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마, 만나지 마' 바이러스가 괴롭혀도..삶은 계속된다

조혜정 입력 2020. 12. 19. 09:36 수정 2020. 12. 2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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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토요판] 커버스토리
'코로나 8고' 헤쳐갈 시민의 지혜
'금지'로 가득한 코로나 일상에
굴하지 않고 찾아낸 '생활백신'
직접 못 보면 '줌'으로 만나고
생활 균형 깨질 땐 규칙적 인증샷
외국 못 가 랜선 여행하니
오로라에 바닷속이 360°로 코앞
가족과 거리두기 못하는 고통
틈틈이 오디오북 들으며 해소
"강제로 나 돌보기" 시간으로
'코로나 우울' 벗어날 수 있어
재택? 출근? 혼란스러운 직장인
섬세하고 정밀한 제도 마련 필요
인생 8고(八苦). 석가모니는 생로병사와 이별, 미움, 좌절, 욕망을 일컬어 사람이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8가지 고통이라 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살아가기 벅찬데,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새로운 고통을 안겨줬다. 백신과 치료제가 보편화돼 집단면역이 형성되고 마스크를 벗을 그날까지는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야 할 ‘코로나 일상’ 시대, 피할 수 없는 ‘코로나 8고’와 이를 견뎌내는 지혜를 모아봤다. 사진(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은 여행기획사 가이드 라이브의 바르셀로나 랜선투어의 한 장면, 9월16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린 ‘2020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 공연에서 국외 연주자들을 온라인으로 연결해 공연하는 장면, 지난 4월 이스트소프트 상반기 정기 공채에서 화상 면접을 진행하는 모습, 화상 연결로 알려주는 대로 요리를 따라 해보는 <백파더: 요리를 멈추지 마!>의 한 장면.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사진 유튜브 화면 갈무리, 연합뉴스, 문화방송 제공.
▶ 최대 위기다.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매일 1천명을 넘고 있다. 1월20일 국내에서 처음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이후 최대 규모다. 발생 규모도, 감염경로도 감당이 어려운 상황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이 기정사실처럼 거론된다. 송년회니 크리스마스니 연말 모임은 줄줄이 취소됐고, 가뜩이나 움츠러든 마음은 더 힘들기만 하다. 이런 상황은 백신과 치료제가 보편적으로 쓰일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정부의 방역 조처와 더불어, 방역의 주체이자 생활의 주체인 우리는 코로나 일상을 어떻게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 사흘 전이었던 지난달 21일 오후. 마포구, 동대문구, 중구, 송파구 등 서울 시내 10곳에 마련된 회의장에 삼삼오오 시민들이 모였다. 직장인, 취업준비생, 자영업자, 어르신, 영유아 부모, 초등학생 등 10개 그룹으로 나뉜 시민들은 마스크를 쓴 채 투명 가림막이 설치된 자리에 앉았다. 나른한 토요일 오후에 이들이 ‘흩어져 모인’ 곳은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이 마련한 ‘100명의 시민이 만드는 10가지 백신’ 아이디어 워크숍. 코로나 일상을 살아가려면 시민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다양한 ‘생활 백신’을 정책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자리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사소한 생활까지 뒤흔들고 있기에 보건·행정 영역의 방역 조처, 의료 분야의 백신·치료제 개발과 함께 시민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대응이 꼭 필요하다. 21세기 감염병 대유행 시대를 살아가며 겪게 된 8가지 고통 ‘코로나 8고’와 이에 대처하는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살펴봤다.

1고: 만날 수 없는 고통

대학원 석사 과정에 다니면서 연구원 생활도 하고 있는 박초원(25)씨는 일주일에 한두차례씩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이 서너개 있다. 친구들과 만나 수다 떠는 모임도 있고, 전공 공부를 함께 하는 모임도 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올해는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코로나19의 가장 고약한 점은 만나서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가장 기초적인 소통 방식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올해 추석엔 고향을 찾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고,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의례에 참석할 수 없어 ‘인간의 도리’를 못 하는 것 같다는 호소도 심심찮게 들린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다시피 하면서 심심함, 외로움, 답답함, 미안함이 그 자리를 메운 셈이다.

