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에 너무도 강렬했던 '盧 정부 학습효과'

구민주 기자 2020. 12. 7.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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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尹' 사태 침묵은 결코 검찰에 밀리지 않겠단 강한 의지 보인 것이란 해석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그 어떤 말보다도 많은 해석과 논란을 낳은 침묵이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극한의 갈등에 문재인 대통령은 긴 침묵을 택했다.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둘의 대립에 국민 피로도가 극에 달하면서, 여론은 이 상황을 정리해 줄 대통령의 입에 더욱 주목했다.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다'는 야당의 공세도 점차 강해졌다. 여기저기서 '입장'을 내놓으라며 압박하는 상황에도, 문 대통령은 입장이 없는 것이 입장이라는 기조를 유지하며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일관했다. 무슨 이유일까.

우선 청와대에서도 대통령의 침묵에 대한 비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그러면서 침묵의 '불가피성'을 언급한다. 대통령이 이 사안에 대해 어떻게든 의견을 밝히면, 이는 사실상 남아 있는 절차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극도로 주의하며 '원칙적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얘기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계속되는 침묵이 마치 문 대통령이 추 장관을 옹호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2009년 4월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가고 있다. 시위대가 버스에 던진 계란 자국이 노 전 대통령을 변호했던 문재인 당시 변호사 뒤로 보인다. ⓒ사진공동취재단

"'청와대-검찰 갈등' 구도는 尹이 원하는 그림"

청와대 사정에 밝은 여권 관계자 역시 '이유 있는 침묵'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갈등의 '구도' 문제를 언급했다. 문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발언을 하는 순간, '추미애 대 윤석열' 또는 '법무부 대 검찰'인 현재의 갈등 프레임이 곧장 '문재인 대 윤석열' '청와대 대 검찰'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야당과 윤 총장 측이 원하는 그림이 바로 이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윤 총장이 문 대통령을 직접 참전시키려 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지난 국정감사 당시 윤 총장이 민주당 의원들의 사퇴 요구에 "대통령께서 임기를 지키라고 했다"고 발언한 것부터를 시작점으로 본다. 윤 총장으로선 대통령에게 직접 사퇴 압박을 받고 쫓겨나는 모습을 연출해야 향후 정치적 입지나 몸집이 한층 커지기 때문에 이를 노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경우 야권 지지층의 결집 역시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즉 대통령의 직접 발언이나 행동은 어떤 식으로든 지금의 갈등 크기만 더욱 키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재 침묵으로 인해 받는 비판보다 훨씬 센 공세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퇴 이후 문 대통령은 침묵을 깨고 "조 장관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발언해 야권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 바 있다. 더군다나 대통령은 법무부의 징계 등 처분 결정이 있기 전까지는 검찰총장을 해임할 명분이 없다. 따라서 법무부 징계위 결정이 있기 전까지 대통령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셈이다. 괜히 미리 나서서 윤 총장 거취에 대해 언급하며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법무부 대 검찰'의 갈등이 '청와대 대 검찰'의 갈등 구도로 이동했을 때의 부담을 문 대통령은 이미 경험을 통해 충분히 알고 있다. 2003년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둘러싸고 정권 초부터 검찰과 긴장관계를 형성했다. 노 대통령은 당시 검찰을 직접 상대했다. 그해 3월, 인사를 놓고 반발하는 검사들과 직접 생방송으로 대화에 나서며 그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착오나 과오가 있다면 흔쾌히 인정하고 모자람이 있으면 검찰 행정에 반영하겠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스스로 문제를 수습하려 했지만 대통령이 나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나섰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이날 대화는 거친 공세로 일관한 검사들의 태도에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죠"라는 노 대통령의 불쾌감이 이어지며 대실패로 끝났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검사들과 공개적으로 대화를 한 것만 보더라도 (개혁)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로서 이는 처음 겪어보는 위협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좌절시키기 위해 극심하고 집요한 반발이 이어졌습니다."(《사람이 먼저다》 2012) 2003년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검사와의 대화에 참여했던 문 대통령이 자신의 저서에 남긴 그때의 기억이다.

