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2주 온라인 교육 후 투입..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두렵다"

최은서 2020. 12. 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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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조사 업무가 민간→지자체로 이관
아동학대는 고난도 전문성 요구하는 일임에도
담당공무원 부실한 교육 받고 곧바로 현장에
지난달 16일 서울 양천경찰서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주최로 진행된 '16개월 입양 아동 학대 사망 사건 관련 항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망 아동을 키웠던 홀트 위탁모가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5월 경남 창녕군에서 가정 학대를 당하던 9세 아동이 목숨을 걸고 4층 높이 테라스로 탈출했다. 이 어린이는 평소 목에 쇠사슬이 걸린 채 생활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6월 충남 천안시에서는 계모가 9세 아동을 여행용 가방에 가두고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 10월 서울 양천구에서는 양모에게 상습적으로 학대 당하던 16개월 영아가 장기 파열로 숨졌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아동상담치료센터에서 가진 아동학대예방의 날 현장방문에서 센터 및 서울시 관계자들과 시설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전담'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부실한 교육

이처럼 끊임 없이 발생하는 아동학대 비극의 고리를 끊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은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었다. 기존에 민간 기관에서 담당하던 아동학대 조사 업무를 지방자치단체(시군구)로 옮겨, 책임을 가지고 전담하겠다는 뜻이었다.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290명이 10월부터 전국 188개 시군구에 배치됐다.

그러나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일선에서 일을 시작한 지 두 달. 현장에서는 담당 공무원들이 전문성도 갖추지 못한 채 촉박한 일정에 따라 성급하게 투입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14일 한국일보가 복수의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들을 통해 파악한 결과에 따르면, 전담 공무원 교육은 2주간 온라인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전부였다. '전담'이라는 말을 붙이기 민망할 정도로 전문성이 담보되지 않은 셈이다.

현장 공무원들에 따르면 그 부족한 교육마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는 전국 전담 공무원들이 1주일 정도 서울에 모여 현장 조사 관련 실습을 받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마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취소됐다. 교육 주체인 보건복지부는 비대면으로나마 콘텐츠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실습 없는 교육만으로는 전문성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 의사와 관계 없이 배치되기도

지난달 19일 서울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14회 아동학대 예방의 날 기념행사에서 양성일 보건복지부 차관과 윤혜미 아동권리보장원장 등 참석자들이 아동학대 예방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이렇게 전문성도 갖추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된 것은 정부의 조기 배치 방침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3년에 걸쳐 전담 공무원을 배치하려고 했으나, 아동학대 발생 상황이 시급하다는 판단에 2년 만에 배치를 완료하기로 방침을 바꾸었다. 이렇다 보니 '전담 공무원'이라는 취지와 달리, 개인 의사와 상관 없이 이 자리에 배치된 사례도 나왔다. '사회복지 업무 경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담 공무원에 배치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내년부터는 기존에 이 업무를 했던 민간 아동보호 전문 기관이 완전히 손을 떼게 되면서, 업무 공백마저 예상된다. 현재는 민간 기관 직원들이 전담 공무원과 함께 현장에 파견돼 공백을 채우고 있지만, 내년 3월부터는 실습 경험이 부족한 전담 공무원들이 아동학대 업무를 오롯이 전담해야 한다.


전담 공무원들 "두렵고 당황스럽다"

아동학대 예방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달 18일 오후 울산 중구 성남동 젊음의 거리에서 아동청소년복지시설 관계자, 공무원, 경찰 등 참석자들이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뉴스1

최소한의 교육만 받은 채 아동학대 업무에 투입된 전담 공무원들은 직무를 잘 할 자신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전담 공무원 A씨는 "지자체당 전담 공무원이 한 명 정도인 점도 문제지만, 향후 인력을 충원하더라도 전문 교육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전담'이라는 말이 무색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복지 분야 공무원 B씨는 낮은 전문성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을 지적했다. 학대받는 아동을 가정에서 격리할 필요가 있을 때, 전담 공무원이 이를 전적으로 결정해야 하고 그에 따른 책임마저 고스란히 져야 한다는 것이다. B씨는 "아무리 학대 가정이라고 한다지만, 평생을 같이 산 아이와 부모를 격리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큰 부담"이라며 "사회 복지 직무 경험이 있는 나조차도 학대 아동을 대해 본 적이 거의 없어, 이들을 조사할 때마다 당황스럽고 무섭다"고 심경을 드러냈다. 교육이 부족한 상황에서 책임만 커지자, 해당 보직을 고사한 공무원들도 더러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전담'이라는 말에 걸맞은 전문성을 키우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봐도 아동 학대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다른 업무에 비해 훨씬 많은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며 "공무원이 하는 일이라고 순환 근무로 인력을 배치하기보다, 전문직 공무원을 배치해 장기간 전문성을 늘려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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