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막말버스터' 된 필리버스터..빛바랜 연단 위 시간들

김진 기자 2020. 12. 1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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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이은 국회의 연말 필리버스터 정국에 다시 막말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여당이 정기국회 내내 밀어붙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국가정보원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지 불과 사흘 만이다.

필리버스터를 부를 수 밖에 없던 여당의 독주, 법안을 둘러싼 입장차는 이해되지만 메시지의 울림 대신 막말 논란만 낳은 토론이 무슨 소용이냐는 자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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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2020.12.1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김진 기자 = "스트레스나 불필요한 침해가 오히려 성폭력 전과자들의 재범을 더 높일 수 있다. (12월11일, 김웅 국민의힘 의원)"

"대한민국은 도시 구석구석 야간에도 '아녀자들'이 밤거리를 걸을 수 있는, 지구상에도 몇 개 안 되는 나라만 갖고 있는 우수한 치안 시스템을 갖고 있다. (12월10일,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

지난해에 이은 국회의 연말 필리버스터 정국에 다시 막말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여당이 정기국회 내내 밀어붙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국가정보원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지 불과 사흘 만이다. 여당의 '입법 독주'와 그 부작용을 비판하던 야당이 갑자기 핵심을 빗겨간 발언들을 쏟아내면서, 그들이 연단에서 보낸 시간들도 빛이 바랬다.

국정원법 필리버스터의 첫 번째 주자로 나선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아녀자들'이란 부적절한 단어와, 현실과 괴리된 인식을 드러내는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다. 다섯 번째로 단상에 오른 김웅 의원도 성범죄자 관련 발언이 도마에 올랐다. 그는 "성폭력 범죄라는 건 충동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고, 그 충동이 대부분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서 폭발하는 경우가 많다"며 "불필요한 스트레스나 불필요한 침해 같은 게 있는 경우 오히려 성폭력 전과자들의 재범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이 의원은 정부·여당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사법개혁을, 김 의원은 피해자는 외면한 채 가해자 처벌에만 집중하는 현행 법 체계를 각각 비판하던 도중이었지만, 상식을 벗어난 발언은 그들의 토론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두 의원이 연단에서 보낸 각각 '8시간', '5시간7분'의 노력도 빛이 바랬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일제히 "조두순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란 것이냐", "귀를 의심케하는 몰지각한 여성 비하 발언 등의 막말"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김 의원은 "성폭력전문당으로부터 더러운 공격을 받으니 어이가 없다"고 받아치면서 논쟁을 예고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다. 2020.12.1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야당의 토론이 '막말버스터'란 오명을 썼지만 민주당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처지다.

국정원법 찬성 필리버스터에 나선 홍익표 의원은 공영방송과 진보성향 언론사들을 지명하며 "법조기자단에서 철수하라"고 발언해, 이들 언론사를 공개 압박을 했다는 비판에 부딪혔다. 특히 여당의 선거법, 검찰에 이은 언론 개혁의 포석이란 해석으로 이어졌고,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권이 꿈꾸는 언론관은 자신들이 맞섰다는 군사정권보다 더한, 오직 '문비어천가'를 부르는 국영방송 체제"라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당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필리버스터를 얼마나 더 봐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필리버스터를 부를 수 밖에 없던 여당의 독주, 법안을 둘러싼 입장차는 이해되지만 메시지의 울림 대신 막말 논란만 낳은 토론이 무슨 소용이냐는 자조다. 필리버스터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무관심 속에 진행된다는 점도 자조의 배경이다. 한 관계자는 "당번조를 정해서 교대로 출석체크를 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여야가 서로를 향해 겨눈 '말' 가운데 병상 부족 등으로 가시화된 코로나19 대유행 사태로 불안에 떠는 국민에 대한 걱정을 찾기 힘들다는 것 또한 씁쓸한 대목이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사당은 24시간 내내 불을 밝히고 있지만, 그 불빛이 국민을 위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soho090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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