박씨는 대면 모임 대신 화상회의 프로그램인 ‘줌’을 통한 온라인 모임으로 해법을 찾았다. 직접 만나는 것처럼 시간을 정해 줌으로 만나 똑같이 수다 떨고 공부한다. 한번에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40분으로 제한돼 있는 건 효율적인 시간 활용에 도움이 된다. 한가지 이야기만 너무 오래 하지 않도록 이용 시간이 10~20분 남으면 대화 주제를 바꾸기 때문이다. 네댓차례 화상회의 방을 다시 만들어 처음엔 일상 이야기, 두번째는 전공 공부, 이런 식으로 수업시간처럼 만남 시간을 꾸리기도 한다. 홍콩에 있는 제일 친한 친구와도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자주 얼굴을 보게 됐다. 박씨는 “그 전엔 카카오톡 대화나 인스타그램 댓글로만 소통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줌으로 모임을 하고부터는 이 친구와도 줌으로 자주 만난다. 만날 시간을 정한 뒤 시간이 되면 화면을 띄워놓고 침대에 누워서 서로 얼굴 보면서 웃고, 내가 키우는 강아지와 친구가 키우는 고양이도 서로 보여주면서 일상을 나눈다”고 말했다.

대면 소통보다 온기는 덜해도, 온라인 소통은 이렇게 힘이 된다.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고, 오늘 당했던 기분 나쁜 일을 털어놓으면서 위로받고 지지받는다. 실제로 온라인 소통은 코로나19 이후 크게 늘었다. 카카오톡 이용 관련 데이터를 잘 공개하지 않는 카카오가 지난 9월 이례적으로 낸 ‘카카오 코로나 백서’를 보면, 9월 첫주 카카오톡 메시지 수·발신량은 올해 1월 첫주보다 45% 증가했다. 영상통화(페이스톡) 이용 시간도 연초보다 40% 늘었다. 최근엔 줌으로 송년회, 종강파티 같은 연말 모임을 한다는 이들도 제법 눈에 띈다.

유튜브 여행채널 청춘여락의 ‘아바타 랜선여행’ 스위스 편의 한 장면. 현지에 있는 한국인과 화면 아래에 나오는 유튜버 여락이들이 카카오톡 영상통화를 통해 마치 스위스를 여행하는 느낌을 준다. 화면 갈무리

2고: 여행할 수 없는 고통

여행, 특히 국외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여행을 즐기는 이들에겐 여름휴가나 연휴 때 큰맘 먹고 누리던 낙이 사라져버렸다. 그나마 숨통을 틔워주는 건 랜선이다. 유튜브 ‘청춘여락’은 구독자가 57만명이 넘는 여행 채널이다. 인도, 독일, 이집트, 베트남 등 주로 국외여행 이야기를 올렸었는데, 코로나19가 확산한 올해는 국내 여행 콘텐츠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최근엔 ‘아바타 랜선여행’이라는 콘텐츠를 매주 일요일 저녁 8시에 올려준다. 국외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섭외해 카카오톡 영상통화로 연결한 뒤, 자신들이 시키는 대로 주변 풍경을 보여주거나 음식을 먹어보게 하는 식이다. 섭외된 ‘아바타’의 촬영 기술이 전문적이진 않아도, 이국적인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쉬움을 달래기엔 충분하다. 조회수 34만을 넘은 스위스 편에선 코로나19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등 현지의 실시간 상황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360° 브이아르(VR, 가상현실) 촬영으로 여행지를 입체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서비스도 있다. 스웨덴의 오로라 전문 여행사 ‘라이츠 오버 라플란드’(Lights over Lapland) 누리집에선 형형색색의 오로라 동영상 화면을 360°로 돌려보며 마치 북극 근처로 여행을 간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구글 어스의 ‘세계의 바다’(The World’s Ocean)에선 오스트레일리아, 버뮤다, 브라질, 카리브해, 갈라파고스, 제주 등의 바닷속 풍경을 위아래, 양옆으로 돌려가며 볼 수 있다.

