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처럼 느닷없이 먹통되는 자동차.. 사람잡는 '첨단의 역습'

권승준 기자 2020. 12. 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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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전기차 1등 '테슬라' 커지는 안전 논란
그래픽=김의균

지난 7일 서울 강남의 왕복 8차선 도로에서 테슬라 ‘모델S’를 몰던 김형준(가명)씨는 갑자기 계기판이 꺼지면서 차가 멈춰버리는 일을 겪었다. 그야말로 도로 한복판에서 차가 “뻗어버린” 것이다. 당황한 김씨는 차에서 내려 수신호로 뒤차를 보내면서 몇 차례 차의 시스템을 리셋했고, 겨우 다시 시동이 걸렸다. 그는 “전원이 완전히 나가버렸는지 처음엔 비상등마저 켜지지 않더라”며 “그나마 차들이 서행하는 시내 도로라서 수습했지, 고속도로였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했다.

테슬라 모델3를 운전하는 조경완씨도 지난달 비슷한 일을 겪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나가는 도중 갑자기 ‘퍽’ 소리와 함께 모든 시스템이 꺼지면서 차가 멈췄다. 조씨는 “마치 컴퓨터에 에러가 나서 갑자기 ‘다운’되는 것처럼 자동차가 완전히 가동을 멈추더라”며 “시스템을 리셋하니 다시 움직이긴 했는데, 그 뒤론 언제 자동차가 또 꺼질지 불안해 탈 수가 없다”고 말했다.

테슬라는 미국의 스타 기업가 일론 머스크<사진>가 창업한 전기차 메이커다. 테슬라 자동차들은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와 달리 첨단 IT를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운전뿐 아니라 자동차의 각종 기능을 작동하는 것도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것과 비슷해 테슬라 운전자들은 “자동차가 아니라 IT 기기를 타고 있는 것 같다”고 열광한다. 테슬라 판매량은 작년 국내에선 1만대 수준으로 아직 미미하지만, 전기차만 놓고 보면 테슬라 판매 비율이 80%에 가까울 정도로 압도적이다. 테슬라가 국내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바꿔버릴 기대주로 각광받는 이유다.

하지만 국내외에서 테슬라가 적극 홍보하는 ‘첨단’이란 이미지 뒤에 자동차가 갖춰야 할 기본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지난 9일 서울 한남동에서 테슬라 ‘모델X’ 차량에 불이 붙어 차주(車主)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가장 중요한 안전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이 차는 지하 주차장에서 벽면을 들이받은 뒤 불이 붙으면서 배터리가 방전됐다. 전원이 꺼져도 차량 내부에선 일반 자동차처럼 손잡이로 열 수 있지만, 외부에선 전력 공급이 끊기면 문을 못 여는 구조다. 사고가 나면서 차주가 기절했고, 이 때문에 소방관들은 밖에서 뒷좌석 문을 열지 못해 후방 트렁크 문을 따고 차 안으로 진입하느라 25분이 걸렸다.

방전되면 밖에선 차문 열 수 없어

화재 사고가 난 모델X는 가격이 1억5000만원가량 하는 테슬라 최고급 기종이다. 문제의 뒷좌석 문은 마치 날개처럼 위아래로 열리는 ‘윙도어’인데, 문에 손잡이가 없고 손잡이 부분을 대고 누르면 열리는 방식이었다. 모델X 차를 운전하는 김경식씨는 “다른 차와 다르게 테슬라의 문은 IT로 제어하기 때문에 아주 부드럽게 열린다”며 “테슬라 차주들이 이런 테슬라 특유의 ‘감성’에 열광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테슬라 차문이 부드럽게 열리는 것은 기존 차량과 달리 뒷좌석 문에 기계식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전기를 이용해 전자식으로 문을 열기 때문에 기계식 케이블을 사용한 문과 달리 덜컹거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고 열린다. 문제는 이번 사고처럼 차에 불이 붙어 전기가 끊기면 밖에선 문을 열 수 없다는 점이다. 현대자동차 등 다른 자동차 회사에서 만든 전기차는 모두 전력이 끊겨도 문을 여닫을 수 있는 기계식 장치를 설치해뒀다. 현대차 관계자는 “아무리 전기차라도 자동차 문을 완전히 전자식으로 하지 않는 건 비상 상황에서 문을 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감성, 기술도 좋지만 자동차는 무엇보다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설계하는 게 기본인데 테슬라가 문을 그렇게 만든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제는 국내 시판 중인 테슬라의 세 차종 모두 전력이 끊기면 밖에서 뒷좌석 문을 열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안에서 여는 비상 탈출 장치마저 복잡하다. 모델X와 모델S는 전력이 끊길 경우 뒷좌석 바닥이나 문 하단에 설치된 덮개를 제거하고 잠금장치를 당겨야 열린다. 탈출 장치 자체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을 뿐 아니라, 위급한 상황에서 곧바로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다. 게다가 양산형인 모델3는 전력이 끊길 경우 안에서도 뒷좌석 문을 열 수 없다. 불이 나면 뒷좌석에 탄 사람들은 앞좌석으로 넘어가 탈출해야 하는 것이다. 국내의 차량 안전 기준엔 사고 시 밖에서도 차 문을 열 수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테슬라는 적용 대상이 아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5만대 이상 팔린 차만 국내 규정 적용을 받는데, 테슬라 국내 판매는 아직 1만대 수준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미국엔 사고 시 차 문을 밖에서 열 수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 걸로 알고 있고 테슬라도 그런 규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같은 문제가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크면 우리 정부에서도 리콜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테슬라에 관련 자료를 요구한 상태”라고 말했다.

