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사건 그후] ① 코로나19 돌봄 사각지대..인천 초등생 형제 화재 참변

손현규 2020. 12.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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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 수업 시기 보호자 없는 집에 머물다 불 내..동생 사망, 형은 중상
정부, 아동 방임·학대 더 적극적 개입.."전담 인력 늘리고 전문성 키워야"

[※ 편집자 주 = 2020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온통 삼켜버린 한해입니다. 코로나19가 확산한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충격과 분노, 안타까움과 슬픔을 안겨준 크고 작은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연합뉴스는 올해 전국을 달궜던 주요 사건·사고를 되돌아보고 원인과 후속 대책 등을 살펴 재발 방지의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밝아오는 새해 신축년에는 더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길 기원하면서 관련 기획 기사 5편을 21일부터 25일까지 나눠 송고합니다.]

인천 초등생 형제 살던 빌라 [인천 미추홀소방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올해 9월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해 전국 7천900개 학교에서 등교가 중단된 시기였다. 인천에서도 초등학생들이 잇따라 감염됐고, 780여 개 학교가 등교 수업 대신 원격 수업을 했다.

같은 달 14일. 인천시 미추홀구 한 빌라에 살던 초등생 A(10)군과 B(8)군 형제는 원격 수업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고 보호자가 없는 집에 둘만 남았다.

코로나19가 확산하지 않았다면 학교에서 급식을 기다릴 시간인 오전 11시 10분. 형제가 살던 빌라 부엌에서 큰불이 났다.

형제는 안방으로 몸을 피한 뒤 외출 중인 어머니 C(30)씨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걸었다. 이후 119에 신고하며 "살려주세요"라고 소리쳤다.

둘째 아들의 휴대폰으로 걸린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란 C씨가 화재 발생 10여 분 만에 집에 도착했지만, 형제는 이미 중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된 뒤였다.

소방관이 출동했을 당시 A군은 안방 침대 위 아동용 텐트 안에서 전신의 40%에 화상을 입은 채 발견됐다. 동생은 침대와 맞닿은 책상 아래 좁은 공간으로 피했다가 다리 등에 화상을 입었다.

현장에 출동한 한 소방관은 "책상 위에는 컴퓨터 모니터가 있었고 책상과 바로 붙어 있는 침대 사이 공간에 쌓여있던 이불을 걷어내고 안에 있던 작은 아이를 구조했다"고 말했다.

형인 A군이 동생을 책상 아래 좁은 공간으로 몸을 피신시키고, 자신은 화재로 인한 연기를 피해 텐트 속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이 형제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이 언론 보도로 알려지자 "치료비에 써달라"며 전국 각지에서 온정의 손길이 잇따랐다.

형제가 치료를 받은 화상 전문병원으로 5천만원이 넘는 후원금이 전달되는 등 곳곳에서 3억원이 넘는 기부금이 쌓였다.

쌓인 후원금은 두 형제를 걱정하고 위로하며 격려하고 응원하는 마음 하나하나가 모인 총합이었다.

그런 바람이 전해진 듯 두 형제는 사고 발생 11일 만에 나란히 눈을 떴다. 특히 심한 3도 화상을 입어 2차례 피부 이식 수술을 받은 형은 10월 들어 가끔 휴대전화로 원격수업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회복했다.

그러나 의식을 찾은 뒤에도 겨우 "엄마"라는 말만 했던 동생은 화재 당시 유독 가스를 많이 들이마신 영향으로 상태가 갑자기 악화했고 10월 21일 끝내 숨졌다. 불길 속에서 떨었던 그 날 이후 37일 만이었다.

화재의 흔적 [연합뉴스 자료사진]

애초 이 화재는 형제가 단둘이 집에서 끼니를 때우려고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A군이 주방 가스레인지를 켜둔 상태에서 가연성 물질을 가까이 갖다 대 큰불로 번진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가 취약계층 자녀를 위한 돌봄 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참사라고 입을 모았다.

남편 없이 혼자 형제를 키운 어머니는 화재 전날부터 집을 비웠다. 2018년부터 아이들을 종종 방임했고, 보다 못한 이웃 주민들이 3차례나 신고도 했다.

어머니는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 장애(ADHD)를 앓는 큰아들을 때렸다가 아동복지법상 신체적 학대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적도 있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올해 5월 이런 엄마와 A군 형제를 분리해 아동보호 시설에 위탁하게 해 달라고 청구했지만, 법원은 분리 조치 대신 형제가 1년간 상담과 치료를 받도록 했다.

아동보호기관, 법원, 경찰 등이 아예 손을 놓고 있진 않았지만, A군 어머니의 방임 학대를 알고도 각자 맡은 범위 안에서 제한적인 역할만 했고 결과적으로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다.

정부는 이 사고를 계기로 사각지대에 놓인 방임·정서 학대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로 했다.

가정법원이 방임·정서 학대에 적극적인 보호 조치를 명령하도록 개선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방임 학대 피해자로 판단된 아동은 초등돌봄교실을 우선 이용하되 이를 부모가 거부할 경우 과태료도 부과할 수 있도록 법규를 개정하기로 했다.

내년까지는 모든 시·군·구에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을 배치해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지자체 공무원이 학대 조사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아동복지연구센터 이상정 박사는 21일 "코로나19로 인해 등교가 불규칙적이고 지역아동센터도 문을 닫는 곳이 많아 아동학대 징후를 발견하기 더 힘들어졌다"며 "특히 방임이나 정서적 학대는 신체적 학대보다 조기 발견이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어 "민간인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공권력이 없어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 나가도 가해 부모가 문조차 열어주지 않아 조사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의 인력이 지금보다 더 늘고 시간이 지나 전문성까지 쌓이면 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s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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