여행기획사 가이드라이브는 마이리얼트립과 함께 ‘랜선 투어’ 프로그램을 판매한다. 현지 가이드와 한국에 있는 여행객들이 온라인으로 소통하면서 약 1시간30분 동안 실시간으로 여행지를 소개한다. 베네치아, 바르셀로나, 교토, 바티칸, 홍콩 등의 상품이 있는데, 바르셀로나가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한다. 김형택 매니저는 “도보나 택시 등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움직이다 보니, 파리나 세고비아처럼 현지에 이동제한령이 떨어지면 프로그램 판매를 중단할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3고: 맛집 못 가는 고통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수업만 하다가, 시험 보러 딱 한번 학교에 갔을 때 친구들이랑 ‘야, 우리 ○○○ 가자. 거기 음식 못 먹어서 너무 아쉬웠어’라는 얘기를 하면서 학교 근처 맛집에 갔다. 학교를 못 가도 그 주위에 있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시민 백신’ 워크숍에 참석한 한 대학생은 집에만 있어야 하다 보니 평소 좋아하던 식당에 갈 수 없어 아쉽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맛집 밀키트가 활성화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줄까지 서서 먹어야 하나 투덜대면서도 ‘아름다운 맛’과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생각하며 맛집을 순례하던 건 이제 추억이다. 집에서 삼시세끼를 해결해야 하는 게 현실인데, 요리에 서투르거나 취미가 없는 사람들에겐 제법 고된 숙제다. 가장 쉬운 선택지는 배달이지만, 일회용품과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온다는 죄책감과 1인가구한텐 너무 높은 ‘최소주문금액’이 발목을 잡는다.

요리에 필요한 재료와 양념을 포장해, 그대로 볶거나 끓이기만 하면 되는 상태로 판매하는 밀키트는 이런 이들에게 적합하다. 급증한 대기업 밀키트 시장 사이에서 학교 앞 상권을 살리고 학생들 입맛도 살리려는 시도도 있었다. 숙명여대 학생 4명이 꾸린 예비창업팀 ‘싹’은 올해 학교 앞 맛집 음식을 조리 직전 상태로 포장해 택배로 판매하는 ‘청파동 밀키트’ 서비스를 시범운영했다. 서비스를 이용해본 한 학생은 “멀리서지만 택배로 받아서 음식을 맛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코로나19 때문에 힘든데, 이걸로 사장님도 이익이 생기고 나도 먹을 수 있어 여러번 이용했다”고 말했다.

요리를 좋아하거나, 이참에 배워보고 싶다는 이들은 조금 다르다. 일단 만든다. 아이와 함께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끼니를 해결하는 의무가 아니라 놀이나 취미로 요리를 즐기는 것이다. 그 덕에 <백파더: 요리를 멈추지 마!>(문화방송)엔 온라인 연결로나마 직접 음식을 만드는 법을 배우려는 ‘요린이’(요리 초보)가 줄을 서고, 연예인들이 수준 높은 요리 솜씨를 발휘하는 <편스토랑>(한국방송2)에 나온 메뉴와 조리법은 늘 화제가 된다. 온라인에서도 요리 콘텐츠의 인기는 흔들리지 않아, 올해 유튜브에서 국내 구독자 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채널 2위가 ‘백종원의 요리비책’, 8위가 ‘승우아빠’였다. 육류 요리법을 알려주는 ‘고기남자’도 연간 구독자 수가 200% 이상 늘었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에서 지난 8월 열린 ‘드라이브인 졸업식’. 졸업생들이 차량에 탄 채 졸업장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4고: 생활의 균형 깨지는 고통

김지영(39)씨는 경기 용인시에서 ‘노란 별빛 책방’이라는 작은 책방을 운영한다. 지난해 3월, 14년의 교사 생활을 정리하고 책방 주인장이 된 뒤 김씨는 먹고, 자고, 치우고, 씻는 일을 정해둔 것 없이 그냥 하고 싶을 때 해치웠다. 그러다 코로나19로 책방 문까지 잠시 닫게 되면서 그나마 하던 출퇴근마저 안 하게 되자 생활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다.

