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엿장수 마음대로 '핀셋 방역'

안영 기자 2020. 12. 12.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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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책부 안영

“과학도 논리도 없이 그저 같은 업종에서 집단감염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그 업종 전체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아예 영업을 못 하게 하는 게 핀셋 방역인가요?”

서울 송파구 위례신도시에서 피아노 교습소를 운영하는 학원장 A씨는 이렇게 말했다. A씨는 “정부는 코인노래방에서 감염자가 나오면 노래방을, 스타벅스에서 감염자가 나오면 카페를 때려잡았다. 그게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는 당해보고서야 깨달았다”고 했다. “다른 사장님들 억울함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고도 했다.

정부는 지난 8일 수도권 학원들을 상대로 집합금지령을 내렸다. 식당·카페 등 다른 업종처럼 ‘밤 9시 이후 영업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아예 ‘24시간 내내 문을 열지 말라'는 것이다. 주먹구구식이란 불만이 터져나왔다. 학원 강사 B씨는 “학원이란 공간이 코로나 확산의 주범인 밀폐·밀집·밀접 3밀 환경과 큰 상관도 없는데 타깃이 된 건 이해할 수 없다”며 “그저 얼마 전에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이러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인천 부평구에서 영어 교습소를 운영하는 C씨는 “문 닫은 내 학원 옆에서 사람들이 떠들며 식사하는 식당이 버젓이 영업하는 걸 볼 때마다 화가 치민다”며 “그 식당도 먹고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왜 시기와 질투를 느껴야 하느냐”라고 했다.

정부가 정책을 내면 사람들은 대책을 만든다. 인천에서 유·초등부 보습학원을 운영하는 D씨는 “학원 영업을 금지하니 스터디 카페나 패스트푸드점에 모여 교습하는 강사들도 수두룩하다”며 “정부가 일차원적인 땜질 정책으로 우리를 괴롭히면, 우리도 꼼수와 대안을 찾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고 했다.

‘배신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경기 고양시에서 예체능 학원을 운영하는 E씨는 “현장 감독 나온 교육청 공무원들 앞에서 피아노 건반이 갈라지도록 소독제를 바르고 한 시간 간격으로 연무기를 뿌려댔다. ‘잘하고 계신다’고 하더라. 그런데 바로 그다음 날 집합금지령을 내렸다”고 했다.

단체 카카오톡방, 네이버 카페를 통해 모인 수도권 학원장 500여 명은 ‘코로나 학원 비대위’를 만들어 집단 소송을 준비 중이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정부에 손해배상 비용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소송에 참여하는 인천 부평의 어학원 원장 F씨는 “PC방 업계가 지난 9월 정부를 상대로 집합금지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준비하자 정부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집합금지를 풀어주더라”며 “정부의 일방적 ‘희생 제의(祭儀)’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은 소송전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핀셋 방역’을 제대로 하려면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밀하게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과학’이 아나라 ‘감(感)’에 의존하며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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