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을 준비 끝났다" 국내 유일 '영하 70도' 백신기지 가보니

박장군 2020. 12. 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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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하 한국초저온 대표 인터뷰
영하 70도 이하 초저온 창고. 가운데 숫자가 -74.3도를 표시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는 참치가 보관돼 있다. 평택=박장군 기자


마침내 마스크를 벗을 그 날이 올까. 코로나19 백신 개발 소식에 전 세계가 고무되고 있다. 7일(현지시간) 영국을 시작으로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이 곧 국가 접종에 들어간다. 미국은 크리스마스 이전, 독일은 다음 달부터 백신을 맞힌다는 청사진까지 내놨다. 한국 정부는 한발 늦었지만 아스트라제네카와 백신 구매 계약을 마친 데 이어 다른 제약사들과도 막바지 협상이 한창이다.

백신 개발 경쟁에서 확보전으로 코로나19 국면이 바뀐 지금, 생산부터 최종 접종까지 치밀한 유통 관리가 주요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하 70도(화이자), 영하 20도(모더나), 2∼8도(아스트라제네카) 등 백신별로 관리 온도가 제각각인 동시에 초저온의 백신을 대량으로 처리해본 경험도 전무하기 때문이다. 특히 화이자 백신은 드라이아이스를 채운 특수상자에서 열흘밖에 보관할 수 없고, 돌발 변수도 언제든 생길 수 있다. 병참기지 역할을 하는 백신 보관 장소가 필요한 이유다.

국민일보는 이달 초 ‘콜드체인(저온유통) 거점기지’라는 평가를 받는 물류 기업 한국초저온의 경기도 평택 본사를 찾았다. 한국초저온은 LNG냉열(영하 162도의 액화천연가스가 기화할 때 생기는 에너지)을 활용해 창고 온도를 영하 70도 이하로 유지하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 24시간 내내 변동 없이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업체다. 아울러 영하 20도, 영상 5도짜리 창고도 있어 백신 계약 상황과 보급 물량에 따라 일원화된 보관도 가능하다.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김진하(57) 대표는 한 달 전쯤부터 질병관리청과 관련 논의를 해왔다. 당국으로부터 백신 보관과 배송에 드는 총비용을 산출해줄 것을 요청받았고, 관련 내역을 제출한 상태다. 32년 경력의 ‘물류통’ 김 대표에게 백신 유통 시나리오를 들어봤다.

화이자 백신을 보관할 수 있는 한국초저온의 영하 80도 냉동창고. LNG냉열을 활용한 공간이다. 영하 80도는 10초 만에 눈꺼풀과 입이 얼어붙고, 보호장비 없이 30초 동안 노출되면 폐를 다칠 수 있는 초저온이다. 평택=박장군 기자


화이자 백신을 보관할 수 있는 한국초저온의 영하 80도 냉동창고. LNG냉열을 활용한 공간이다. 영하 80도는 10초 만에 눈꺼풀과 입이 얼어붙고, 보호장비 없이 30초 동안 노출되면 폐를 다칠 수 있는 초저온이다. 평택=박장군 기자


-화이자 백신은 영하 70도 이하 초저온 유통이 필수적이다. 자연스럽게 콜드체인, LNG냉열 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올해 8월 대표로 부임했을 땐 코로나 백신은 전혀 생각도 못 했다. 원래 참치나 식자재를 보관해왔다. 그런데 한 달 전쯤 화이자 백신 임상 중간결과가 전해지고, SK가 투자했다는 소식도 알려지면서(SK는 올해 초 한국초저온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벨스타 슈퍼프리즈·Belstar Superfreeze에 250억원을 투자, 지분 20%를 확보하면서 2대 주주가 됐음) 갑자기 주목받았다.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였다. 그때 화이자 백신이 영하 70도 이하에서 유통돼야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 온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냉동고이기에 ‘우리 역할을 못 해내면 국민에게 뭇매를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백신 전용 엘리베이터와 전용 터널 등 단독 입출고 시스템을 계획해왔다. 비슷한 시점에 정부 당국과 유통 관련 논의도 시작했다. 정부에서 이곳 창고를 쓴다고 하면 우린 거기에 맞춰 준비하는 일만 남았다. 백신이 들어오면 보관된 참치 같은 물건을 싹 다 내보낼 예정이다.”

-백신용 영하 70도 창고가 꼭 LNG냉열 방식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

“전기를 가지고도 영하 70도를 맞출 수 있긴 하다. 문제는 온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밤에는 영하 70도까지 떨어졌다가 낮에는 또 올랐다가 계속 변동이 있다. 반면 LNG냉열은 영하 70도 이하를 그대로 쭉 유지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초저온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건 LNG냉열밖에 없다.”

영하 70도, 영하 20도 등 각 물류창고 온도를 관리하는 통합관제실. 평택=박장군 기자



-굳이 보관해야 하나. 인천공항으로 도착한 백신을 그대로 병원으로 보내면 안 되는 건가.

