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의 전고체배터리 개발이 무서운 진짜 이유 [최원석의 디코드]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2020. 12. 1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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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도요타가 내년에 전고체(全固體·all solid state battery)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내놓는다고 하지요. 지난 10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1면 톱기사로 ‘일본의 전고체배터리 실용화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보도하며 이 소식을 함께 전했습니다. 기사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전기차에서 중요한 차세대 기반 기술인 전고체배터리의 실용화가 민관(民官)에서 가속화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수천억 엔 규모의 지원을 검토한다.

-현재 전기차에 탑재되는 리튬이온배터리는 중국·한국이 높은 점유율을 갖고 있다. 일본은 차세대 기술인 전고체배터리로 향후 주도권 확보를 노린다.

-전고체배터리 개발은 도요타가 가장 앞서 있다. 보유 특허만 1000개를 넘어 세계 톱. 다른 메이커에 앞서 2020년대 전반 실용화가 목표다. 2021년 시작차(試作車)를 공개, 성능 시험을 본격화한다. 닛산도 2028년까지 자체 개발한 전고체배터리를 실제 차량에 탑재할 계획이다.

-전고체배터리를 쓰면 소형 전기차에서도 차내 공간을 희생하지 않고 항속거리를 늘릴 수 있다. 전고체배터리는 현재 주류인 리튬이온배터리의 ‘전해액’ 대신 ‘고체 전해질’을 쓴다. 발화 리스크를 낮춰 안전성이 높은 것은 물론, 에너지 밀도가 몇배 오른다. 충전시간도 현행 전기차의 3분의 1 수준인 10분 정도면 된다.

-도요타가 개발 중인 차량의 경우, 같은 조건의 리튬이온배터리를 탑재한 것과 비교할 때 2배가 넘는 500㎞ 주행이 가능해진다.

도요타 중앙연구소는 1960년 도요타그룹 9개사의 출자를 받아 아이치현(縣)에 설립됐다. 도쿄에 있던 도요타 이화학연구소가 1961년 도요타 중앙연구소 옆으로 이사오면서, 이화학연구소가 하던 배터리 관련 화학·소재 연구가 중앙연구소로 통합됐다. 지능화·전동화·경량화·에너지·CO2제로·배터리 등의 요소기술 부문, 사회시스템·데이터분석·휴먼사이언스·머티리얼인포머틱스·바이오 등 전략연구 부문을 다룬다고 홈페이지에 쓰여 있다. /도요타 중앙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어떤가요. 기사 핵심은 ‘현재 전기차 대세인 리튬이온배터리 점유율에서 중국·한국에 밀리고 있으니, 다음 기술인 전고체배터리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도요타가 이미 작년부터 전고체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도쿄올림픽이 열릴 예정이었던 2020년 여름 내놓겠다고 밝혔었기 때문입니다. 특허 1000개 이상, 2021년 첫차 공개, 10분 충전으로 500km 주행 등은 이미 알려진 내용이고, 도요타가 이번에 다시 발표한 것도 아닙니다.

도요타는 이미 지난 여름 도쿄올림픽 때 전고체배터리 탑재 전기차를 내놓으려고 준비했을 겁니다. 코로나 사태로 올림픽이 못열리는 바람에 공개를 못했을 뿐이죠. 도요타가 내년에 전고체배터리 탑재 전기차를 내놓겠다는 것은, 당초 예정을 앞당기는게 아니라 오히려 늦춘 셈입니다.

도요타가 내년에 기존 리튬이온배터리보다 더 작은 크기의 배터리로, 더 멀리 갈 수 있고 더 빨리 충전되는 전기차를 선보일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일단 그런 기술을 선보이는 것만으로도 업계에 파장이 일긴 하겠지만, 그게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진 못할 것 같습니다. 도요타도 스스로 시작차, 즉 시험 단계로 만들어보는 차라고 지칭했듯, 이 차량은 양산이나 일반 판매용과는 거리가 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내년에 도요타에서 10분 충전, 500km 주행의 전고체배터리 탑재 전기차가 나올 것은 거의 분명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시험 단계로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확률이 매우 높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도요타의 전고체배터리 개발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도요타가 그동안 보여온 행보를 살펴봄으로써, 전고체배터리의 미래와 시장 변화를 추정해 보려 합니다. 5가지 키워드로 얘기 드려 보겠습니다.