생각 끝에 김씨는 그날 읽은 책에서 좋은 글귀를 골라 사진을 찍어,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공유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자신의 별명과 100일 동안 진행한다는 뜻을 담은 ‘달구백’ 프로젝트에 근처 책방 주인들과 블로그 이웃 10여명이 참여했다. 그는 “작지만 매일 규칙적으로 인증샷을 올리고 올라온 글귀로 생각을 나누다 보니, 내가 꾸준히 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삶에 건강한 리듬도 되찾았다”고 했다. 작은 시도가 답답한 생활을 위로해준 것은 물론, 생각지 못한 ‘치유’도 해줬다는 것이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 등으로 일과 개인생활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생활이 엉망이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김씨의 경험은 이런 상황을 돌파할 힘이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만드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하루 만보 걷기, 운동 한시간 하기 같은 목표를 정해두고 오픈카톡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 같은 데 매일 올린다든가, 친구·지인과 함께 하루든 일주일이든 생활계획표를 만들어 잘 실천했는지 서로 점검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직장인이나 학생이라면 일이나 공부를 하는 공간은 밥 먹고 잠자는 공간과 분리하고, 출근·등교할 때처럼 옷을 갖춰 입고 텀블러나 필기도구처럼 사무실·학교에서 쓰는 물건을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달구백이 끝난 뒤 김씨는 <논어>와 <도덕경>을 하루씩 번갈아 필사하는 ‘하논하도’, 매일 주제를 정해 생각나는 이야기를 하루에 A4 용지 3장 분량으로 쓰는 ‘하루하퉤’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100일이 끝난 이들까지 포함하면, 그와 함께 매일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100여명에 이른다. 지난달엔, 매주 이웃 책방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강좌 수강생들과 함께 코로나 일상을 헤쳐나가는 이야기를 담은 <위드, 코로나>(생각을 담는 집 펴냄)라는 책도 냈다. 하루하퉤가 끝나는 내년 2월께는 ‘하루하소’를 시작할 생각이다. “‘소’는 소설 형식을 빌려,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자는 뜻이다. ‘퉤’ 하고 속 이야기를 뱉어냈으니 이제 즐거운 이야기로 채워야 되지 않겠냐”며 그는 웃었다.

지난 9월1일 경기 안산시 안산중앙도서관에 설치된 안산시 공무원 공개경쟁임용 화상면접 시험장에서 관계자들이 시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5고: 마음껏 못 노는 고통

기분 좋게 한잔하거나 시험이 끝나면 없던 스트레스도 풀러 가던 노래방도 이젠 선뜻 발걸음이 향하지 않는다. 막상 가려 해도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가면 영업 제한이나 금지를 당해 마음대로 갈 수도 없다. 놀이동산, 수영장, 당구장, 피시방 같은 곳도 마찬가지다. 작정하고 떠나는 여행과는 또 다르게, 일상 속 탈출구인 이런 시설 이용이 자유롭지 않게 되면서 생활이 꽤 불편해졌다.

궁하면 통한다 했던가. 놀이동산 대신 보드게임, 영화관 대신 넷플릭스, 헬스장 대신 홈트레이닝, 학원 대신 클래스101…. 코로나19와 함께 살아온 지 어언 10개월, 시민들이 집에서 찾아낸 대안은 적지 않다. ‘시민 백신’ 워크숍에선 “일 끝나고 와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땐 매일 블루투스 마이크로 노래를 부른다”, “친구 집에 부모님이 안 계시면 가서 블루투스 마이크 켜서 같이 노래하면서 삶의 기력을 회복한다” 등 적지 않은 시민들이 ‘방구석 노래방’을 이용한다고 고백했다. 온라인쇼핑몰 지마켓이 최근 낸 자료를 보면, 지난 9월부터 이달 6일까지 노래방 마이크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6% 늘었다.

