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성폭행범 누명 벗었지만 10개월 옥살이 억울함은 누가?

전원 기자 2020. 12.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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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거짓진술로 성폭행범 몰린 피해자..딸 노력으로 누명 벗어
법원 "억울하게 형사처벌 당할 뻔..죄질 매우 불량"
광주 지방법원의 모습/뉴스1 DB

(광주=뉴스1) 전원 기자 =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노력한 딸도, 억울하게 성폭행 범인으로 몰려 10개월 동안 교도소에 있어야 했던 피해자도 이번 판결을 통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진심의로 희망합니다."

조카를 성폭행한 남편 대신 이웃주민을 성폭행범으로 몰아세운 가족 등에 대한 재판에서 재판장이 양형이유 등을 밝히면서 한 말이다.

◇남편의 조카 성폭행 알고도 이웃주민을 범인으로 신고

A씨(59·여)는 2014년 6월쯤 자신의 남편 B씨(53)가 조카 C씨(당시 10대)를 성폭행했고, 이 과정에서 B씨가 C씨에게 돈을 준 사실을 알게 됐다.

A씨의 추궁에 B씨는 다른 이웃이 C씨와 성관계를 하고 돈을 줬다고 거짓말을 했고, A씨는 사실을 외면한 채 이웃을 성폭행범으로 몰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A씨가 지난 2015년 12월30일 전남의 한 주택에서 D씨(60)를 찾아가 "조카를 성폭행했다"고 행패를 부리면서 시작됐다.

A씨의 행패에 D씨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오히려 A씨는 출동한 경찰에게 "D씨가 조카를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성폭행 피해 신고가 있었던 만큼 이에 대해 수사를 진행했다.

경찰의 수사를 앞두고 A씨는 지적장애가 있는 C씨를 때리면서 "D씨에게 성폭행당했다고 해라"고 말했고, 경찰에서 진술할 범행장소와 범행방법 등을 외우도록 했다.

C씨는 2015년 봄부터 D씨가 5차례 성폭행했다고 경찰에 진술했고, A씨도 경찰조사에서 D씨가 C씨를 성폭행하면서 3만~5만원 정도를 주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D씨는 C씨를 만난 적이 없다고 반박하면서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은 D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면서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신청하지는 않았다.

D씨는 검찰 조사에서도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고, 이 과정에서 C씨를 무고 혐의로 맞고소 했다. 하지만 D씨는 2016년 12월 성폭력특례법과 무고, 주거침입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D씨는 재판에서도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지만 1심 재판부는 C씨가 허위로 피해 사실을 꾸몄을 가능성이 부족하다면서 D씨의 범행을 인정해, 징역 6년에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C씨의 상태를 보면 D씨를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다면 범인으로 쉽게 지목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 집안에만 생활하던 C씨의 행동반경이나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피해 장소를 지목하기 어려운 점 등을 볼 때 C씨의 진술 신빙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피의자 가족 눈물 호소에 '진술 번복'…범인 밝혀져

1심 판결에도 불구하고 D씨는 무죄를 주장하면서 항소했다. 아버지의 무죄를 믿었던 D씨의 딸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A씨 등이 거주하는 곳에 내려가 사람들을 만나고 A씨의 가족과 접촉을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D씨의 딸은 유산까지 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2017년 9월 중순쯤 천신만고 끝에 D씨의 딸은 C씨를 만날 수 있었고, 눈물로 호소하면서 설득했다. D씨의 딸은 C씨에게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진실을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C씨는 D씨의 딸에게 사실을 털어놨고, D씨의 딸은 성폭행범이 D씨가 아니라 B씨라는 진술서를 받아 재판부에 제출했다.

같은해 9월21일 항소심 재판에서 C씨는 증인으로 출석해 D씨가 아닌 B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특히 A씨가 시켜서 허위로 고소를 하게 됐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검찰과 경찰은 B씨를 상대로 수사를 벌였고, 결국 B씨는 성폭력 범죄를 밝혀냈다. B씨는 이로 인해 징역 2년6개월의 형을 확정받았다.

이 과정에서 2심 재판부는 D씨를 직권으로 보석허가 결정을 내렸고, 검찰도 피고인석방통지서를 제출했다. D씨는 10개월 간의 구속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결국 D씨는 재판이 진행된 후 2년여 만인 지난해 1월31일 무죄를 판결받았다.

◇무고 등의 혐의로 실형 등 판결

무죄 판결을 받은 D씨는 A씨 등에 대해 무고와 위증, 강요, 협박 등의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소했다. 수사를 통해 A씨 등은 재판에 넘겨졌다.

광주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노재호)는 무고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7년을, B씨에게 징역 3년6개월과 40시간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 또 허위증언을 한 C씨에 대해서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판결했다.

무고 등의 혐의와 관련해 재판부는 "D씨가 자신의 결백함을 호소했지만 결국 유죄 판결을 받았고, 항소심에서 풀려나기 전까지 10개월 동안 교도소에서 갇혀있었다"며 "만약 C씨가 항소심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D씨는 억울하게 형사처벌을 당할 뻔했다"고 밝혔다.

이어 "D씨에 대한 무고는 비록 1심 단계에서 그쳤지만 실제로 법원의 오판까지 초래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덧붙였다.

또 "B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믿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B씨가 대상을 지목했고, B씨의 말이 사실이 아님이 알면서도 아무 잘못이 없는 D씨를 범인으로 생각하며 D씨의 탓을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특히 A씨는 사실관계가 밝혀졌음에도 B씨와 공모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미루려고 하는 모습도 보였다"며 "이에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해 죄질에 상응하는 처벌을 함으로써 법의 엄중함을 보여주고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jun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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