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13평 4인가족'은 질문"..靑 한밤의 해명, 번지수 틀렸다

윤성민 2020. 12. 14.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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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살고 싶은 임대주택 현장점검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경기도 화성시 LH 임대주택 100만호 기념단지인 동탄 공공임대주택 단지를 방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인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신혼부부에 아이 1명이 표준이고, 어린아이 같은 경우에는 2명도 가능하겠다.”

지난 11일 경기도 화성의 13평(44㎡·전용면적) 공공임대주택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다. ‘13평 아파트에 4인 가족이 살 수 있겠다’는 취지로 해석돼 논란이 커졌다. 비판성 언론 보도가 이어졌고, 부동산 인터넷 커뮤니티엔 “문 대통령이 공간 개념이 없다” “서민 가슴에 비수” 등의 글이 빗발쳤다.

청와대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12일 오전 0시 11분, 오후 2시 54분 두 차례 서면 브리핑으로 관련 보도를 반박하면서, 문 대통령의 발언은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4인 가족도 생활 가능하다’는 취지의 설명을 하자 “확인을 하며 ‘질문’을 한 것”이라고 했다. 오후 9시 16분엔 유승민 전 의원의 '니가 가라 공공임대' 언급을 비판하는 서면 브리핑을 또 냈다.

“가능하겠다”라는 발언이 인정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청와대의 ‘괴이한’ 반박에 당장 야권이 공세에 나섰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청와대 설명대로 질문 형식이었다고 해도, 누가 봐도 그건 강한 긍정의 확인성 질문”이라고 했고,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질문’이었다는 청와대의 해명은 억지”라며 “백번 양보해 13평 아파트를 보고 저런 질문을 하는 것은 상식적인가”라고 쏘아붙였다.

(서울=뉴스1) 박정호 기자 = 살고 싶은 임대주택 현장점검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경기도 화성시 LH 임대주택 100만호 기념단지인 동탄 공공임대주택 단지를 찾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인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발언을 ‘질문’으로 규정하며 최대한 논점을 바꾸려 했지만, 논란이 증폭된 기저엔 현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근본적 회의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며 각종 부동산 규제책을 쏟아내자 적지 않은 이들이 집값 하락을 기대했다. 하지만 집값은 반대로 계속 올랐다. 과거엔 대출이라도 받아 집을 샀지만, 현 정부에선 강력한 대출 규제로 집 사기가 더 어려워졌다.

이 와중에도 문 대통령은 “더 강력한 대책도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있다”(2017년 8월),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 자신 있다고 장담한다”(2019년 11월), “급격한 가격 상승들은 원상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올해 1월)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하지만 집값은 결국 3년반동안 54.2%(서울 아파트 중위가격, KB주택가격동향) 올랐다. ‘전세나 살아야지’라는 생각도 지난 7월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임대차 3법’을 통과시킨 이후 전세 매물이 쏙 들어가 힘들어졌다. 전국 아파트 전세값은 66주째 상승 중이다.

민간 주택시장이 매매·전세·월세 가리지 않고 급등하는 상황에서, 집값을 잡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문 대통령이 공공임대주택을 찾아 “자기 집을 꼭 소유하지 않더라도 임대주택으로도 충분히 좋은 주택으로도 발전해 갈 수 있는…”이라고 말하는 게 과연 집없는 국민에게 위로가 될지 의문이다. 공공임대주택은 현재로서는 민간 주택시장을 보완하는 역할 정도만 한다는 평가다. 공공임대주택은 총 주택 수 대비 8%에 불과하고, 소득 기준 등 자격 요건이 까다로워 많은 이들에겐 기회조차 없다. 대다수 중산층이 거주할 수 없는 공공주택을 두고, “살만한 데 왜 안 들어오냐”고 하는 것도 공허하다.

결국 문 대통령의 11일 발언은 국민은 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인데, 밥은 주지 못하면서 돌연 빵 가게 가서 “빵이 충분히 맛있으니”라고 말하는 격 아닐까. 강 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에는 ‘주거취약계층은 물론 중산층에 희망을 주려던 대통령의 본뜻’이라는 문장이 있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건 본뜻이나 선의가 아니라 정책의 결과다.

윤성민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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