“물류 측면에서 가장 이상적인 건 인천국제공항에서 의료현장으로 바로 백신을 보내는 것이다. 조금씩 들여와서 보관기한 내에 그때그때 접종시키는 방식이다. 하지만 32년 경험으로 볼 때 인천공항에서 얼마나 큰 작업을 해야 할지 가늠이 안 된다. 병원 보관시설에도 한계가 있다. 배송 단계에서 중간에 사고가 나는 등 돌발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특정 업체 백신에서 부작용이 불거지거나 생산에 이상이 생기면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단순 보관 장소가 아니라 콜드체인 전반을 고려한 백신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이유다. 가령 미국 미시간주 칼라마주에 있는 화이자 공장에서 나온 백신은 시카고 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들어온 뒤 통관을 거쳐 보관 장소로 이동한다. 특수상자 1박스에 5000병이 들어 있다는데 지역별로 필요한 분량이 5000병, 1만병, 1만5000병 이런 식으로 딱딱 나뉘지 않는다. 배송지역 상황과 물량에 맞춘 분류, 재포장 작업이 필요하다. 특수상자에서 빼고 남은 백신은 초저온 창고에 보관하다 필요할 때 바로 배송하면 된다. 모더나 백신도 관리 온도대만 다를 뿐이다. 배송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드라이아이스를 넣은 특수용기에 포장된 채 나가기 때문에 5∼6시간 안에만 병원에 가져다주면 된다.”

한국초저온의 창고 모습. 코로나19 백신은 이처럼 독립된 공간에 보관될 것으로 보인다. 평택=박장군 기자


물류창고와 연결된 문. 이 문을 통해 화물이 트럭에 실려 배송된다. 평택=박장군 기자


-백신을 분산 보관해야 하나, 한곳에 모아둬야 하나.

“백신은 공교롭게도 여러 공급사에서 들어온다. 온도 대가 다 다르다. 상온 제품인 아스트라제네카는 이를테면 경기도 용인, 모더나는 기흥, 화이자는 평택에 보관하는 식이 돼선 물류 측면에서 복잡해진다. 물류를 모르는 사람도 이렇게 하진 않는다. 모든 온도 대의 백신을 관리할 수 있는 전진기지를 한곳에 두고, 그곳에서 분배하는 게 맞다. 채소, 냉동육, 냉장 우유, 생선을 시켰는데 각각 다른 지역에서 차량 4대로 배송이 온다면 어떻겠나. 이런 유통업체들도 모든 온도 대를 관리할 수 있는 창고를 한곳에 두고 한 번에 트럭에 실어서 배송한다. 백신도 마찬가지다. 이곳에는 영하 80도(37평), 영하 70도∼영하 20도(242평), 영하 70도(206평), 상온 전실 등 500평 규모의 코로나 백신 전용 공간이 준비돼 있다.”

-백신 컨트롤타워가 중요한 이유가 있나.

“물류를 오래 하다 보니 이런저런 고민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컨트롤타워를 세워놓고 관리하면 백신이 매일 몇 개가 들어왔고, 몇 개가 나갔는지 확실히 통제할 수 있다. 독감백신처럼 그때그때 맞고 싶은 사람만 맞는 건 내후년 얘기다. 지금은 국가 비상상황이기에 이렇게 관리돼야 한다. 물류 측면에서 볼 때 특정 제품에 문제가 생기거나 효과가 더 좋아 한쪽으로 수요가 몰릴 경우를 대비해 미리 물량을 확보해 보관하는 게 좋다. 불평 없이 모든 국민이 맞으려면 컨트롤과 보관이 중요하다. 아울러 백신 확보 협상이 가장 중요하지만 동시에 복잡한 물류나 유통 측면에서 병참 역할을 할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게 물류 전문가들이다. 간과해선 안 될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초저온의 LNG냉열발전 설비. 이곳에서 매일 LNG를 보급받아 냉열을 활용하고, 기화된 천연가스는 다른 업체에 판매한다. 평택=박장군 기자


7일 찾은 한국초저온 냉동창고의 모습. 평택=박장군 기자


-코로나백신은 수천만회 분이 대량으로 보급돼야 한다. 물류 측면에서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초저온 기술을 가지고 백신을 아무런 사고 없이 핸들링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되면 우리 물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방역에서부터 구멍이 난 일본과도 비교대조가 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고도의 물류를 잘 처리한다는 이미지가 생기면 전 세계적으로 안심하고 맡겨도 되겠다는 인식도 생길 것이다. ‘K-백신 물류’의 탄생이다. 다른 전염병 사태가 와도 해외에서 우리 방식을 선제적으로 도입하려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정부에서 요청한다면 질병관리청에서 자원봉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백신 수급 컨트롤타워를 구성한다면 보관, 수출입 배송 등에서 도움이 되고 싶다. 무상으로도 좋다. 민간기업을 함부로 끌어들이기 쉽지 않겠지만 물류 전문가들이 모여 정부를 도우면서 빠르고 안정적으로 백신을 맞게 하는 게 중요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2.5단계로 격상해 참고 기다리라고만 할 수는 없다. 방역과 동시에 백신도 빠르게 맞아야 한다. 너무 예단일지 모르지만, 비상상황에서는 모든 자원을 이용하는 게 맞다. 경험 있는 사람들이 돕고, 십시일반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럴 기회가 오면 언제든 동참하겠다. 그래야 저희 부모님, 동생도 백신을 맞을 수 있을 것 아닌가. 수도권에서 가까운 사람만, 돈 있는 사람만 백신을 맞고 그래선 안 되지 않겠나.”

글로벌 제약업체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과 로고를 함께 찍은 모습. AFP 연합뉴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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