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확진 1000명 넘자, 병원 통째 내놓은 의사 김병근

이태윤 2020. 12. 14. 00: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평택 박애병원 김병근 원장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나섰다"
코로나 중환자 전담병원으로 제공
절박했던 병상 220개 새로 확보
김 원장, 3월엔 대구 치료센터 봉사
김병근 원장

1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환자가 1030명으로 집계됐다. 국내 발생 환자만 1002명이다. 1월 20일 첫 환자 발생 이후 1000명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환자가 급증하면서 즉시 가용 가능한 중증 환자 병상은 전국 17개로 줄었다. 수도권이 특히 열악해 서울 3개, 경기 2개뿐이며 인천은 아예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긴급 주재해 “지금 확산세를 꺾지 못하면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도 검토해야 하는 중대한 국면이며 3단계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말했다. 일단 수도권 2.5단계를 유지했다.

의료 현장은 한계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서울의 A대학병원은 이날 응급실로 실려 온 환자에게 급히 인공호흡기를 달아 고비를 넘겼다. 알고 보니 코로나19 환자였다. 그런데 이 병원의 코로나19 중환자실이 꽉 찬 상태였다. 다른 병원 몇 곳에 전화를 돌려 간신히 한 자리를 찾아서 거기로 보냈다. 수도권의 한 공공병원은 최근 당국 요청으로 힘들게 병상을 만들었다. 그런데 코로나19 환자를 받지 못했다. 의사가 없었다. 대부분의 의사가 이미 코로나19에 매달려 있었다. A병원 의사는 “2, 3월 대구 상황이 지금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2주만 지나도 위중·중증 환자가 700명으로 늘고(13일 179명) 인공호흡기를 못 달아서 사망하는 사람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체계 붕괴를 막아라-.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다. 한국은 전국 병상의 90%가 민간병원에 있다. 민간병원을 강제로 징발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종합병원을 통째로 코로나19 중환자 전담 거점병원으로 내놓은 의사가 있다. 2월 대구에서 대구동산병원이 그랬던 것처럼. 경기도 평택시 박애의료재단 박애병원 김병근(사진) 원장이 주인공이다. 김 원장은 13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중환자 병상이 계속 부족해지는 것을 보면서 한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누군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지금 방역과 치료에 있어 중요한 상황이므로 우리 병원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전담 치료병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와 협의해 코로나19 중환자를 받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220개 병상을 다 비워서 코로나19 환자를 받을 예정이다. 김 원장은 “의료진과 환자의 동선 등을 고려해 병상 간 공간을 재배치하고 있다”며 “산소치료만으로 상태가 나아질 수 있는 준(準) 중환자 80~100명을 받을 예정이며, 이르면 다음 주에 내부 칸막이 설치 등을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장투석 장치를 이용해 투석이 필요한 코로나19 확진자를 받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전담병원 역할을 마쳐도 ‘코로나 병원’이라는 낙인이 남을 수 있는데 왜 나섰을까.

Q : 병원에 득 될 게 없는데.
A : “정부가 보상을 약속한 만큼 일단 믿고 지원했다. 정부가 ‘나 몰라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보상을 바라기보다 사명감으로 (의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 입원환자는 어떻게 하나.
A : “정부와 함께 설득해 다른 데로 보낼 예정이다. 의료진이 양해를 구하고 설득한다면 환자들도 이해해줄 거라 믿는다.”
“손익 따질 때 아니다, 다른 병원도 병상 지원했으면”

코로나 중증 환자 즉시 사용 가능한 병상 전국에 17개

박애병원은 코로나19 전담병원을 자원했다. 중수본 관계자는 “코로나19 전담병원 신청을 받아달라고 대한병원협회에 요청했고, 이 소식을 들은 박애병원 측이 ‘다 비우겠다. 우리가 가능하냐’고 연락해 왔다”고 말했다. 평택시는 박애병원이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다는 문자를 보내 일반환자가 외래진료를 오지 못하게 안내할 계획이다.

김 원장은 코로나19 진료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 대구은행연수원 생활치료센터장을 맡아 센터를 개설하고 전신 보호복을 입고 환자를 돌봤다. 지금은 코로나 선별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다. 김 원장은 “병원이 추구해 온 ‘박애(博愛)’를 실천하려고 대구 봉사를 결심했다”며 “환자가 음성 판정을 받고 센터를 나설 때 자랑스럽고 뿌듯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우리 병원이 평택·오산·안성이나 충청권 환자 거점 병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모든 환자를 다 수용할 수는 없다”며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는 의료계가 나서야 한다. 우리 병원 이외에도 각 권역의 다른 많은 병원들이 함께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88년 필리핀으로 처음 의료봉사를 다녀온 뒤 수시로 의료봉사를 한다. 지난해 4월 직원과 방글라데시 로힝야족 난민촌 봉사를 다녀왔다. 크고 작은 소요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김 원장이 다녀온 후 방글라데시 정부가 의료진 안전을 이유로 의료봉사를 막았다. 박애병원은 1957년 개원한 경기도 평택시 최초의 종합병원(220개 병상)이다. 의사·간호사 130명을 포함해 230명이 근무한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