집에서만 할 수 있는 취미를 찾는 이들도 많다. 그중 반려식물 키우기는 인테리어와 마음 안정 등에 효과가 있다. 몬스테라, 스파티필룸, 아레카야자, 윌마(율마), 고무나무 같은 공기 정화 식물이나 다육식물 기르기, 레몬이나 아보카도 씨앗을 발아시켜 나무로 키우기 등이 대표적이다. 북유럽에서 자라는 이끼를 가공해 습도 조절과 공기 정화에 도움을 준다는 스칸디아모스 소품도 인기다. 허브나 채소를 재배하는 베란다 텃밭 가꾸기, 물 주기만 잘하면 되는 콩나물 길러 먹기도 도전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6고: 혼자 있을 수 없는 고통

“타인과의 거리두기를 위해, 가족과는 거리두기가 되지 않아 괴로운 상황.” 경기 수원시에서 5살, 7살, 9살 2남1녀를 키우는 전업주부 이희경(40)씨는 <위드, 코로나>에 이렇게 썼다. 그의 글처럼, 코로나19로 모두가 ‘집콕’을 하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가족끼리는 잠시도 떨어져 있기가 힘들어졌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데 이게 사라지다시피 한 것이다. 이씨는 “학교고 유치원이고 다 문을 닫아 아이 셋과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되니 무슨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며 “학교에 보내면 하루에 두세시간이라도 나 자신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는데, 하루 종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만 생활하다 보니 그러지 못해 힘들었다”고 말했다.

손자녀를 돌보는 노인들도 같은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시민 백신’ 워크숍에 참석한 김아무개(63)씨는 “전엔 운동 다니고 등산 다니고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어린이집이 문을 닫으면서 외손자를 24시간 돌보고 있다. 아직 어려서 먹는 것부터 화장실 가는 것까지 일일이 신경을 써야 하고, 잘 때도 데리고 있어야 해 잠도 깊이 못 잔다”며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도 심한데, 딸한테는 마음 아파할까 봐 말도 못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희경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 앞 공원으로 매일 산책을 나가는 데서 위안을 얻었다. 아이들은 밖에 나가면 뛰어노느라 엄마를 안 찾고, 이씨는 워낙 자연을 좋아해 무수한 들꽃과 곤충을 관찰하면서 충전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차례씩은 남편에게 아이들을 돌보게 하고 ‘생각을 담는 집’에서 하는 글쓰기 수업을 듣고, 틈틈이 책을 읽어주는 오디오 클립도 들었다. 그는 “이렇게 하면서 애들이랑 있으면서도 나만의 영역을 확보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나를 지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도 지키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림도 한 것 같다”고 돌이켰다.

유튜버 찐찐의 홈캠핑 화면. 화면 갈무리

7고: 학교·회사 못 가는 고통

코로나19는 그렇게 가기 싫던 학교와 회사가 가고 싶어지는 마법을 부렸다. 초·중·고 학생들은 같은 반 친구랑 제대로 친해지지도 못한 채, 대학 신입생들은 소속감도 느끼지 못한 채 한 학년을 끝내게 됐다. 재택근무에 지친 직장인들은 좀이 쑤신다. 그나마 직장인은 나은 편이다. 취업준비생들은 취업공고 자체가 사라진 현실이 아득하기만 하다. ‘스펙’을 준비할 각종 시험도 툭하면 코로나19로 연기된다. 한 취업준비생은 “미래 계획이 무너져 느끼게 된 정신적인 어려움이 극복이 안 된다”고 했다.

