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치료제 전쟁-한국 제약사엔 기회 없나

명순영·류지민·김기진·박지영 2020. 12. 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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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약업체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이 세계 최초로 영국 정부 사용 승인을 받았다.

서구권 국가 중 누가 최초의 승인국 자리를 차지하느냐를 두고 미국과 영국이 치열하게 다퉜다. 승인 신청에서는 미국이 앞섰지만, 영국이 ‘초고속’으로 대응하며 서구권 첫 승인국 타이틀을 땄다. 영국이 곧장 백신을 전역에 배포하기로 결정하며 인류는 해를 넘기지 않고 코로나19 백신을 맞게 됐다.

화이자는 독일 바이오엔테크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긴급사용 승인을 지난 11월 20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청했다. 화이자는 전 세계 백신개발업체 가운데 가장 먼저 95% 예방률을 나타낸 3상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해 주목받았다. 화이자는 유럽 의약품청(EMA)에도 긴급승인 신청서를 냈다.

또 다른 미국 제약사 모더나도 희소식을 알렸다. 지난 11월 30일 자사 백신 3상 임상시험 결과 예방률이 94.1%에 이른다고 최종 발표했다. 화이자와 마찬가지로 미국 식품의약국과 유럽 의약품청에 동시에 긴급사용 승인을 신청했다.

영국의 화이자 백신 긴급사용 승인으로 관심은 미국으로 쏠린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12월 10일 화이자 백신 긴급사용 승인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개최한다. 허가가 떨어지면 24~48시간 내 미국에서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

임상 결과, 숫자로 나타난 예방률이 좋다. 화이자와 모더나 3차 임상에 각각 4만3000명, 3만명이 참여했다. 절반은 백신을, 대조군인 절반은 가짜약(플라시보)을 투여했다. 그 결과 화이자 임상에서는 총 94명 환자가 발생했다. 백신군에서 8명, 가짜약에서 86명이다. 만약 백신이 효과가 없다면 백신군에서 86명이 생겼어야 하는데 8명으로 그쳤다. 이 비율(78÷86×100)을 따져 백신 효과가 90%정도라고 표현한다. 모더나는 같은 방식으로 94.5% 효과를 보였다.

백신 효과 90%는 상당히 높은 수치다. 독감 백신이 보통 40~60%다. 홍역 백신은 97%다. 미 식품의약국은 백신 긴급 승인의 제한선으로 50% 이상을 정해놓고 있다.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면 국내 바이오산업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일단 백신·치료제 개발사는 글로벌 제약사 백신 개발과 별개로 자체적인 개발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이 서구권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그렇다. 화이자 백신은 영하 70도 이하 보관이 필요해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

게다가 한국은 백신 계약에 늦다. 당초 한국 정부는 올해까지 3000만명분 확보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여권을 중심으로 최대 4400만명분의 백신을 확보한다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현재까지 정부는 1000만명분을 세계 백신 공급기구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통해 확보했다. 또한 최근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인 아스트라제네카와 백신 구매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스트라제네카뿐 아니라 존슨앤존슨, 화이자 등과의 구매 협상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고 알려졌다. 질병관리청은 아스트라제네카와의 백신 구매 계약과 관련 “코로나19 백신 국내 도입을 위해 현재 개별 기업과 협상이 진행 중에 있어 기업명 등 구체적인 사항을 밝힐 수 없다”면서도 “코로나19 백신 관련 협상을 마무리하고 그 결과를 종합해 조속히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세계 각국이 제약사는 물론 백신 접종 일정까지 구체화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백신 종류조차 발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면 국내 기업이 백신·치료제 개발을 멈출 수는 없는 국면이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출시되면 씨젠 같은 진단기기 업체가 타격받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돼도 내년까지는 진단기기 시장에 큰 영향이 없다는 의견이 대세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무증상 감염과 빠른 전파력 등에 따라 단기간 내에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동안 방역이나 신규 확진자 확인을 위해 진단시약이 더 필요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국내 주요 기업이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을 내놓기 위해 연구에 한창이다. 사진은 약 개발을 위해 실험을 하는 셀트리온 연구원. <셀트리온 제공>
▶국내 치료제·백신 개발 어디까지

▷셀트리온·대웅 조건부 허가 신청 눈앞

국내 기업 치료제와 백신 개발도 속도를 내는 중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11월 말 기준 국내에서 진행 중인 코로나19 관련 임상시험은 총 22건(치료제 19건, 백신 3건)이다. 치료제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백신은 내년 하반기 시장에 나올 전망이다.

치료제에서 돋보이는 기업은 셀트리온과 GC녹십자다. 셀트리온은 항바이러스제 ‘CT-P59’ 글로벌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11월 말 피험자 327명에게 투약을 완료했다. 연내 식약처에 조건부 허가를 신청하는 것이 목표다. 항바이러스제는 감염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를 제거하거나 약화한다.

GC녹십자는 혈장치료제 ‘GC5131A’를 개발한다. 지난 8월 임상 2상을 승인받고 9월 환자 모집을 시작했다. 12월 초 기준 피험자 22명을 모았다. 목표 인원은 60명이다. 혈장치료제는 코로나19 완치자 혈장(혈액 액체성분)에서 면역원성(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성질)을 갖춘 항체를 추출해 만드는 의약품이다.

