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버린다" 협박·야릇한 시선.. 조사표 찢어 던지기도 [탐사기획-위협 받는 '통계 첨병']
최근 3년간 고함·욕설 등 경험 529명
응답자 39% "항상 사고 위험에 불안"
모욕적 언행·성희롱에 무방비 노출
첫 조사 후 "사진 보내달라" 문자에
"어쩜그리 살결이.." 게슴츠레 시선
옷 벗는 남성 피해 집 뛰쳐 나오기도
불응률 높으면 인사고과에 불이익
위험 무릅쓰고 유대관계 유지 애써
35% "사고 위험 통계조사에 악영향"
“먼저 욕을 하지요. 왜 귀찮게 하느냐고요. 국가통계 조사한다고 하면 나라에서 해준 게 뭐 있냐면서요. 정치 이야기로 일장 연설을 하고요. 그래도 가만히 듣고 있어요. 문 못 닫게, 발을 문틈에 밀어 넣고요. 그러다가 분이 풀리면 조사를 해주기도 해요. 그런데 욕만 한참을 하다가 얼굴에 대고 삿대질을 하고, 조사표를 찢어서 얼굴에 던져요. 나가라고 밀치고요. 특별한 일이 아니라, 늘 겪는 일이에요.”<통계조사관 A(44·여)씨>
국가통계를 조사하는 통계조사관들이 ‘수시’로 겪는 상황은 이렇다. 폭언은 익숙하고, 성희롱은 비일비재하고, 성추행이나 더한 일이 벌어질 만한 아슬아슬한 상황은 재빨리 눈치 채고 회피하는 ‘노하우’까지 체득했을 정도다.
13일 세계일보 설문에서 최근 3년간 모욕적인 비난이나 고함, 욕설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통계조사관은 529명이었다. 신체적 위협이나 폭력을 경험한 조사관은 84명,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말이나 행동을 경험한 조사관도 무려 122명에 달했다.
통계시스템에서는 특정인이나 특정가정이 아니라 특정가구, 예를 들어 A다세대주택의 101호, B아파트의 201호가 표본가구로 선정되고, 그 집에 사는 불특정인을 조사하는 식이다. 기존에 조사하던 대상자가 이사를 가면, 새롭게 이사 오는 사람이 조사 대상자가 된다. 조사가구에 ‘성범죄자 알림e’에 등록된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조사관들 사이에서 무용담처럼 회자된다. 누가,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방문하기 전에는 알 수가 없어서다.
설문에서 통계조사 수행 과정에서 각종 사고의 위험에 불안을 느끼는 정도를 묻는 질문에 38.6%에 해당하는 321명이 ‘항상 불안을 느낀다’, 449명(55.5%)이 ‘가끔 불안을 느낀다’고 답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60대 남성분인데 조사할 때마다 ‘어쩜 그렇게 살결이 뽀얗고 예쁘냐’, ‘우리 며느리도 이렇게 예쁘면 얼마나 좋겠냐’ 하면서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쳐다보는데 기분이 너무 나빠요. 커피 한잔 마시자, 저녁에 맥주 한잔 하자고 하고요. 조사를 계속해야 하니까 친절하게, 농담처럼 넘기지요. 다른 것보다 저를 국가에서 나온 통계조사관이 아니라 여자로 본다는 느낌이 제일 싫어요.”<통계조사관 C(45·〃)씨>
“트렁크는 아니고, 파자마같이 얇은 바지요. 그걸 입고 나와요. 자꾸 들어오라는 걸 한쪽 다리는 신발장에 걸쳐놓고, 다른 한쪽은 거실에 걸쳐놓고 앉은 채로 조사해요. 신발은 안 벗고요. 조사를 한참 하는데 ‘성인이니까 이렇게 남의 집 다니고 하면 다 알 거 아니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민망한 곳을 만지며 옷을 벗어요. 도망치듯 집을 뛰쳐 나왔는데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해요. 이런 일을 겪는 걸 남편이나 가족들이 알까봐 말도 못하고요.”<통계조사관 D(51·〃)씨>
“가구 방문을 했다가 중학생 정도 되는 아들을 만나서 아버지 계실 때 다시 오겠다고 명함을 남겼어요. 밤늦게 아버지라는 분이 전화가 와서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모르는 사람 집에 들여서 아들을 흠씬 패줬는데 또 찾아오면 또 때리겠다고요. 전화기 너머로 아들 울음소리가 들려오는데 그 소리가 아직 생각나요. 그 집은 다시 못 갔어요. 아들을 제가 위협하는 거니까요.”<통계조사관 F(47·〃)씨>
한 통계조사관은 인터뷰에서 “1인 가구나 중년 남성 집 문 앞에서 밤에 혼자서 조사하는 경우엔 될 수 있으면 대화를 적게 나누고 조사를 빨리 끝내려고 한다”며 “10개를 질문해야 하면 5개, 6개만 겨우 물어보고 나오니까 아무래도 부정확한 조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통계조사관들이 (안전사고 등을) 공식적으로 보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 “조사관들이 당당하게 조사에 임하도록 교육하고, (조사 방해 등의) 심각한 경우는 법적 조치까지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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