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사흘에 한 명씩 다쳐"..감독도 소용없는 한국타이어 노동 현장

정재훈 2020. 12. 11.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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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11년 연속 인증한 품질경쟁력 우수기업. 미국 다우존스의 지속가능경영지수를 5년 연속 인정받고, 2020년 3분기 1조 8,866억 원의 매출과 영업이익 2,246억 원을 달성한 글로벌 선도 타이어 기업.
모두 한국타이어를 두고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화려한 수식어가 붙은 기업 뒷면엔 ‘산업재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벌어졌던 그림자 같은 일들을 꺼내보려 합니다.
어쩌면 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타이어공장 노동자들이 겪어왔던 비극을 담기엔 짧고 또 짧을 수도 있겠습니다.

타이어공장 노동자 양 모 씨가 끼임 사고를 당한 타이어 성형기.


■목숨을 앗아간 타이어 성형기

2020년 11월 18일. 이날 오후 3시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타이어 성형 작업을 하던 생산직 노동자 46살 양 모씨가 쓰러져 있는 것을 인근에서 작업 중이던 동료가 발견했습니다.
회전하고 있던 성형기 원통에 옷자락이 말려들어 간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였습니다.
119구급대가 공장에 들어왔고, 쓰러진 양 씨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며 양 씨를 인근 대학병원으로 급히 옮겼습니다.
머리를 크게 다친 그는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사고 17일 만에 결국 숨졌습니다.
사고가 난 타이어 성형기에는 3개의 안전센서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안전센서가 쏘는 레이저에 노동자의 신체나 물건이 닿으면 동작하는 원통이 자동으로 멈추도록 한 장치입니다.
일하다 넘어지거나 비정상적인 접근이 일어났을 때 원통에 휘말려 다치거나 죽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달아놓은 겁니다.
그런데 노동청 초기 조사에선 사고 당시 이 안전센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사고 직후 현장에 급파된 산업안전보건공단은 해당 공장의 성형기 14대 모두에 대해 센서 오작동 여부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노동청 관계자는 “어떤 이유로 센서가 작동을 안 했는지 추가로 확인할 예정이다. 현장에서 추가적인 위험이 없도록 예방조치를 한 후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대전고용노동청 앞에서 천막 농성 중인 한국노총 고무노련 한국타이어 노동조합 조합원.


■중대재해 정기감독 중 벌어진 중대재해

2020년 11월 17일. 양 씨가 사고를 당하기 하루 전날입니다. 이날은 대전고용노동청이 한국타이어를 상대로 중대재해 정기감독에 착수한 날이기도 합니다.
2017년 10월 22일. 한국타이어 금산공장에서는 컨베이어벨트 설비에 생산직 노동자 32살 최모 씨가 끼임 사고로 숨졌습니다.
당시 노동당국은 한국타이어 금산공장에 대해 ‘전면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중대재해 정기감독에 착수했습니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만큼 노동청은 ‘한국타이어 테스크포스팀’을 산재예방지도과에 별도로 두고 해마다 정기적으로 중대재해 정기감독을 벌여왔습니다.
양씨가 사고난 날도 중대재해 정기감독이 한창 벌어지던 시점이었습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는 ‘황당해서 할 말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2020년 11월 24일. 한국노총 고무노련 한국타이어 노동조합은 대전고용노동청에 천막을 치고 ‘진상규명’을 하라며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잊고 있던 노동자들의 호소

2019년 12월 18일.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라는 노동계의 릴레이 집회가 있던 날입니다.
한겨울의 맹추위에도 노동자들은 맨땅에 앉은 채 산업재해로 죽음에 내몰리는 노동자를 막아달라며 정부와 기업에 항의와 호소를 번갈아 외쳤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날,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을 들렀습니다. 이 자리에서 타이어공장 노동자들은 다치고 병드는 산업재해가 잇따르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날, 산업재해 현황을 알아보고 취재를 해보겠다는 말을 노동자들에게 무심코 내뱉고는 아주 쉽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1년여 지난 후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쉽게 내뱉고 잊고 있었던 말이 되살아났습니다. 갑자기 부끄러워졌습니다.
2020년 11월 23일. 양 씨가 타이어 성형기에서 사고를 당한 지 엿새째 되는 날입니다. 노동청을 찾았습니다.
이들이 다쳤다는 근거를 찾아야 했습니다. 정확한 수치를 알아야 취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료는 커녕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노조나 기업이 주장하는 일방적인 자료가 아닌 객관적인 자료가 필요했습니다.
국회를 두드렸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2개의 문서를 얻어냈습니다.


