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선박에 충돌하는 고래..알고보니 비닐 삼켜 '복통' 몸부림
내장에 고통 느끼다 폐사 유발
코로나 방역에 비닐 사용 급증
'해양오염 막을 규제 시급' 지적
[경향신문]
전 세계 바다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 가운데 고래에게 가장 치명적인 건 비닐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비닐 재질의 봉지나 필름을 먹은 고래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선박과 충돌하기도 해 플라스틱 해양투기에 관한 규제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난주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 연구진은 해양 동물의 죽음을 주제로 삼은 논문 79편을 종합 분석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컨서베이션 레터스’ 최신호에 게재했다.
연구진은 고래에게 가장 치명적인 플라스틱 쓰레기는 비닐봉지, 포장을 위한 필름, 시트지 등이라고 설명했다. 형태가 고정되지 않은 유연한 플라스틱인데, 주원료는 폴리에틸렌이다. 분석에 따르면 비닐을 먹은 고래는 이상 증세를 보였다. 죽기 며칠 전부터 정상적인 몸놀림으로 헤엄을 치지 못하고, 이 때문에 주변의 배와 부딪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박과 충돌하는 이상 행동을 보이는 고래의 절반이 이런 비닐 섭취로 인한 신체적 문제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을 이끈 CSIRO 소속의 로렌 로먼 박사는 “고래가 비닐을 먹고 나서 사망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린다”며 “그 과정에서 분명 내장에 고통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고래가 비닐을 먹는 이유는 뭘까. 연구진은 “비닐이 ‘중성 부력’을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비닐은 완전히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도 아니고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는 것도 아닌 물속에 둥둥 떠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이를 고래가 헤엄을 치다 발견하면 먹이인 줄 알고 입속에 넣는다는 얘기다. 수심 2000m 바다에서 헤엄치는 향유고래도 비닐을 삼켜 폐사하는 일이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일회용 비닐의 사용을 규제하는 움직임이 더 확산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최근의 여건은 고래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코로나19로 인한 방역이 이슈가 되면서 비닐 사용이 오히려 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최근엔 의료용 또는 일회용 장갑에 주로 활용되는 라텍스의 사용도 급증했다. 라텍스는 바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플라스틱 오염물질은 아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한 용도로 사용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플라스틱의 일종인 일회용 마스크도 새로운 해양오염 물질로 떠오르고 있다. 호주 세계자연기금(WWF)의 리처드 렉 해양분과 회장은 영국 매체 가디언을 통해 “우리는 올해 초보다 더 많은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있다”며 “이번 연구는 플라스틱 사용 감소를 위한 추진력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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