이듬해인 2004년은 지금과 같이 법무부와 검찰 간 갈등이 극에 달해 연일 헤드라인을 도배할 때였다. 정부가 대검 중수부 폐지를 들고나왔고 송광수 당시 검찰총장은 "차라리 내 목을 치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노 대통령은 강금실 장관보다 앞서 송 총장을 질책하는 입장을 냈고, 송 총장은 즉각 사표를 냈다. 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면서 검찰의 상대는 법무부에서 청와대로 옮겨졌다. 검찰 개혁을 외치는 대통령의 부담은 날로 커졌고 문재인 시민사회수석은 이를 바로 곁에서 지켜봤다. 정권이 끝날 때까지 청와대와 검찰의 육탄전은 이어졌다. "참여정부는 역사상 처음으로 검찰 개혁을 국가적 과제로 상정하고 시도했습니다. (중략) 하지만 전반적으로 성과보다는 실패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참여정부가 끝나고 나서도 개혁을 둘러싼 참여정부와 검찰의 대립은 남아 있었습니다. 그 결과가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입니다"(《검찰을 생각한다》 2011). 문 대통령을 비롯해 당시 참여정부 인사들은 지금도 당시 갈등이 훗날 노 대통령을 죽음으로까지 이르게 했다고 보고 있다.

2003년 3월9일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종합청사에서 전국 평검사들과 대화를 진행했다.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과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도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검찰의 본질 알기 위해선 검찰과의 투쟁 필요"

문 대통령에게 15년 전 학습효과는 강렬하다. 그 당시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검찰과의 불필요한 직접 소모전을 피하고 본질인 검찰 개혁을 성공시키려는 의지가 강하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쓴 모든 저서에서 예외 없이 검찰 개혁의 중요성을 반복해 강조했다. 더불어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지켜보며, 검찰은 결코 스스로 개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판단 또한 섰을 것이란 전언이다.

이를 증명하는 문 대통령 책 속의 일부 내용이다. "모든 개혁에서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중략) 법률에 따라서만 권한 행사를 해야 할 검찰이 노무현 대통령 수사에서 금도를 잃고 권한을 남용하고 위법을 저질렀습니다. (중략) 정치 권력의 요구와 이에 부응한 검찰의 맹목적 충성, 지극히 정치적이고 감정적인 사건 처리.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 수사에서 드러난 검찰의 모습이었습니다. (중략) 검찰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검찰과의 투쟁이 필요합니다."(《검찰을 생각한다》 2011)

이번 사태에서의 침묵 역시 역설적으로 검찰 개혁에서 결코 검찰에 밀리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읽힌다. 앞서 언급한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이번 (갈등) 사태 또한 검찰 개혁의 한 과정으로 본다. 국민에게 송구하고 정부로서도 뼈아프지만,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더 큰 목적을 위해 거쳐야 할 일종의 성장통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강조했다. 즉 지금은 검찰 내부에서 터져나오는 여러 반발을 듣기보다는, 검찰의 오랜 악습과 반인권적 관습을 뿌리 뽑을 기회라고 보는 게 대통령의 시각일 거란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1월8일 청와대 본관 집현실에서 열린 공정사회를 향한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윤석열 검찰총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권력기관 개혁에 대한 여당의 계획은 시간표대로 진행"

끊임없이 갈등을 키우는 추 장관의 일 처리 방식과 '대통령이 책임을 회피한다'는 여론의 비판이 대통령으로서 부담스러운 건 분명하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여당으로서 지금 대통령의 침묵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대의에 비하면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민주당 한 핵심 관계자는 "국민에게 '추-윤 갈등'은 소음이지만, 검찰 개혁 자체의 명분과 대의에 대해선 여전히 국민 다수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면서 "지금으로선 검찰 개혁을 제도적으로 완성할 수 있는 공수처 출범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는 비판 여론이 높지만, 공수처가 출범하면 대통령의 본심이 비로소 전달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정치 지형도 대통령이 오랫동안 침묵으로 일관할 수 있게 한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청와대와 여당  내 친문 인사들 사이에선 현재의 법무부-검찰 갈등이 15년 전 참여정부 때보다 그 수위가 결코 높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검찰의 반발 역시 당시보다 거세다고 보지 않는다. 특히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의 검찰 개혁에 확실하게 힘을 실어주지 않았지만, 지금 문 대통령에겐 단일대오를 형성해 검찰 개혁 선봉에 서 있는 거대 여당 민주당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난 4월 총선 때 국민이 민주당에 180석의 힘을 실어준 게 여권엔 굉장한 자신감으로 남아 있는 듯하다. 검찰 개혁을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두 번 세 번 다시 와도 문 대통령은 다시 원칙적·전략적 침묵에 임할 것이란 관측이다.

또 다른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최근 국회 정보위에서의 국정원법 개정안 처리 등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절대적 목표를 위한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있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 관계자는 "야당의 반발 속에 여당이 단독으로 처리했지만, 여론은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모든 여론이 '추-윤 갈등'에만 쏠려 있다는 얘기는 곧 야당이 아무리 반발해도 권력기관 개혁에 대한 여당의 계획은 시간표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들어진 법을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지금 득실을 따졌을 때, 결국 누가 득을 보고 누가 실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나"라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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