지난 1월 도쿄에서 열린 한 전문가 세미나에서 도요타의 나카니시 신지 전고체배터리 개발 치프엔지니어가 도요타의 전고체배터리 개발 상황을 발표하고 있다. /도쿄=최원석

◇1. 도요타의 배터리 개발 역사는 9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요타의 배터리 개발의 원점은 현재 도요타자동차의 사장인 도요다 아키오의 증조할아버지 도요다 사키치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대의 유명한 발명가였고 자동직기로 성공한 사키치는 1925년 소형·대용량 축전지 개발을 공모했습니다. 상금은 100만엔. 현재로 치면 수십억엔의 엄청난 금액이었지요. 비행기 동력원으로도 쓸 만큼의 높은 에너지밀도를 요구했기 때문에, 그 가혹한 요건을 만족시키는 기술이 나오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사키치는 1930년 숨을 거두지만, 그의 뜻을 기려 1939년 도쿄에 축전지 연구소가 설립됐고, 전기차용 배터리 연구가 지속됐습니다.

도요타자동차는 사키치의 아들인 기이치로가 1937년 설립했는데요. 아키오 현 도요타 사장의 할아버지입니다. 이후로도 사키치의 배터리 개발 꿈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축전지 연구소를 확대해 1940년 재단법인 도요타 이화학(理化學)연구소가 도쿄에 만들어지거든요. 초대(初代) 연구소장 겸 이사장은 도요타자동차 창업자인 기이치로가 맡았습니다. 그리고 1960년 도요타그룹 9개사의 출자를 받아 도요타 중앙연구소가 설립됩니다. 도요타 본사가 있는 아이치현(縣) 도요타시(市)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인 나가쿠테라는 곳에 있습니다. 이후 도쿄에 있던 도요타 이화학연구소가 1961년 도요타 중앙연구소의 길 건너로 이사를 오게 되고요. 이후 이화학연구소가 하던 배터리 관련 화학·소재 분야 연구의 상당 부분이 중앙연구소로 이관됩니다.

도요타에는 다양한 연구소가 있지만, 큰 줄기로 보면 3개로 나눠 볼 수 있는데요. 30~40년 뒤의 미래를 내다보고 기초연구를 하는 도요타 중앙연구소, 차차기 제품 즉 10~15년쯤 뒤의 상용화를 염두에 두고 선행(先行)개발을 하는 도요타 히가시후지(東富士)연구소(시즈오카현의 후지산 기슭에 위치), 현재 판매하는 차량을 중심으로 개발하는 도요타 본사테크니컬센터가 그것입니다.

전고체배터리만 놓고 보면요. 기초연구를 하는 도요타 중앙연구소에서 기존 성능을 뛰어넘을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수십년간 연구를 진행해 왔고요. 이를 기반으로 2008년 6월 도요타 히가시후지연구소에 연구원 120명으로 구성된 전지연구부가 만들어집니다. 말씀드렸다시피 히가시후지연구소는 기초연구가 아니라 차차기 제품의 도입을 예상하고 시험개발에 들어가는 곳입니다. 2008년 이정도 규모의 조직을 만들었다는건 당시 도요타가 전고체배터리 개발에 이미 확신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지난 1월 도쿄에서 열린 한 전문강연회에 참가해 도요타의 나카니시 신지 전고체배터리 담당 치프엔지니어의 발표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나카니시 치프엔지니어에 따르면, 도요타는 오래 전부터 배터리 연구를 해 왔는데, 전고체배터리도 그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고체배터리의 상용화에는 부정적이었다고 하는군요. 전고체배터리가 기존 리튬이온배터리와 크게 다른 점은 전해물질이 액체에서 고체로 바뀐다는 것인데요. 단순해 보이지만, 적합한 성능을 낼 고체 전해질을 만드는게 거의 불가능했다는게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2006년 이 분야에서 기술적 돌파구가 열리면서, 전고체배터리 상용화가 가능하다는 쪽으로 판단을 바꾸게 됐다는 겁니다. 일본의 국립 연구개발법인인 물질재료 연구기구 나노스케일 물질센터의 다카다 가즈노리 연구팀이 그런 장벽을 깰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었죠.

