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도 근거도 없다"..검찰, 신라젠 재판서 1시간 망신

이기상 2020. 12. 1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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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공개정보 이용 주식 팔아 손실 회피 혐의
법원 "검사의 공소사실과 증거 사이 불일치"
무죄 선고.."공소사실에 증명 없다" 판단해
1시간 동안, 검찰 공소장에 요목조목 반박해
대부분 "인정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설명해

[서울=뉴시스] 이기상 기자 = 미공개 중요 정보로 신라젠 주식을 팔아 손실을 회피한 혐의로 기소된 신라젠 전무 1심 재판에서 검찰이 '완패'를 당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주요 공소내용에 대해 모두 "인정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밝히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18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오상용)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는 신라젠 전무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재판은 약 1시간 가량 이어졌는데, 대부분 검사의 공소 내용을 재판부가 설명한 후 여기에 대해 "이를 인정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판단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이었다.

A전무는 지난해 8월 신라젠에서 개발 중인 항암치료제 펙사벡의 간암 대상 임상 3상 시험의 무용성 평가 결과가 좋지 않다는 악재성 정보를 취득, 보유하고 있던 신라젠 주식 16만7777주를 88억원에 팔아 64억원 상당의 손실을 회피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그런데 이날 재판부는 검찰이 A전무를 기소한 핵심 내용인 '미공개 주요정보'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검찰은 2019년 3월과 4월, 그리고 6월께 신라젠 내부 관계자를 통해 만들어진 펙사벡 관련 임상 시험 자료를 미공개 주요정보로 파악해 이 정보를 문은상 전 신라젠 대표와 친분이 있는 A전무가 받아보고 주식을 팔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해당 자료는 임상 시험의 결과가 부정적일 것임을 예측할 수 있을 만한 자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해당 자료에는 부정확한 데이터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었고, 결과를 산정하는 방식도 관계자가 임의로 정한 방식이어서 실제 시험 결과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해당 자료가 만들어진 계기도 시험 결과를 미리 파악해보려는 의도보다는 "실제 완치된 환자가 좀 나오냐"고 문 전 대표가 물어본 정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자료를 만든 관계자가 3월달 자료만 건네고, 조금 더 정밀해진 4월과 6월 자료를 문 전 대표 등에게 전달한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A전무가 신라젠 주식을 매도해 회사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음에도 퇴사하지 않는 등 문 전 대표 등과 내부 정보를 공유한 후 상의해 주식을 매각했다고 본 검찰의 공소 내용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그렇게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A전무가 문 전 대표 등과 친했지만, 이는 일반적 친밀감 수준이지 핵심 정보를 공유할 만큼은 아니었다는 취지다.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바이오업체 '신라젠'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거래한 혐의를 받고 있는 문은상 신라젠 대표가 지난 5월11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2020.05.11. bjko@newsis.com

검찰은 지난해 6월부터 7월 사이 A전무가 문 전 대표 등과 10차례 이상 통화하면서 임상 시험 중간 분석 결과가 좋지 않다는 점을 논의했다고 봤지만, 재판부는 당시 보도자료 작성과 보고 업무 등 자주 연락이 필요했던 현안 업무가 있었다는 관계자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검찰은 A전무가 주식을 대량 매수할 사정이 없음에도 펙사벡 관련 1차 중간평가 이전에 주식을 전량 매도한 것은 부정적인 것을 알고 판매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피고인에게는 수십억의 대출금과 이자 등 금전적 부담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면서 "형사소송법에 따라 무죄"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원은 공정하고 공정해야 한다"며 "검사의 공소사실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에서 보이는 여러 불일치·모순·의문에는 애써 눈 감고, 오히려 피고인의 주장과 증거에는 현미경의 잣대를 들이대며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형사법원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고 말했다.

A전무까지 이같은 내용으로 1심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당초 미공개 정보를 주식 거래에 이용한 의혹을 받아 온 신라젠 임직원들은 해당 혐의에서 자유로워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A전무에 대해서는 항소심 재판이 열릴 여지는 남아 있다.

앞서 문 전 대표 등 신라젠 경영진에게는 검찰이 해당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악재성 미공개정보 생성 시점이 2019년 3월인데 문 전 대표 등 임원들이 신라젠 주식을 매각한 시점은 2017년 12월부터 2018년 초로, 악재성 미공개 정보가 생기기 전에 이미 주식을 매각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문 전 대표 등은 이용한 전 신라젠 대표이사, 곽병학 전 감사 등과 함께 자기자본을 들이지 않고 페이퍼컴퍼니 역할을 한 크레스트파트너를 활용, 자금 돌리기 방식으로 350억원 상당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대금을 신라젠에 납입하고 즉시 인출하는 방식으로 1000만주 상당의 BW를 교부 받아 행사한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은 이같은 방법으로 약 1918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wakeu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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