빗속을 달리던 중 범퍼가 분리된 테슬라 차량. /미국 트위터 캡처

핸들 빠지고 바퀴 빠지고 지붕도 날아가

잘 달리던 테슬라 차량이 마치 컴퓨터가 다운되듯 모든 장치가 꺼지고 차가 멈춰버리는 사고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 중국에서도 빈번히 발생한다. 특정 모델만이 아니라 테슬라에서 만든 모든 기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기자가 만난 테슬라 차주 13명 중 4명이 그런 일을 겪었다고 말했다. 물론 내연기관으로 가는 자동차도 주행 중 시동이 꺼지는 일이 생기지만, 테슬라처럼 자주, 그리고 전 기종에서 나타나진 않는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테슬라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처럼 소프트웨어를 통해 차량 전체를 제어하는 구조”라며 “소프트웨어에 오류가 나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먹통이 되듯 테슬라도 소프트웨어에 오류가 나면 차가 먹통이 되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행 중 차가 멈추는 건 테슬라 차량에서 나오는 결함 중 비교적 가벼운 편에 속한다. 지난 1월 대구에선 모델S 차량의 바퀴가 빠지는 일이 있었다. 당시 CCTV를 보면 해당 차량은 주차장에서 후진하면서 나오던 중 문제가 발생했다. 차량이 별다른 장애물에 걸린 것도 아닌데, 후진 중 차량과 바퀴를 연결해주는 부품이 갑자기 깨지면서 바퀴가 빠져버렸다. 지난 7월에도 모델3 차량의 한쪽 바퀴를 고정해주는 볼트가 풀려 있는 채로 출고된 걸 차주가 뒤늦게 발견해 테슬라 측에 항의하고 수리받은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0월에는 중국과 미국에서 테슬라가 새로 출시한 모델Y 차량이 도로 주행 중 유리로 된 지붕 부분이 통째로 날아가 버리는 황당한 사고도 있었다. 별다른 전조 증상 없이 갑자기 지붕이 뜯겨 나가는 모습이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 그대로 담겼다. 영국에선 핸들이 빠지는 일이 있었고, 빗속을 달리던 차의 뒤 범퍼가 떨어져 나가는 사고도 보고됐다.

기존 자동차 회사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사고가 계속되다 보니 리콜도 잦은 편이다. 지난 10월 중국에서 조립한 차량의 서스펜션(충격흡수 장치) 결함으로 5만대를 리콜한 데 이어, 지난달 25일엔 지붕 및 조립 결함으로 미국에서 1만3000대를 리콜 조치했다. 또한 테슬라는 오는 24일부터 18일간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는데, 그 사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품질 문제와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는 묵묵부답

가장 큰 문제는 테슬라가 자사 차량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고에 사실상 무대응으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도로 한복판에서 차가 멈췄던 김씨는 서비스 센터에 차를 맡겼지만,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아무런 조치 없이 차를 가져가라고 했다. 김씨는 “다른 완성차 브랜드였다면 원인 조사는 물론, 다른 차로 바꿔주는 등 조치하는 게 상식적 대응인데 테슬라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전부”라며 “테슬라 차주들 사이에선 서비스 센터의 ‘배 째라’식 대응에 대한 불만이 높다”고 말했다. 조씨 역시 테슬라 서비스 센터에 차량이 갑자기 멈춘 원인에 대해 문의했지만 아무 답변도 듣지 못했다.

테슬라 서비스 센터는 서울에 2곳, 전국을 합쳐도 5곳에 불과한 데 비해 테슬라 차량 불량으로 인한 수리 요청은 폭주해 서비스 센터에 맡기면 최소 한 달이 걸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게다가 작년 11월 테슬라 모델3가 국내 출시될 땐 차를 산 사람들에게 향후 차량 문제로 인한 소송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받아 논란이 됐다. 본지 역시 테슬라 차량에 대해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 테슬라코리아 측에 문의했지만, 별다른 답변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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