이를 바탕으로 2010년 히가시후지연구소 전지연구부는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전고체배터리 개발에 성공합니다. 히가시후지연구소는 선행개발 중심이기 때문에, 원래는 양산을 염두에 둔 생산기술 개발부와 밀접하게 일하진 않는데요. 전지연구부에서만큼은 생산기술개발 분야 엔지니어들이 대거 소속돼 연구성과를 빨리 제품에 연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나갔다고 합니다. 나카니시 치프엔지니어에 따르면, 이후에도 개발과정에서 여러 장벽에 부딪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쿄공업대 간노 료지 교수팀의 연구 성과 등이 결정적 돌파구를 마련하는 등 외부 연구자들과의 협업이 빛을 발하면서, 차츰 상용화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쪽으로 발전하게 됐다는 겁니다.

도요타 이화학연구소의 전경. 자동직기로 성공한 도요타 창업자 사키치가 95년 전에 혁신적 배터리를 개발하려던 꿈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졌다. 1939년 축전지연구소를 확대해 1940년 설립됐다. /도요타 이화학연구소 홈페이지 캡쳐

◇2. 목표가 정해지면 어떻게든 달성해 내는 힘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도요타의 전고체배터리 개발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예전에 제가 도요타 수뇌부였던 조 후지오 회장, 우치야마다 다케시 부회장 등을 인터뷰하면서 느꼈던 점들입니다.

저는 2008년 조 후지오 당시 도요타 회장을 서울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에게 전기차 보급이 얼마나 빨리 될지 물었는데요. 그는 “도요타에는 배터리 연구를 하는 엔지니어가 아주 많다. 우리는 그들을 총동원해 세계의 모든 기술 분야를 샅샅히 조사해 보았다. 결론은 전기차에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할 배터리를 만드는 것은 아직 멀었다는 것이었다. 배터리 개발은 계속 하고 있지만, 당장의 기술로는 불충분하기 때문에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개발에 주력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터뷰한게 2008년 10월이었으니까, 도요타 히가시후지연구소에 전고체배터리 개발팀이 결성된지 4개월 뒤였군요. 도요타 회장이 ‘전기차 배터리의 수준이 아직 많이 모자라다’고 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이미 전고체배터리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었다는게 무섭습니다. 기술개발을 안해서 전기차를 안내놓는게 아니라, 현재 가장 적합한 기술을 선택해 시장에 내놓고 있을 뿐, 미래를 대비한 기술 축적은 이미 다 하고 있다는 것이었으니까요.

2013년 우치야마다 다케시 당시 도요타 부회장을 일본에서 인터뷰했을 때 그가 해준 이야기도 지금의 전고체배터리 개발 상황에서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그는 1997년 시판된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 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인데요. 그가 들려준 개발 비화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그는 당초 개발 목표는 하이브리드카를 만드는게 전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뭘 개발하는지는 정해진게 없었고, 다만 기존에 연비가 가장 좋은 차보다 연비가 2배 좋은 차를 개발한다는 목표만 세워졌다고 합니다. 하이브리드카 개발은 그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찾다가 고육책으로 선택된 것에 불과했다는 것이죠.

