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길에 쥔 바둑돌 200점, 신라 왕족소녀 1500년만의 귀환

강혜란 2020. 12. 7.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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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쪽샘 44호분 무덤 주인공 자리 발굴
금동관·금팔찌 등 최상위 장신구 '풀착장'
여성 무덤 처음으로 바둑돌 200여점 나와


5세기 후반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에서 출토된 비단벌레 금동장식(위)과 재현품(아래). 비단벌레의 딱지날개 2매를 겹쳐 물방울 모양으로 만들고, 앞뒤판 둘레를 금동판으로 고정하여 만든 장식으로 가로·세로 1.6x3.0cm에 두께 2㎜ 정도의 소형이다. 진품 유물은 날개 색깔이 변해서 마치 나뭇잎처럼 보인다. 밝은 녹색 혹은 금녹색을 띠는 비단벌레 날개는 광채가 나고 화려해서 당시 말 안장 등의 장신구로 쓰였다.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바둑돌 200여점을 저승길에 가져갔던 1500년 전 신라 여인의 무덤이 깨어났다. 무덤에선 금동관, 금귀걸이, 금·은 팔찌와 은허리띠 등 장신구 일체가 착장 상태 그대로 쏟아졌다. 최상위층 고분에서만 나왔던 비단벌레 딱지날개 금동 장신구 수십 점도 출토됐다. 특히 피장자 발밑에서 나온 바둑돌은 이제까지 신라 남성 무덤에서만 나왔던 것이라 눈길을 끈다.

이 무덤은 경주 대릉원 동쪽에 위치한 쪽샘지구 44호분. 2007년 예비조사에 착수, 2014년부터 본격 발굴해 “국내 단일고분으로 최장기간 조사한”(지병목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무덤이다. 지난해 호석(護石·무덤 둘레에 쌓는 돌) 주변에서 기하학적 문양과 기마 행렬도가 그려진 토기 조각들이 나와 화제가 된 데 이어 이번엔 무덤 주인공의 자리(매장주체부)가 실체를 드러냈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7일 쪽샘 44호 발굴 현장에서 이뤄진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통해 무덤 구조와 출토품 등을 상세 공개했다. 주요 키워드 중심으로 소개한다.

⓵ 완전 착장…신라 상류 스타일?

신라 왕족과 귀족 고분이 밀집한 경북 경주 쪽샘지구의 44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에서 신라 왕족 여성과 함께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됐다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7일 밝혔다. 사진은 출토된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경주 쪽샘 44호분 무덤 주인 착장 장신구 일체 표시.[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인 44호분 주인공의 장신구들은 전형적인 돌무지덧널무덤 출토 양식 그대로다. 특히 가슴걸이는 남색 유리구슬과 달개가 달린 금구슬, 은구슬을 4줄로 엮어 곱은옥을 매달았는데 이는 황남대총이나 천마총 같은 최상위 계층 무덤에서만 확인된 디자인이라고 한다. 이밖에 금동관(1점)부터 금드리개(1쌍), 금귀걸이(1쌍), 가슴걸이(1식), 금·은 팔찌(12점), 금·은 반지(10점), 은허리띠 장식(1점)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착장’했다. 남성용 장식 대도가 아니라 은장식 도자(刀子:작은 손 칼)를 지닌 것으로 보아 여성으로 보인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역사문화학)는 “5세기 후반 즈음 신라 사회에서 일정 이상 지위·신분이라면 정형화된 착장 세트가 있는데, 그 장신구를 착장시켜서 무덤에 모신 룰이 잘 적용된 것 같다”고 했다. 이들 착장 세트는 지난 9월 경주 황남동의 신라 돌무지덧널무덤 120-2호분에서 나온 장신구 유물과 형태·구성이 거의 같다. 44호분과 동시대인 5세기 후반 축조된 창녕 교동 Ⅱ군 63호분에서도 지난 10월 이와 비슷한 비화가야 여인의 장신구 등이 출토돼 신라-가야 관계에 관심을 모았다.

② 소형 금동관…피장자는 왕족 소녀?

