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유족에 발길질 취재진에 씨익..13명 앗아간 악마의 최후

이승환 기자 2020. 12. 9.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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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엽기살해범 정남규..'제2 유영철' 공포
"피의 향기" 살인욕구 못 꺾고 교도소 독방서 극단선택
13명을 살해하고 20명을 중태에 빠뜨린 정남규가 이송 차량에서 취재진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다.(SBS 그것이 알고 싶다 공식 유튜브 계정 영상 갈무리)© 뉴스1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2006년 4월, 서울 금천구 시흥동 한 주택가에 정남규(당시 37세)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정남규는 하늘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포승줄에 묶인 채 현장 검증을 위해 범행 장소로 향했다.

참다못한 피해자 유족이 이동 중인 정남규 쪽으로 화분을 던졌다. 정남규는 이에 맞서 발길질을 하다가 양옆에 붙은 경찰관들에게 제지당했다. 정남규는 이송되는 차에서 실실 웃고 있었다.

그가 살해한 사람만 13명. 중태에 빠뜨린 사람은 20명에 달한다. 정남규는 조두순이나 유영철에 버금가는 역대 최악의 흉악범으로 꼽힌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피에서 향기가 난다""1000명을 죽였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잡힌 게 억울하다"는 엽기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이웃집 남성에게 성폭행당한 유년 시절

정남규는 1969년 3월 전북 한 농가에서 자랐다. 그는 3남·4녀 중 장남이었다. 가난한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는 폭력적이었다. 정남규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웃집 남성에 붙잡혀 산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엔 선배들과 운전기사로부터 성추행을 겪었다.

정남규는 고교 졸업 후 특수강도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그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집행유예 기간 군에 입대했다. 선임들에게 가혹행위와 구타를 당했다. 후임들은 그를 무시했다. 군 복무를 마친 정남규는 1995년 한 집에 무단 침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구속됐다.

교도소에 있는 동안 정남규는 다른 수감자들의 성폭력에 시달렸다. 구타도 당했다. 이후에도 그는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다. 1999년 절도와 강간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2002년 자동차 절도죄로 징역 10개월에 처해졌다.

"정남규는 당시 부모와 형제들의 적절한 대응과 관심의 부족으로 성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하게 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하면서 대인기피증까지 생긴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생기게 되었고, 그것이 범죄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김미숙 토끼와거북이 심리상담 클리닉 원장(광운대 겸임교수)은 지난 2018년 한국사회안전범죄정보학회에 기고한 논문 '가정환경이 연쇄살인에 미치는 영향 - 연쇄살인범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를 중심으로'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등 뒤 아닌 가슴·배 공격…피해자 고통 보며 '쾌락'

2004년 1월 인천에 살던 정남규는 버스를 탔다. 2~3번 버스를 갈아탄 뒤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에서 하차했다. 애초 범행 대상은 '여성'이었지만, 초등학생 2명이 눈에 들어왔다.

경찰에 붙잡혀 나오는 정남규(.(SBS 그것이 알고 싶다 공식 유튜브 계정 영상 갈무리)© 뉴스1

정남규는 동네에서 2.5㎞쯤 떨어진 춘덕산 정상 주변으로 아이들을 데려갔다. 정남규 자신도 열살 때 이웃집 남성에게 산으로 끌려가 성폭력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정남규는 유인한 아이들을 성추행했고 결국 살해했다.

정남규는 그해 1월부터 2년 3개월 동안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서 여성과 아이, 노인 등 13명을 잔혹한 수법으로 살해하고 20명을 중태에 빠뜨렸다.

여성을 흉기로 살해할 때 그는 '등 뒤'가 아닌 배·가슴 쪽을 공격했다. 어김없이 가로등 아래에서 여성을 숨지게 했다. 피해자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려는 목적이었다고 범죄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조직폭력배(조폭)도 이른바 '작업'을 할 때 등 뒤에서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의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서다. 정남규의 경우 살인 자체보다 피해자의 고통을 보고 쾌락을 느끼는 것이 범행 목적이었던 셈이다.

범죄심리 전문가들은 정남규의 범죄 행각을 두고 '비정상 범행'이라고 진단한다. 김미숙 원장은 "과거 만난 적도 없는 노인과 여성들을 상대로 반복적인 살인을 저질러 왔으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들(정남규·유영철 ·강호순)의 목적이 돈이 아니었다는 것"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남규는 정상적인 성관계가 불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성폭행을 완전하게 행사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과 교도소 수감 당시 겪은 성폭력 피해까지 더해졌다. 그의 대인기피와 피해의식은 스스로 제어할 수준이 아니었다.

"정남규는 정상적인 가족관계나 교우관계를 형성하지 못하였고 여자를 사귀지도 못했다. 이러한 피해의식이 잠재해 있다가 여성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어 여성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것으로 분석된다."

박형식 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2010년 한국경찰연구에 기고한 논문 '연쇄살인사건수사에 있어서 공간적 프로파일링에 대한 연구 -연쇄살인범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사건을 중심으로'에서 이같이 적었다.

◇선천적 성향 때문인가, 후천적 환경 때문인가

"완전범죄는 모두 끝났다."

경찰에 검거돼 이송되는 차량에서 정남규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정남규는 재판에서 "피해자에게 미안하지 않다. 살인이 즐거웠다""많이 죽일 땐 자부심을 느꼈다""사형을 받겠지만 내가 죽는 건 두렵다"고 했다. 그는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못 끊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판사에게 보내기도 했다.

© News1 DB

2007년 4월 사형이 확정된다. 3년 7개월 뒤인 2009년 11월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정남규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다. '살인을 멈출 수 없었던 정남규는 결국 자신을 살해했다.' 범죄심리 전문가들은 그의 극단 선택을 이렇게 분석한다.

질문이 하나 남겨졌다. 정남규의 끔찍한 범행은 선천적인 성향 때문인가, 후천적인 환경 때문인가. 타고난 기질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불우한 환경에서 시작된 것인가. 이와 관련해 우리 사회가 답을 하지 못한다면 '제2의 정남규'를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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