핵심은 ‘경영진이 당시의 기술로 가능한지 아닌지를 생각한 게 아니라, 도달하지 않으면 안되는 수준을 미리 정해 버렸다’는 겁니다. 기술자로서 하고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됐던 상황이었던 거죠. 그는 “역으로 생각해 보면 당시에 ‘기존 차량 연비의 2배’라는 아주 큰 목표를 정하고 죽을 고생을 해 차를 개발했기 때문에, 제품을 내놓은 지 15년(당시 기준)이나 지난 지금까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도요타 생존 전략의 핵심은 “10년, 20년 후에 시장을 선도할 제품의 개발을 지금 당장 좋은 제품을 내놓는 것과 똑같은 비중으로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런 일은 내가 있는 동안에는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도요타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톱매니지먼트가 한시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도 말해 주었지요. 그는 당시에도 “도요타는 올솔리드(전고체) 전지, 공기 전지, 마그네슘 전지 등을 전부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연구실 레벨이어서 상용화되려면 빨라야 2020년 이후는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7년이 지난 지금 상황을 보면 어떤가요. 도요타로서는 전고체·공기·마그네슘배터리 등 다양한 기술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겠지만, 수단에 불과한 것이겠지요. 나카니시 치프엔지니어에 따르면, 도요타가 볼 때 리튬이온배터리는 크기가 너무 큽니다. 소형차엔 큰 배터리를 넣기 어렵죠. 리튬이온배터리는 고온에 약하기 때문에 별도의 냉각장치와 열 배출 통로도 필요합니다. 전부 에너지·공간 손실입니다. 충격을 받으면 불 날 위험도 있습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해야 전기차 확산이 가능하다는게 도요타 판단인 것이고, 이를 위한 자체적인 솔루션으로 전고체배터리 개발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도요타의 전고체배터리 개발을 포함한 기술전략을 총괄하는 사람은 데라시 시게키 부사장인데요. 2012년부터 지금까지 도요타 기술전략의 브레인 역할을 해 왔습니다.(2021년 1월1일자 인사로, 9년만에 해당 역할에서 물러날 예정입니다.) 그는 예전의 기술전략 발표회에서 전고체배터리 탑재 전기차를 제대로 내놓을 수 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반드시 내놓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옆의 실무자는 ‘어려울 수도 있다’며 살짝 난색을 표했는데요. 데라시 부사장은 그 실무자를 쳐다보고 웃으며 “반드시 내놓을 것”이라고 다시 강조하더군요. 우치야마다 부회장이 프리우스 개발의 현역 시절에 경영진이 설정한 말도 안되게 높은 목표에 맞추기 위해 죽을 고생을 해 결국 성공한 사례가 전고체배터리 분야에서도 재연될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또하나 흥미로운 것은 도요타가 기초연구 분야까지 많은 인력과 자금·시간을 쏟아오면서도 세계최대 규모의 영업이익을 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올해 3월 결산(2019년4월~2020년3월)에서 도요타의 매출은 29조9299억엔, 영업이익은 2조4428억엔을 기록했습니다. 영업이익률은 8.2%로 자동차회사치고 준수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높은 것도 아니지요. 하지만 장기적인 연구개발에 아주 많은 투자를 하고도 이정도 영업이익률을 낸다는 것에서, 이익의 질이 다른 자동차회사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같은 기간 도요타는 8322억엔의 주주환원을 했고요. 연구개발에는 1조1103억엔, 설비투자에 1조3930억엔을 썼습니다. 게다가 이 1조1103억엔의 연구개발비 중에 40% 가량은 미래 먹을거리에 쏟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고도 한해 26조원의 영업이익을 냈다는 얘기입니다.

전고체배터리 연구의 1인자인 간노 료지 도쿄공업대 교수를 지난 1월 도쿄에서 만났다. /도쿄=최원석

◇3. 전문성과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산학연(産學硏)

