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K방역… 이젠 국민 각자가 방역사령탑이다
연말연시 모임 피해야… 못미더운 정부탓, 개인 방역부담 더 커져
가족간의 감염 막아야… 고령층·어린이 있으면 집에서도 마스크
올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뒤 327일 만에 하루 신규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지난 12일 1030명을 기록했다. 누적 확진자는 4만2766명을 기록했다. 우리 국민 1212명 가운데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겨울 대유행을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과 경고를 흘려듣고 ‘K방역'으로 세계적인 방역 모범국이 됐다고 자랑하던 정부의 방역 대책 실패가 초래한 일이다. 정부는 K방역 홍보에만 1200여억원을 썼다. 하지만 지난 2~3월 대구·경북 대유행 당시 1만개의 코로나 병상을 확보하겠다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이왕준 대한병원협회 코로나 비상대응본부 실무단장은 “감염병은 일반 진료보다 4~5배의 의료진이 필요하지만 정부가 미적댔고, 진단 검사 확대가 필요했지만 정부는 느슨하게 대처했다”고 말했다. 최재욱 고려의대 예방의학 교수는 “영국과 미국에서 접종이 시작됐거나 조만간 시작될 화이자, 모더나 백신을 확보하려면 내년 10월에나 가능한 상황으로 보인다”면서 “백신이라는 무기 없이 코로나 전쟁을 치르게 돼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민 각자가 방역 사령탑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한다. 정부가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중앙방역대책본부회의에서 수도권 거리 두기를 3단계로 상향 조정하지 않은 만큼, 국민 각자가 방역 수칙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의료 전문가들은 지금 상황은 IMF 금융 위기와 같은 국난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에 나서 시련 극복 분위기를 만들었듯 개인이 방역 주체로서, 가족이 방역 공동체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대유행 기간 동안 고령층 있는 가족은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식사도 따로 하는 게 좋다”며 “이렇게 환자가 많이 나올 때에는 가족 간 감염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 개개인이 방역 주체이고, 가족 전체가 공동체라는 인식하에 당분간 여럿이 모이는 만남을 자제해야 한다. 이번 연말연시는 모임을 만들지 말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게 ‘국난 극복'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동참하지 않으면 폭증하는 환자를 감당 못해 의료 인프라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교수는 “최소한 내년 하반기까지는 코로나는 우리 일상과 함께 가야 하는 질병”이라며 “위드 코로나 시대에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고 가려면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즉시 3단계로 올리고… 장충체육관에 병상 만들어라”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하루 1000명을 넘어서면서 이들을 치료하고 수용할 의료 인프라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이런 추세라면 코로나 확진자들이 병상을 찾아 이 병원, 저 병원을 헤매게 되는 ‘코로나 난민’이 속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미 확진 판정을 받고도 집에서 대기하는 확진자들이 늘어나는 중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당장 해야 할 일로 방역 대책의 강도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리고, 병상·생활치료센터 등 확진자 격리 치료 시설을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3단계 상향 조정 망설일 여유 없다
전문가들은 수도권의 경우 사회적 거리 두기를 즉시 3단계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확산 추세가 이어져 14일과 15일 신규 확진자가 1000명 선일 경우 3단계 발동 요건인 일주일 평균 확진자 800~1000명에 도달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선제적 상향 조치를 주문했다. 일부에서는 “지역별로 거리 두기 단계 차등을 두면 이동이나 여행으로 감염원이 줄지 않는 만큼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3단계 상향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병상과 생활치료센터 최대한 확보해야
지방자치단체별로 연수원, 기숙사 등 생활치료센터를 확보하는 긴급 동원령도 필요하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앞으로 확진자가 더 쏟아질 경우 장충체육관이나 잠실체육관에 대거 병상을 만들어 생활치료센터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료 전문가들은 코로나 진료 병상과 의료진을 체계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정부와 병원협회·의사협회·간호협회 등 의료 단체들과 긴급 대응위원회를 출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가 민간 병원을 찾아다니며 “코로나 병상을 내놓으라”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격리 기간 단축 등 방역 수칙 현실화 검토해야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 교수는 “감염 전파력이 높은 20~40대가 모여 있는 회사·학교·기관 등은 신속 항원 검사를 주기적으로 시행하여 무증상 감염자를 조기에 발견하여 전파를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확진자 접촉 등으로 인한 격리 기간도 격리자의 상황과 상태에 따라 격리 기간을 8일, 10일, 14일로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미국은 이런 방식으로 격리 환자 관리 부담을 줄였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지난 10개월 동안 코로나 겨울철 대유행에 대비해 정부가 뭐 했나 싶을 정도로 이뤄진 게 없다”며 “의료 과부하를 막기 위해서는 50대 이하 경증 환자는 자가 치료토록 하는 것이 차선책”이라고 말했다. 병원은 중등도 이상 환자 입원 치료에 집중하자는 제언이다.
◇의료계 코로나 의료진 확충에 나서야
코로나 대응 의료 인력 확대도 시급한 문제다. 방역 당국이 대한의사협회와 대협력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2~3월 대구·경북의 1차 대유행 당시처럼 의료계의 자원 봉사 물결이 다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의료진의 헌신에만 기댈 순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왕준 대한병원 코로나 긴급대응 실무단장은 “코로나를 진료하는 병원과 의료진에 대해서는 사후에 피해 정도를 계산하여 정산하는 현재 방식이 아닌, 아예 코로나 진료 수가를 대폭 올려서 건강보험 수가에 반영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장은 코로나 치료 의료진에게 일당 1만4000원만 지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우용(삼성서울병원 외과 교수) 대한외과학회 이사장은 “의사 실습을 못 치른 2700여 명 의대 4학년 학생들이 내년 1월에 의사 필기 시험에 합격하면 임시 면허를 부여하여 코로나 진료 현장에 투여하는 것도 의료진 공백을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백신 확보 위한 범정부 구매단 구성해야
정부는 코로나 백신 4400만 명분을 확보했다고 하지만, 선구매를 확정한 1000만 명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외에는 계약이 완료된 것이 없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외에 외교부, 산업통상부까지 총동원해 거국적인 백신 교섭단을 꾸려서 백신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계, 제약 업계까지 협력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 방역 대책 조언 전문가 명단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기조실장,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 이우용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 정재훈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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