학생도, 취업준비생도, 직장인도, 줌으로 만나 스터디하고 회의하면서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의 공백을 메워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신한대 임상병리학과 2학년 윤지희(21)씨는 자신도 지난달에 잠깐 했던 실습을 빼면 죄다 온라인 수업만 하는 상황에서도 후배들이 학교에 적응하는 걸 도왔다. 학교에서 지원하는 8주짜리 멘토-멘티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줌으로만 진행했다. 그래도 학교 건물 위치, 리포트 쓰는 법 같은 시시콜콜한 정보를 신입생 후배한테 얘기해주면서 꽤 보람을 느꼈다. “학교 상담센터에서 각자 엠비티아이(MBTI) 성격 유형 검사를 한 다음 그 결과지를 놓고 줌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떻게 생활할지 얘기하다 보니 많이 친해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의 고통은, 다른 7가지 고통에 견줄 때 개인의 노력으로 해소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시민 백신’ 워크숍에서 취업준비생들이 만든 2가지 백신은 ‘오투오(O2O, 온·오프라인 연결) 취업정보 교류’와 ‘언택트 관련 일자리’다. 온라인 취업 워크숍을 열어 취업 관련 정보를 제공해 취업준비생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감염병에도 안전한 오프라인 스터디 공간을 마련해달라는 게 첫째고, 코로나19 탓에 자격증 시험, 면접, 일자리가 줄줄이 줄어드니, 이런 상황을 제대로 경험한 취업준비생들이 잘할 수 있는 언택트 청년 일자리를 창출해달라는 게 둘째다. 중고생 참석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인원을 나누고 온·오프라인 수업을 섞어도 좋으니, 소규모로라도 등교할 수 있는 ‘블렌디드 학교생활’ 백신을 원한다고 했다. 직장인들은 회사마다 다른 재택근무 기준 때문에 재택근무를 해도, 출근을 해도 마음이 불편하니, 정부가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철저히 지키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섬세하고 정밀한 제도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8고:​​​​​​ 무기력해지는 고통

코로나19로 평범한 생활을 못 하게 되면서 우울감을 느끼는 ‘코로나 블루’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걸 써야 하는지 마스크만 봐도 한숨이 나온다. 도망칠 데도 없는 전세계적 재난은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집에만 있자니 늘어지고 자꾸 무기력해진다.

이런 상황을 반전시킬 출발점은 긍정적인 생각이다. ‘코로나19 때문에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덕분에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박초원씨는 “코로나19 때문에 멈춰야 해 힘들고 우울한 건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거기서 끝나면 남는 게 없지 않나. 강제로라도 나한테 집중하는 시간으로 만들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전엔 돌아다니기 바빴는데, 요즘은 책 읽는 데 그 에너지를 써서 인문학, 철학, 종교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30권 정도 읽었다. 다양한 생각을 배우는 게 너무 좋다”고 덧붙였다. 올해 봉사활동을 많이 하고 싶었던 윤지희씨는 경기 의정부시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지역의 어린이가 있는 가정에 대여해주는 장난감을 소독하는 일과, 구청 등에서 체온 측정을 하는 ‘코로나19 맞춤형’ 활동을 찾아내 힘을 보탰다. 김지영씨도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쓰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머리뿐만 아니라 몸도 움직여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달 25일 내놓은 신체활동 가이드라인에서 18살 이상 성인의 경우 걷기, 춤추기 같은 중간 강도의 유산소운동을 일주일에 최소 2시간30분~5시간 하거나, 자전거 타기, 달리기, 테니스 같은 고강도 유산소운동을 최소 1시간15분~2시간30분 하라고 권고했다. 앉아 있는 시간을 제한해 앉는 대신 어떤 강도로든 움직이면 건강에 도움이 되며, 당장 운동을 하기 어렵다면 계단 오르기나 걷기, 집안일 하기 같은 활동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고도 했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런 신체활동이 여러 질병을 막거나 관리하는 것은 물론, 우울증과 불안 증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일상을 이전처럼 되돌리긴 아직 쉽지 않다. 그렇다고 코로나 일상의 고통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무의미하지도 않다. 그래서 방탄소년단이 응원하지 않았는가. “멈춰 있지만 어둠에 숨지 마. 빛은 또 떠오르니깐”(‘라이프 고즈 온’)이라고, 삶은 계속돼야 하니까.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연말 모임을 취소하는 대신 ‘랜선 송년회’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겨레> 토요판부 기자들이 랜선 송년회 장면을 연출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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