도요타는 자체적으로도 전고체배터리 개발을 오래 해왔지만, 그 외에 회사 바깥 연구자들의 성과가 결정적 돌파구가 됐습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우선 도요타 스스로 오랫동안 기초연구 분야에 장기투자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 바깥의 기초연구자들과 더 효율적인 협업이 가능했지요. 스스로 무엇을 연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맥을 짚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전략에 따라 내부에서 할 것, 외부의 연구자들과 협업해야 할 것 등에 대해 체계적인 로드맵을 그려가며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일본은 기초소재 연구가 뛰어나지요. 한 분야에 수십년간 한우물을 파는 연구자가 즐비합니다. 기업도 당장 성과가 나지 않는 분야에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것이 많습니다. 배터리 분야의 핵심은 소재 과학입니다. 도요타처럼 장기적으로 준비하는 회사와 일본의 기초소재 연구자들의 콜라보가 제대로 이뤄지면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재, 음극재, 리튬이온의 통로가 되는 전해질 등으로 이루어집니다. 리튬이온배터리의 전해질은 가연성 액체이지만 전고체전지에선 전해질로 고체를 사용합니다. 전극의 경우 용량, 전해질은 출력, 이런 물질들의 조합은 수명 등과 관련돼 각각을 성능을 개선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일본의 국립 연구개발법인인 물질·재료연구기구는 음극재에 실리콘을 이용해 용량을 10배 가량 높였다고 합니다. 또 도쿄공업대와 도요타자동차는 공동연구를 통해 고체 전해질을 개량해 출력을 향상시켰지요. 오사카부립대는 양극재를 바꿔 수명을 늘리는데 큰 전기(轉機)를 마련했습니다.

저는 지난 1월에 도쿄에서 전고체배터리 연구의 1인자로 불리는 간노 료지 도쿄공업대 교수를 인터뷰했었는데요. 리튬이온전지의 전해액을 대체할 고체로, 특정한 황화물계 물질을 발견한 분입니다. 그의 연구 성과는 고스란히 도요타의 개발에 투입돼 전고체배터리 상용화를 앞당기고 있지요.

또 도요타는 일본의 국립 연구개발법인인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와 함께 2018년 시점의 리튬이온 배터리와 비교해 2030년에 비용과 급속충전 시간을 각각 3분의 1로 떨어뜨리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 중입니다.

도요타의 움직임에 맞춰 일본 소재업체들도 주요 재료의 생산체제 구축에 나서고 있습니다. 미쓰이금속, 이데미쓰흥산 등은 전기차용 전고체배터리에 들어가는 고체 전해질의 생산 설비를 곧 가동할 예정입니다. 스미토모화학도 관련 부자재 개발에 나섰습니다.

보통 기업과 학계·관계가 공동 개발을 한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닌데요. 일본의 전고체배터리 개발의 경우는 도요타라는 기업이 개발의 축 역할을 하면서 전체 개발 시스템을 최적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요타의 연구소는 30~40년 뒤를 보고 기초연구를 하는 중앙연구소, 10~15년 뒤 상용화를 염두에 두고 선행(先行)개발을 하는 히가시후지(東富士)연구소, 현재 판매 차량을 중심으로 개발하는 본사테크니컬센터로 구분된다. 사진은 일본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의 악역으로 유명한 배우 가가와 데루유키가 작년 9월 도요타의 자체 미디어인 도요타임즈 편집장 자격으로 히가시후지연구소를 찾은 장면. /도요타임즈 유튜브 캡처

◇4. 전고체배터리 상용화는 소형·모바일기기가 먼저, 전기차는 한참 뒤

내년에 도요타의 전고체배터리 전기차가 나온다고 하니, 당장 전고체배터리가 위협이 될 것 같지요. 하지만 일본의 전고체배터리 연구자들 말을 종합해 보면, 전기차에 탑재되는 전고체배터리가 지금의 리튬이온배터리처럼 상용화되는 것은 2030년쯤은 돼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 일본 뉴스를 보면, 다이요유덴, TDK, 무라타 같은 기업에서 소형 칩 형태의 전고체배터리 양산 준비를 거의 마쳤다는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이것은 무슨 얘기일까요? 이에 대해 간노 교수에게 질문했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칩형의 작은 전고체배터리는 통상 산화물계 전고체배터리로, 적층기술을 사용한다. 산화물계 전고체배터리는 저항이 높다. 따라서 전류가 많이 흘러야 하는 즉 파워가 많이 나와야 하는 배터리, 충전이 빨리 돼야 하는 배터리로는 적합하지 않다. 이런 용도 즉 전기차용은 황화물계 전고체배터리가 메인이 될 것으로 본다. 산화물계 칩형은 그렇게 많은 전류를 흘리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안정적이다. 산화물계의 작은 칩형은 웨어러블기기 등에, 황화물계는 전기차 등에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즉 TDK·무라타가 양산하는 전고체배터리와 간노 교수의 연구성과 등을 바탕으로 도요타가 개발하고 있는 황화물계 전해질을 사용한 전고체배터리는 별개 기술이라는 것이죠. 재료도 다르고 전지를 만드는 공정도 다르다고 합니다.

