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공정위의 영혼을 찾습니다
“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한 입장이 뭡니까?” 지난 8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유의동 의원이 이렇게 묻자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우물쭈물 대답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유 의원이 “무슨 놈의 기관이 입장이 몇 개월이 가기도 전에 계속 바뀝니까”라면서 다그치자 입을 다물었다. 전속고발권은 공정위에 부여되는 가장 중요한 권한 중 하나.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은 공정위가 고발해야만 검찰이 기소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정무위 안건조정위원회에서는 가격 담합 등 담합 사건에 대해서는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가, 몇 시간 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전속고발권을 유지하는 방안으로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렇게 중요한 조직 권한이 몇 시간 사이 정치인들에 의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와중에 공정위는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공정위는 의견 낼 자격도 없다. 현 정부 출범 전인 2016년만 해도 공정위는 전속고발권 폐지에 반대했다. 당시 “(전속고발권은) 고소·고발 남용을 막아주는 안전 장치로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면서 “공정 거래 사건은 충분한 경제 분석을 거친 뒤에야 위법성 판단이 가능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 밖에도 반대 이유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하지만 전속고발권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공정위는 스스로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겠다는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입장을 180도 뒤집고 먼저 엎드린 셈이다. 그 다음이 더 가관이다. 이번에 국회가 전속고발권을 유지하는 쪽으로 공정위 제출 법안을 수정하자 공정위는 여기에도 순응했다. 유 의원이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는 것은 정부 정책이 일관되고, (정부 부처가)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면서 공정위원장을 질타한 것도 당연한 반응이었다.
공정위 직원들은 “공정위의 가장 중요한 권한에 대한 논의가 오락가락하는데 아무런 목소리를 못 내는 처지가 답답하다”고 말한다. 지난 8월 퇴임한 지철호 전 공정위 부위원장은 “전속고발권 폐지는 담합 등을 막는 근본적 해법도 아니고 오히려 기업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앞으로 또 전속고발제 폐지 논의가 진행된다면 후배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일관성이나 전문성을 잃은 부처가 공정위뿐일까. 기획재정부는 올해 재정 여력을 고려해 소득 하위 70%에만 재난지원금을 주려다가 여당에 떠밀려 모든 국민에게 지급했다. 여당이 종합부동산세와 취득세 등 세율을 급격히 올리자 했을 때 부작용과 반발이 심할 걸 알면서도 그저 순종했다. 국토교통부는 자기들이 직접 해외 전문가들까지 불러와 만든 김해공항 확장안이 정치 논리에 휘말려 표류하는데 이렇다 할 의견도 못 내고 있다. 공정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더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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