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독재의 꿀 빠는 '586정당'

주희연 기자 2020. 12. 10.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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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을 비롯한 각종 쟁점 법안이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8일 더불어민주당 법안 처리 강행을 막기 위해 공수처법 개정안과 경제 3법을 모두 각 상임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했다. 안건조정위는 의견 차가 큰 법안을 여야가 숙고해 처리하라며 최장 90일을 보장한 국회법 제도다. 하지만 압도적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은 각종 꼼수와 편법까지 동원하면서 이를 무력화했다.

21대 첫 정기국회 회기 종료일을 맞은 9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공수처 반대 피켓 시위를 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2020.12.9 이덕훈 기자

가장 이견이 컸던 공수처법 개정안은 77분 만에 안건조정위를 통과했다. 곧바로 열린 전체회의에서 개정안을 처리하는 데는 6분밖에 안 걸렸다. 야당 의원이 반대 토론을 신청했지만,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진행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종결했고, 곧바로 기립 표결을 했다. 야당 의원들이 윤 위원장을 향해 “민주화 운동 했다는 사람이 이게 말이 되느냐” “입법 독재다”며 소리쳤지만, 돌아온 말은 “평생 독재의 꿀을 빨더니 이제 와서 독재로 몰아가나”는 냉소였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민주당은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을 유지하는 안을 통과시키려 했지만, 야당 몫 안건조정위원인 정의당 배진교 의원이 반대하면서 빨간불이 켜졌다. 배 의원이 반대하면 표가 모자라 안건조정위 의결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민주당은 ‘신공(神功)’에 가까운 입법 기술을 보였다.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안을 올려 정의당의 찬성표를 받아 안건조정위를 넘기고는, 전체회의에서 돌연 전속고발권을 유지하는 수정안(案)을 올려 통과시킨 것이다. 결국 안건조정위를 거쳐봐야 전체회의에서 국민이나 다른 정파 의견에 상관 없이 원하는 대로 뜯어고치면 된다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 하지만 정무위 소속 민주당 의원은 “신의 한 수인데 왜 비난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비례대표 공천 절차를 규정한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도 비슷한 전법(戰法)을 썼다. 이 규정은 1년 전 민주당이 정의당 등 군소정당들과 신설한 조항이다. 당연히 정의당이 강력 반발했다. 그런데 난처해할 줄 알았던 민주당은 이 조항을 대신 정당법에 신설하겠다는 신공을 발휘했다.

민주화 운동 경력을 훈장처럼 내세우는 정당에서 이럴 수 있는가 의문이 들어 한 민주당 의원에게 물었다. 그는 지난해 말 민주당이 공수처법 등 쟁점 법안을 강행 통과시킨 장면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민주당은 당시 제1 야당 반발에도 군소 정당을 앞세워 ‘살라미 전술’(하나의 과제를 세분화해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로 야당을 무력화하며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들은 패스트트랙 법안을 모두 처리한 직후 여의도 인근에서 ‘축하 파티’를 열고 “검찰 개혁” “총선 압승”을 건배사로 외쳤다. 실제 3개월 뒤 열린 총선에선 압승했다. 국회 절차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진영에 이익을 가져다주면 상관없다는 인식 아닌가. 그 인식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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