신라 왕족과 귀족 고분이 밀집한 경북 경주 쪽샘지구의 44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에서 신라 왕족 여성과 함께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됐다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7일 밝혔다. 사진은 출토된 비단벌레 금동장식.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주인공이 머리에 썼을 금동관은 유달리 작은 편이다. 발끝까지 길이도 약 150㎝ 정도라 작은 신장으로 추정된다. 현장 설명을 담당한 심현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특별연구원은 “귀걸이, 팔찌, 허리띠 장식 등이 여느 무덤 출토품보다 크기가 작아서 피장자가 미성년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유사하게 작은 장신구들이 나와서 신라시대 왕자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금녕총에 비교하면서다.

특히 주인공 머리맡 부장궤(副葬櫃, 부장품 상자)에서 비단벌레 금동 장신구가 수십 점 나와 눈길을 끈다. 비단벌레의 딱지날개 2매를 겹쳐 물방울 모양으로 만들고, 앞뒤판 둘레를 금동판으로 고정해 만든 장식이다. 심 연구원은 “녹색이나 금록색을 띠는 비단벌레 날개는 광택이 나고 화려해서 장신구로 자주 쓰였고 황남대총 남분, 금관총, 계림로 14호 등 최상급 무덤에서 출토된 바 있다”면서 “이번 출토품은 가로·세로 1.6×3.0cm에 두께 2㎜ 정도로 소형인데다 이제까지 신라 고분에서 확인된 바 없는 물방울 형태란 게 특이하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비단벌레가 천연기념물이지만 당시엔 한국, 일본, 중국 남부 일대에 광범위하게 서식했고 경주 일대에서 충분히 채집해서 만들 수 있던 물품이었다 한다. 이번 비단벌레 장식 역시 기존 출토품처럼 말 안장 등 마구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

③ 바둑돌·절구공이…무엇에 썼을까

경북 경주 쪽샘지구의 44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에서 출토된 바둑돌.[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경주 쪽샘지구 44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에서 출토된 돌절구와 공이.[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발치 토기 사이에서 바둑돌 200여점이 한데 모여 나온 것도 흥미롭다. 지름 1∼2㎝(평균 1.5㎝) 정도로 요즘 바둑돌보다 훨씬 작은데 강가에서 자연석을 주워 그대로 쓴 것으로 보인다. 바둑돌 역시 황남대총 남분(243점), 천마총(350점), 금관총(200여점) 등 최상위 계층에서만 나왔다. 이들 무덤 주인공이 모두 남성(추정)이었던 데 반해 이번엔 여성 무덤이란 게 이채롭다.

전경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삼국사기·삼국유사에 효성왕(재위 737∼742)이 바둑을 뒀다는 기록이 있고 신라 사람들이 바둑을 잘 둔다는 내용이 여러 문헌에 나온다”면서 “4세기에 중국에서 전래된 바둑이 광범위한 문화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무덤에까지 가져간 것은 주인공의 일상 놀이기구였거나 바둑을 신선들의 놀이로 생각한 당시 사람들의 염원이 작용했을 가능성 모두 열려 있다. 목재로 제작됐을 바둑판은 부식돼 사라졌는지 발견되지 않았다.

이밖에 손바닥 크기 정도의 작은 돌절구와 절구공이도 나왔다. 크기가 매우 작아서 약제를 조제하는데 사용한 약용 절구로 추정된다. 병약했을지 모를 주인공이 저승에선 장수하라고 염원한 건지 머리와 가슴 사이에선 운모(雲母)가 다수 발견됐다. 연구소에 따르면 운모는 도가나 신선 사상과 관련돼 선약으로 불린 광물의 일종이라고 한다. 피장자 공간 주변에서 별도의 금귀고리 유물도 발견돼 순장자가 여럿 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추가 발굴에 따라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경주 쪽샘지구의 44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 전경.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측은 “발굴조사 전체로 보면 이제 절반 정도 이른 것 같다”면서 “부장궤에 겹겹이 쌓인 상태의 유물에 대한 정밀한 조사와 분석이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이종훈 소장은 “추가적인 발굴 조사를 통해 고분 전체의 구조와 축조과정을 완벽히 복원하는 한편 국내외 연구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철저한 고증과 학제 간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7일 오후 4시 유튜브를 통해서 대국민 실시간 현장설명회를 연다(www.youtube.com/channel/UCyvYCBA2aJFa8hIdIpur82Q).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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