GC5131A는 10월부터 의료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다. 임상시험 중인 의약품이라고 하더라도 생명이 위급하거나 대체 치료 수단이 없는 환자에게 치료목적 사용 승인을 받아 쓸 수 있어서다. 칠곡경북대학교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순천향대부속부천병원 등이 GC5131A를 공급받았다.

약물 재창출 방식으로 치료제를 만드는 업체도 여럿이다. 이미 판매 중이거나 임상 단계에 진입한 약물 용도를 바꿔 새로운 질병 치료제로 개발하는 방법이다. 종근당과 대웅제약이 약물 재창출을 채택한 대표 사례다.

종근당은 자사 약품 ‘나파벨탄’을 코로나19 치료제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나파벨탄은 혈액항응고제 겸 급성췌장염 치료제다. 나파벨탄 주요 성분인 나파모스타트는 단백질 분해효소 ‘TMPRSS2’를 억제한다. TMPRSS2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하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종근당은 러시아에서 임상 2상 절차를 밟고 있다. 최근 러시아 데이터안정성모니터링위원회(DSMB) 중간 평가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냈다. DSMB는 종근당이 팬데믹 확진자 50명에게 10일 동안 나파벨탄을 투약한 뒤 환자 안정성 등을 평가한 결과 임상 유용성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더불어 임상을 지속할 것을 권고했다. 종근당 측은 “올해 안에 임상 2상 시험을 마치고 2021년 1월 국내에서 조건부 허가를 신청하는 것을 목표로 식약처와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대웅제약은 두 가지 약을 코로나 치료제로 개발한다. ‘호이스타정’과 ‘DWRX2003’이다. 호이스타정은 경구형(먹는 약), DWRX2003은 주사형이다. 호이스타정은 11월 말 임상 2상 환자 모집을 마쳤다. 호이스타정은 본래 만성 췌장염이나 수술 후 발생하는 역류성 식도염을 치료하는 데 쓴다. 주성분인 카모스타트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람 몸에 침투한 뒤 세포에 달라붙는 과정을 방해해 증식을 막는다.

박현진 대웅제약 개발본부장은 “내년 1월 긴급사용 승인을 목표로 당국과 협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DWRX2003은 구충제로 사용해왔다. 주성분 니클로사마이드는 바이러스 제거, 사이토카인 폭풍(면역 물질 과다분비) 제어, 호흡곤란 증상 개선 등의 효과를 낸다. 2021년 초 임상 2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 밖에 부광약품, 동화약품, 신풍제약 등이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부광약품은 지난 4월 레보비르 코로나19 2상을 승인받았다. 레보비르는 부광약품이 2007년 선보인 B형 간염 치료제다. 동화약품은 천식 치료제로 개발 중인 천연물 의약품 ‘DW2008S’를, 신풍제약은 말라리아 치료제로 이용되는 ‘피라맥스’를 코로나19 치료제로 만들기 위해 시험하고 있다.

종근당이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 중인 혈액항응고제 겸 급성췌장염 치료제 나파벨탄. <종근당 제공>
▶백신은 제넥신이 먼저 임상 시작

▷내년 9월 조건부 승인 신청이 목표

백신 부문에서는 제넥신과 SK바이오사이언스가 눈길을 끈다.

제넥신은 DNA 백신 ‘GX-19’를 만든다. 항원 단백질을 만들 수 있는 DNA를 몸에 투여해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종류다. 지난 6월 임상 1·2a상을 승인 받으며 국내에서 가장 먼저 임상에 들어갔다. 내년 상반기 임상 2b상과 3상을 동시에 진행하고 2021년 9월 식약처에 조건부 승인을 신청하는 것이 목표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11월 24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백신 후보물질 ‘NBP2001’ 임상 1상 시험계획을 승인 받았다.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체내 안전성과 면역원성 등을 집중 평가한다. NBP2001은 재조합 백신이다. 바이러스 항원 단백질을 유전자재조합 기술로 만들어 투여하는 방식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또 다른 코로나19 백신 ‘GBP510’의 비임상시험도 진행 중이다. 5월에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 지원을 받은 후보 물질이다. 연내 임상 진입이 목표다.

▶해외 기업보다 속도 느리지만

▷기존 제품 단점 많아 수요 충분할 듯

한쪽에서는 국내 기업이 해외 업체에 비해 치료제·백신 개발 속도가 느리다는 점을 걱정한다. 글로벌 기업이 시장을 선점하고 나면 국내 기업이 만든 제품은 수요가 많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백신이 보급되면 치료제와 진단키트 수요가 급감하고 관련 기업 성장세가 꺾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길리어드사이언스의 렘데시비르(베클루리) 등 몇몇 약품은 이미 코로나19 치료에 쓰인다. 백신 부문에서는 모더나와 화이자가 앞서 나간다. 화이자가 만든 백신은 영국 정부가 12월 2일 긴급사용을 승인하며 주목받았다.

제약업계에서는 후발주자일지라도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의료 현장에 도입된 치료제는 투약 가능 대상이 한정적이거나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등 단점이 있다. 이같은 단점을 보완한 약품이 나온다면 수요가 충분히 존재할 것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이명선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렘데시비르는 인공호흡이 필요한 중증환자를 대상으로 처방한다. 사용에 한계가 있다. 값도 비싸다. 리제네론 항체 치료제 ‘REGN-COV2’는 중증 환자 대상 임상에서 효과와 안정성 문제로 연구가 중단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명순영·류지민·김기진·박지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87호 (2020.12.09~12.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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