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앞에 놓인 3가지 시나리오

옥기원 2020. 12. 1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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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다음주의 질문][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은 지난 16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이 제청한 윤석열 검찰총장(오른쪽)에 대한 ‘2개월 정직’ 징계안을 재가했다. 윤 총장은 17일 서울행정법원에 징계 취소·집행정지 소장을 접수했다. 연합뉴스

“정직 3개월 이하면 윤석열 판정승, 5개월 이상은 추미애 판정승, 해임은 윤 케이오(KO)패, 무혐의는 추 케이오패.”

자신의 성향을 ‘합리적 진보’라고 규정하는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는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가 결정되기 전 승패를 이렇게 가늠했다. 듣고 보니 그럴싸해 고개가 끄덕여졌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징계를 청구했으며, 그가 위촉·지명한 징계위원들이 징계를 결정한 점에다, 7개월 남은 윤 총장의 임기 등을 고려했을 때 정직 3개월 이하가 나오면 사실상 추 장관의 ‘판정패’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결론은 ‘정직 2개월’. 1년간 이어진 ‘추-윤 갈등’의 엔딩이었지만 정당성을 얻기 어려운 결과였다. “심각하고 중대한 비위 혐의”로 “감찰 결과를 보고받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며 윤 총장의 직무를 정지하고 징계를 청구한 추 장관의 발언이 무색해졌다. 서초동 법조인들은 “핵심 징계 사유였던 ‘판사 사찰’ 등 제목 낚시에 낚인 느낌”이라는 평을 쏟아냈다.

징계위 결정이 나온 16일 추 장관은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불과 3시간 전 ‘3대 권력기관’ 합동 브리핑에서 “저는 검찰사무의 최고감독자인 법무부 장관으로서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검찰개혁의 소명을 완수하고, 검찰이 국민에게 신뢰받는 공정한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임을 국민 여러분께 약속드린다”며 ‘미래’를 말한 그였다. 검찰 안에서도 “아무도 예상 못 한 시기의 사퇴”라는 반응이 나왔다. ‘불구대천의 숙적’ 추미애는 떠나지만 최소 5개월의 총장직을 보장받은 윤 총장에게 승기가 기운 것 같다는 검사들도 있었다.

승자와 패자, 승패의 농도가 변동될 여지는 남아 있다. 윤 총장은 지난 17일 밤 서울행정법원에 징계에 불복하는 소송을 내고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징계 결정 직후 “임기제 총장을 내쫓기 위한 불법·부당한 조치”라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법치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된 만큼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한 의지가 반영된 움직임이다.

이는 법적 다툼을 떠나 정치적 위험까지 감수하는 싸움이다. ‘정직 2개월’의 징계안을 재가하며 “검찰총장 징계를 둘러싼 혼란을 일단락 짓고, 법무부와 검찰의 새로운 출발을 기대한다”는 문재인 대통령과 맞서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소송의 피고는 법무부 장관”이라며 애써 대결을 외면하려 하지만, 징계 청구자이자 제청자인 추 장관이 떠난 지금 소송의 상대방은 징계 집행자인 문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윤 총장이 미들급 챔피언(추 장관)을 제치고 헤비급 챔피언(문 대통령)에게 도전했다”고 표현했다.

법원은 당장 오는 22일을 집행정지 신청 사건 심문기일로 잡았다. 향후 시나리오는 대략 세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징계 절차에서 방어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윤 총장이 유리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법원이 빠른 시일 안에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할 경우 윤 총장은 다시 직무에 복귀한다. 본안소송이 확정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내년 7월까지 임기를 온전히 채울 수 있다. 그의 복귀로 징계가 무의미해지면 이를 재가한 문 대통령에게 타격이 크다. 여당이 날을 세운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수사 등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윤 총장이 강조한 ‘살아 있는 권력 수사’ 기조가 더 강해질 수 있다. 윤 총장 쪽이 바라는 시나리오다.

두번째는 집행정지 신청이 기각되는 경우다. 검사징계법에 따라 징계위를 거쳐 대통령까지 재가한 징계 사안에 법원이 제동을 걸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그렇게 되면 윤 총장 징계가 정당했다는 여론과 함께 여당의 사퇴 압박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신임 법무부 장관이 검찰 인사를 단행해, 2개월 뒤 복귀한 윤 총장의 입지를 더욱 좁혀놓을 수 있다.

세번째 시나리오는 윤 총장의 자진사퇴다. 이렇게 되면 문재인 정권의 탄압에 맞서다 떠난 검찰총장으로 기억될 수 있다. 지지율도 더 높아질 수 있어 정계 진출 가능성도 더 커진다. 그러나 윤 총장은 추 장관이 시도한 ‘찍어내기 피해자’라는 생각이 강해, 동반 퇴진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한다.

그렇게 미들급을 넘어 헤비급 챔피언을 상대로 한 윤 총장의 도전은 계속된다.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옥기원 법조팀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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