정리하면, 작은 웨어러블기기에는 곧 전고체배터리가 들어갈 것 같습니다. 전기차보다 웨어러블기기가 먼저인 것이죠. 반면 전기차에서 전고체배터리가 상용화되려면 5~10년은 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성능은 구현한다 해도, 비용이나 양산 등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5. 도요타의 전고체배터리 기술이 유망한 것은 맞지만, 길은 여러가지 있어

이대로 가면 도요타가 유리한 것이 사실입니다. 도요타가 쓰는 특정 황화물계의 고체 전해질이 전고체배터리 상용화에 가장 적합하다고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기술의 핵심은 도요타·도쿄공업대 팀이 갖고 있지요. 도요타가 특허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전고체배터리를 상용화하려는 다른 기업이 결국에는 이 기술을 도요타에서 사와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간노 교수에 따르면, 전고체배터리 연구에서는 아직 미답(未踏)의 세계가 많다고 합니다. 어떤게 더 가능할지 그 한계를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는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설명합니다.

국내의 경우 삼성과 현대자동차도 전고체배터리를 오랫동안 연구해왔고요. 조만간 가시적 성과를 드러낼 가능성도 있습니다. 폴크스바겐도 미국 스타트업과 설립한 합작사를 통해 2025년 생산라인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도요타가 유리한 것으로 보이지만, 전고체배터리 개발의 길이 꼭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간노 교수에 따르면, 배터리 세계에서는 신기술이 갑자기 모든 시장을 집어삼키는 일이 일어나기 어렵다고 합니다. 100년 넘게 쓰이고 있는 납축전지가 지금도 널리 사용되지요. 리튬이온배터리도 상용화를 위한 본격 개발이 시작된지 40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전고체배터리의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지 이제 겨우 십수년이 지났기 때문에, 상용화되려면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게 간노 교수의 얘기입니다.

현재 전기차의 세계 최강자는 테슬라이지요. 테슬라는 전고체배터리 같은 ‘브레이크스루’ 기술 대신, 기존 리튬이온배터리의 성능을 더 향상시키고, 특히 가격을 크게 낮춰 대량 보급을 하겠다는 전략입니다. 현재로선 이 전략이 맞을 수 있습니다. 전고체배터리는 당장 상용화될 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전기차를 널리 보급해야 하는 회사로서는 쓸 수 없는 카드입니다. 도요타의 전고체배터리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양산능력 구축과 코스트 절감에는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그 사이에 테슬라가 압도적으로 많은 전기차를 보급하고 그 과정에서 리튬이온배터리의 양산기술을 더 발전시켜 전기차 배터리시장의 표준을 장악할 수도 있습니다.

도요타는 당분간 하이브리드·플러그인 중심으로도 선진국 연비규제를 맞출 수 있기 때문에, 내연기관차 운행이 점점 어려워지는 10~20년 뒤를 내다보고 전고체배터리를 개발해 나가면 됩니다. 내연기관차, 하이브리드카, 플러그인, 리튬이온배터리 전기차, 전고체배터리 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 등 각각의 기술의 밸런스를 생각하며 개발을 조율해 나가면 되는 거죠. 테슬라는 전기차만 만드니까 당장 배터리를 더 싸게 많이 만드는게 절실하지만, 도요타는 그렇게 하는게 득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 도요타와 테슬라는 서로 포지션 자체가 다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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