■사흘에 한 명씩 일하다 다쳤다

2017년 1월 21일.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노동자 이모 씨가 넘어짐 사고를 당한 날입니다.
이 씨를 시작해 2020년 11월 11일까지 4년 동안 395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다쳤습니다.
한국타이어가 노동청에 제출한 ‘산업재해 조사표’에 기술된 내용입니다.
정확히 3.5일에 1명씩, 타이어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입었습니다.
14쪽에 달하는 이 문건에는 다친 노동자들의 상황이 빼곡하게 적혀있었습니다.
다쳐서 쉬어야 하는 휴업 예상일수가 30일이 넘는 산재 피해 노동자들도 154명이나 됐습니다.
재해를 입어 휴업일이 60일인 사람은 38명, 90일이 넘는 경우도 73명으로 나왔습니다.
하루에 3명 이상 다친 날도 13일이나 됩니다.
특히, 금산공장 컨베이어벨트 사망사고와 대전공장 타이어 성형기 사망사고처럼 원통 기계와 컨베이어 같은 설비에 작업 중 ‘끼임’으로 인한 산업재해는 43건에 달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은 “끼임 같은 경우에는 산재예방에 있어 사실, 대단한 설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간단하게 예방할 수 있지만 작업 환경에서 배려나 산업안전을 중시한 관계를 만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여태까지 산업안전 분야에 대한 투자나 신경들을 그만큼 쓰지 않았다. 기업주 차원에서의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타이어공장 노동자들은 여러 종류의 설비에 몸을 다쳤습니다.
공작기계, 칼날, 뜨거운 수증기, 압출기, 지게차, 펌프, 파편, 너트와 볼트까지 모두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종류였습니다.
찔리고, 베이고, 깔리고, 부딪히고, 떨어지고, 절단되고 재해 형태도 천차만별입니다.


양진권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 노동안전부장은 “진짜 운이 좋으면 다치는 거고, 운이 없으면 사망으로 이어지는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안전에 투자하라고 계속 사측에 이야기했는데도 사망사고가 난 다음에서야 뒤늦게 투자한다는 모양새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2017년 중대재해 이후에도 작업환경이 변했다는 것이 피부에 와 닿는 것이 없다.”라고 덧붙였습니다.


■3년 전에도 경고는 있었다.

2017년 11월 28일. 한국타이어 금산공장의 중대재해 작업중지명령 해제 이후 안전작업 이행 여부가 마지막으로 있던 날입니다.
이후 노동청은 191쪽에 달하는 ‘2017년 한국타이어 금산공장 정기감독 및 종합진단 결과’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금산공장 사망사고로 인한 감독에서 1,691건의 위반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1공장부터 4공장까지 공정별, 설비별 위반 현황을 분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양 씨의 목숨을 앗아간 타이어 성형기에 대한 위반내용은 모두 356건에 달했습니다.
기본적인 안전난간부터 ‘쉽게 작동할 수 없는 비상정지 장치’, 중앙차단기 파손, 방호망 파손 등의 안전설비가 미흡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2017년 한국타이어 금산공장 정기감독 및 종합진단 결과 보고서.

최근까지 대전과 금산공장은 2017년 정기감독 당시와 같은 종류의 타이어 성형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타이어 성형기가 양 씨의 목숨을 앗아가기 3년 전, 이미 경고는 있었습니다.
더욱이 2017년 한국타이어 측은 노동청이 내린 전면작업중지명령을 해제하기 위해 780억 원의 안전보건 관리 투자를 약속하고 ‘안전보건 개선계획’을 제출했습니다.
2017년 11월 8일. 대전고용노동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앞으로 투자 이행 여부와 안전보건 개선계획 이행 여부를 지속해서 확인, 감독하겠다”며 “사고가 난 금산공장뿐 아니라 대전공장에 대해서도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노동청이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던 ‘대전공장’, 안타깝게도 중대재해 사망사고는 반복됐습니다.


■많고 적음의 문제

2020년 12월 8일. 노동청은 보도자료를 발표했습니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한국타이어에 특별감독을 벌이겠다는 내용입니다.
12월 9일부터 18일까지 열흘 동안입니다.
이번엔 산재사망사고가 난 대전공장뿐만 아니라 금산공장까지 감독을 벌인다고 합니다.
투입 인력은 감독관 21명과 안전보건공단 전문가 10명입니다.
노동청은 “안전보건관리 역량이 있음에도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반복적으로 중대재해를 유발하는 사업장에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했습니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 진입하는 대전고용노동청 산업안전 감독 차량.

2020년 12월 9일. 4년간 395건의 산업재해와 2번의 중대재해 사망사고, 위반내용 1,691건에 대해
한국타이어 측에 왜 이렇게 ‘많이’ 사고가 났고 ‘많은’ 위반내용이 나왔는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이 돌아왔습니다. ‘많고 적음의 기준은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맞는 말이었습니다. 많고 적음의 법적 기준은 없습니다. 3.5일마다 1명씩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것은 어디와 비교하느냐에 따라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습니다.
1,691건의 위반사항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보도에선 단 한 번도 ‘많다’라는 표현을 쓰지 못했습니다.
비겁하지만, 판단은 국민들의 몫으로 돌리겠습니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정문에 내걸린 현수막.

2020년 12월 10일. 한국타이어는 “회사는 그동안 정기감독 및 종합진단 등에서 지적받은 것에 대해서는 모두 개선조치를 완료했다”며 “회사는 안전체계 확립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투자해왔으며,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는 노후설비에 대해 현대화작업을 진행 중이다”고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타이어공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를 설명하는 오동영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 부지회장.

2020년 12월 11일.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취재했습니다.
2021년 기자수첩에는 한국타이어가 공란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타이어공장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2명의 노동자에게 숨지고 나서야 뒤늦게 취재에 나서는 송구스러움과 미안한 마음을 담아 진심 어린 명복을 빕니다.

정재훈 기자 (jjh11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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