. 4분기 공실률은 3분기보다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11년 동안 명동에서 옷가게를 운영해 온 이모(52)씨는 지난달 폐업했다. 이씨는 “권리금 때문에라도 더 버텨보려고 했는데, 임대료 부담이 너무 컸다”며 “임대료라도 좀 내려주면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는데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여기 지금 괜찮은 사람은 건물주뿐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표상 나타나는 공실률은 세 가게 중 한 곳이 문 닫는 수준이었지만 현장의 체감은 달랐다. 메인 거리는 그나마 형편이 나은 거였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폐점 상가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골목 안쪽의 음식점은 주말 점심인데도 문을 닫았다. 골목마다 문 앞에 크리스마스 장식 대신 ‘폐업’ 또는 ‘임대’가 붙은 점포들이 절반을 오갔다. 몇몇 상인들은 취재진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됐다’고 했다.

6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골목길 가두 음식점들이 오후 2시가 넘은 시각에도 문을 열지 않았다. 정진영 기자


명동의 한 골목에서 양말 등을 파는 상인은 “힘든 거 말해봐야 1%도 도움 안 된다. 우리처럼 밤새워서 걱정하고 장사하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거 누가 알아주나”라며 “돈은 있는 사람들만 버는 거고, 힘든 거 얘기해봐야 도움 되는 것 하나 없어서 말하기도 싫다”고 했다.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긴 명동의 상인들은 코로나19 초기 때보다도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액세서리 가게 주인 조씨는 “체감하기는 코로나 초기 때보다 더 심하다. 어제 2만3000원 팔았고, 오늘 1만6000원 팔았다”며 “임대료가 너무 비싸니 20~30% 깎아줘도 보증금 까먹고 사는 거다. 내년 5월 장사 접으면 빈털터리로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씨 가게가 있는 골목은 폐업률이 99% 수준이었다. 그는 “우리 가게 있는 건물엔 나만 남았고 골목길 전체로 봐도 우리 가게 포함해서 달랑 둘이 남았다”고 했다.

6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골목길이 오가는 사람이 없어 황량한 모습. 정진영 기자


생업을 붙들고 있는 이들의 타격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명동 거리를 찾는 이들도 적잖이 충격을 받고 있다. 업무 때문에 매주 한 번씩 명동을 방문하는 임모(43)씨는 “올 때마다 다르다. 매주 문 닫는 가게가 늘고 있다”며 “추억이 있는 곳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것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취재진이 지난 10월 중순 명동을 취재했을 당시만 해도 운영 중이던 이니스프리 직영점은 한 달 남짓 시간이 지난 11월 25일 폐점했다.

모녀가 함께 잠시 명동에 들렀다는 정모(24)씨는 “코로나로 상권이 힘들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별로 와 닿지 않았는데, 직접 와서 보니 너무 안타깝다. 정말 힘들다는 게 실감이 됐다”고 말했다.

정진영 문수정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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