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 시키고 후드티도 만들었다..분노로만 소비한 조두순

정진호 2020. 12. 1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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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12년을 복역한 뒤 출소한 조두순이 사는 경기도 안산 거주지 앞에서 인근 주민들이 유투버 때문에 불편을 겪는다며 경찰에 항의하고 있다. 뉴스1

“'구독' 많이 눌러주시면 조두순 집에 쳐들어가 끌고 나오겠습니다.”
지난 12일 경기도 안산의 조두순 집 앞에서 방송 중이던 BJ(인터넷방송 진행자)가 한 말이다. 조두순 출소 당일 오전엔 조두순 주거지 골목에 주민과 유튜버, 취재진과 경찰까지 100여명이 뒤섞였다.

조두순이 출소한 뒤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 플랫폼이 '조두순' 키워드로 도배됐다. 유튜브에서 ‘조두순’을 검색하면 ‘생중계’, ‘응징’ 등의 제목이 함께 달린 영상 수십 개가 뜬다. 이들은 유튜브로 자택 앞 상황을 생중계하면서 “사형시켜라”, "추방하라“고 소리쳤다.

조두순을 응징하겠다는 제목의 콘텐트를 올린 일부 유튜버는 소동을 벌이다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조두순 거주지에서 난동을 피워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경찰에 입건된 이들은 현재까지 4명. 경찰은 여기에 유튜버 3명까지 재물손괴 등 혐의로 추가 입건할 방침이다. 기존 업무에 조두순 재범을 막아야 하는 경찰은 유튜버 통제까지 떠맡게 됐다. 안산 단원경찰서는 14일에도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경찰 100명을 조두신 집 주변에 배치했다.

20여년간 보호관찰 업무를 한 법무부 관계자는 “그간 누적된 조두순에 대한 분노가 일거에 표출되는 과정으로 보인다”면서도 “분노마저 상품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조두순 거주지로 자장면을 배달시키고, 집 앞에서 자장면을 먹는 영상에 어떠한 공익이 있느냐는 지적이다.

한 유튜버는 12일 조두순의 얼굴을 그린 후드티를 만들어 판매한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그는 후드티 앞뒤에 ‘조두순을 절대 잊지 말자’는 영문 글귀와 함께 조두순의 얼굴을 새겼다. 판매 홈페이지까지 만들었지만, 비난 여론이 일자 판매하지 않고 사과 영상을 올렸다.

분노를 상품화하는 데만 열을 올렸지, 제도 차원에서 어떻게 조두순의 재범(再犯)을 막을지 대책에 대한 목소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제2의 조두순’은 관심을 비껴갔다. 미성년자 성폭행 재범 고위험군으로 분류되고도 1대1 보호관찰 대상에서 제외된 사람만 180여명이다. “인력이 부족하다”는 보호관찰 현장에서의 목소리를 이번에도 무시하면 다음은 누가 희생될지 알 수 없다.

이중처벌 논란이 있는 보호수용법도 조두순 출소 이후보다 이전의 논의가 더 활발했다. 출소 후 보안처분이 인권침해라면 대안은 무엇인지, 침해를 최소화하면서 보호수용을 하는 독일‧스위스 모델을 도입하는 건 어떨지 생산적인 대안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중앙일보 12월 14일 자 14면〉

한 안산 주민은 조두순 집 인근에 잔뜩 몰린 이들에게 "당신들 12년 전에 뭐했느냐. 피해자 가족이 법원에서 피켓 들고 있을 때 뭐했는데 왜 이제 와서 그러느냐"고 꼬집었다. 우리는 조두순에게 분노하느라 더 중요한 걸 놓친 건 아니었을까.

정진호 사회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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