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검찰 개혁·민생, 별개가 아니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세종환경운동연합 난방특위 위원장 2020. 12. 1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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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최근 보수언론에선 ‘임기 내내 검찰총장 하나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판’이라며 ‘검찰개혁보다 민생’에 주력하라 했다. 일견 옳다. 민생(民生), 즉 민초의 삶이 정치나 경제의 근본이니. 그러나 이 논리를 펴는 언론의 속내는 못내 수상쩍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세종환경운동연합 난방특위 위원장

우선 모든 개혁과 민생은 서로 밀접하다. 오늘날 민초의 삶은 코로나19와 같은 공포로부터의 해방, 부동산·물가 폭등 해소, 일자리 안전·안정과 일-삶 균형, 출산·양육·교육 불안 해소, 식품 안전 확보 및 노후 불안 해소 등으로 개선된다.

그런데 이 민생 이슈들 뒤엔 늘 이해관계가 꼬인다. 일례로, 최근 부동산 폭등은 민생을 압살한다. 하지만 부동산꾼들은 속으로 환호하며 표정 관리를 한다. 심지어 산을 파괴해 농지처럼 만든 뒤 전원단지를 개발하려는 자나 대형 아파트단지를 만드는 건설자본 등은 문서 위조 내지 공무원 매수를 해서라도 사업을 강행한다. 이 과정에서 온갖 고소·고발, 감사·수사 청원, 민형사 소송 등이 전개되지만 십중팔구 건설자본의 승리다. 경찰이나 검찰, 공무원 다수가 부동산 개발을 경제발전이라며 당연시하는 데다 행여 자신도 개발 이익을 얻는다면 자본 편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난개발과 투기가 판을 치면, 논밭에서 땀 흘리던 농민은 피눈물을 흘린다. 더 슬픈 것은, 그 농민들조차 농사보다 개발 이익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

또 다른 예로, 세계 최악의 산업재해를 보자. 산재란 노동자가 4일 이상 치료받을 질병·부상이나 사망이다. 고용안정 못지않게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역시 민생엔 필수다. 논란 중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1명 이상 사망사고 발생 또는 동시 다수 중상자 발생 시 ‘기업주’를 처벌하자는 것인데, 지금까진 실무자만 희생되었다. 그간 기업은 벌금만 물었다. 이 역시 노동부 공무원(근로감독관 등) 내지 검찰·경찰의 철저한 조사·수사가 없었기에 반복되는 인재(人災) 아닌가? 오늘도 회사에서 못 돌아오는 이가 10명 내외이며, 250명 내외는 다쳐서 온다. 여기에 민생은 없다!

또 하나. 의사 파업에서나 검란(?)에서도 잘 드러난 바, “나는 전국 1등짜리”라고 으스대는 엘리트주의가 이른바 전문가 세계를 유혹한다. 몇 해 전 교육부 관료조차 “민중은 개·돼지”라며 속마음(?)을 털어놓아 큰 파문을 불렀다. 예서 보더라도 중·고교 시절 성적이 우수했다고 절로 인격체가 되는 건 아니다. 민초들은 한편으로 자식이 배움을 잘 얻길 바라지만 다른 편에선 자유롭고 배려심 있는 인격체로 크길 바란다. 그러나 판검사나 의사, 교수·공무원 등이 엘리트주의에 빠질수록 민초를 위해 헌신할 줄 모른다. 특히 판검사는 부정부패나 억울함으로부터 민초를 해방할 책무가 있는데, 이들이 엘리트의 권력동맹체를 형성한다면 민초들 삶엔 암세포일 뿐!

따라서 검찰(사법)개혁 아니, 모든 사회개혁(또는 혁명)은 민생 향상의 필수 요건이다. 공수처 설치로 고위 공직자 7300명만 맑아져도 민생이 밝아진다. 실상이 이런데도, “민생은 돌보지 않고 검찰총장 하나 잡으려 드는 검찰개혁”이라며 검찰개혁 내지 공수처 설치를 한사코 저지하려는 정당이나 검찰, 언론 등은 오히려 민생 개선에 걸림돌이다. 이 억지 논리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개혁과 민생을 철저히 분리하는 가운데 진정한 개혁을 가로막고 민생을 빌미로 자본의 이윤 욕망에 새 길을 내려는 의도가 있다. 최근 탄력근로제 정산 기간을 최고 6개월로 늘려 노동시간은 늘어났지만 잔업수당을 없앤 것이 대표적이다. 무한을 갈구하는 자본의 이윤 욕망!

말 나온 김에 하나 더. 세계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코로나19’. 그간 ‘K방역’으로 안전했던 한국조차 다시 악화되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의 근본 뿌리는 검찰, 기업, 공무원 등이 당연시한 변수, 자본주의 사회경제와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그것은 야생동물 서식지를 무단 파괴하며 동물을 음식이나 애완용(상품)으로 만드는 상업주의, 나아가 대량축산과 대량소비, 대량생산과 대량유통, 대량오염과 대량폐기 등을 낳는 이윤 구조와 그에 동조하는 인간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1714년 맨더빌은 <꿀벌의 우화>에서 개별 꿀벌의 욕심 경쟁이 화려한 벌집을 낳는다며 자본주의 이윤 체제를 옹호했지만, 300년이 지난 지금 그 이윤 체제가 인류 생존을 위협한다. ‘꿀벌의 배신?’

코로나19 사태 악화와 전면봉쇄가 두렵다. 그러나 더 두려운 건, 반복되는 참사와 재앙, 위기에도 결코 그 근본을 못 보고 서둘러 과거 회귀만 하려는 집단 불감증. 요컨대 구조와 의식의 총체적 혁명, 이것이 곧 민생의 활로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세종환경운동연합 난방특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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