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사건 그후] ② 38명 목숨 잃은 이천 화재 현장 처참한 모습 그대로

권준우 2020. 12. 22. 08: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용접 불티 옮겨붙어 순식간에 대형 참사..되풀이되는 사고에 뒷북 대책만
규제 강화해도 현장선 외면 악순환.."점검 인력 늘리고 엄격히 관리해야"

(이천=연합뉴스) 권준우 김솔 기자 = 지난 17일 찾아간 경기 이천시 모가면 한익스프레스 남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은 8개월이 지났는데도 새까맣게 불에 탄 모습 그대로였다.

골조만 남은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 [촬영 김솔]

건물 외벽과 내부 기둥에 붙어있던 철골은 곳곳이 휘어졌고 외벽은 불에 그슬려 검게 얼룩진 자국이 선명했다.

1층 내부는 기둥만 앙상하게 남아 당시 화마의 기세를 짐작하게 했다.

이곳에서는 지난 4월 29일 발생한 화재로 38명의 근로자가 숨지고 10명의 중상자가 나왔다.

그날은 6일간의 황금연휴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대부분의 근로자가 작업 중이던 오후 1시 32분 발생한 화재는 연면적 1만여㎡ 규모의 건물 대부분을 집어삼키고 5시간이 지나서야 꺼졌다.

검은 연기가 잦아들자 가려졌던 참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 2층부터 지상 4층까지 모든 층에서 사망자가 발견됐고, 지상 2층에선 무려 18명이 한꺼번에 숨졌다.

화재의 원인은 용접 불티로 지목됐다.

건물 지하 2층에서 근로자가 유니트쿨러(실내기) 배관에 산소용접 작업을 하던 중 발생한 불티가 천장의 벽면 속에 도포돼 있던 우레탄폼에 옮겨붙어 불이 시작된 것이다.

용접 작업 중에 발생한 불티가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화재 사고는 그동안 여러 번 발생했지만, 여전히 되풀이되는 인재였다.

8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 2008년 서이천 물류창고 화재, 9명이 죽고 69명이 다친 2014년 고양 종합터미널 화재, 4명이 죽고 47명이 다친 2017년 화성 동탄메타폴리스 상가 화재 등이 모두 용접 작업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대형 피해를 낸 화재가 아니더라도 용접 불티로 인한 화재는 2017년 1천168건, 2018년 1천134건, 지난해 1천106건으로 해마다 1천건 넘게 반복됐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 희생자 합동영결식 [촬영 홍기원]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한 법적 장치는 이미 존재한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통풍이나 환기가 충분하지 않고 가연물이 있는 건축물 내부에서 용접·용단 등 불꽃 작업을 할 때는 소화 기구를 비치하고 날림 방지 덮개나 방화포 등으로 화재 원인을 차단하게끔 돼 있다.

법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용접 불티 화재가 끊이지 않자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지난해 4월 산업안전보건법의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일부 개정했다.

화재 위험 작업에 앞서 불꽃·불티가 튀어 불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를 하고 근로자들에게 화재 예방·피난 교육을 하도록 규정했다.

작업 전체 과정에 대한 안전조치 시행 여부 등을 점검해 모든 근로자가 볼 수 있게 현장에 게시해야 한다는 내용 등도 추가했다.

그러나 실제 대다수 작업 현장에서 이러한 규정은 참고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천 화재 현장 역시 이런 안전조치 의무를 전혀 지키지 않았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공기 단축, 안전을 도외시한 피난 대피로와 방화문 폐쇄, 임의 시공, 화재 및 폭발 위험작업의 동시 시공, 임시 소방시설과 비상 경보장치 미설치, 안전관리자 미배치 등 다수의 안전수칙 미준수 사실을 확인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 관계기관이 관리·감독 등 제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기본 안전 수칙을 등한시하는 현장의 분위기도 화재 발생을 부채질하고 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어떤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미 현행법에 여러 규정이 있지만 이에 대한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공공연하게 불법적인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건설 현장의 안전수칙 이행 여부를 관리·감독할 당국의 인력은 크게 부족하다.

이천 화재 당시에도 고용부 감시 인력은 동절기·해빙기·장마철 등 연중 취약시기 3차례 정도만 점검 가능한 수준이었다.

사고 이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은 관리·감독 기능을 한층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기도는 이천 참사를 계기로 일정 규모 이상의 공사 현장에 안전지킴이(상주 감시원)를 파견하는 방안을 마련해 지난 7월 건축 허가조건 표준안에 포함했다.

[모멘트] 오열하는 유가족 [촬영 홍기원]

국회에서는 불에 타기 쉬워 건축에 부적합한 자재를 시장에서 퇴출하는 방안이 입법 단계를 거치고 있다.

이달 초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건축법' 개정안은 주요 건축자재에 대해 화재 안전 성능, 품질관리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하고, 적합하다고 인정된 자재만 생산·유통할 수 있는 '품질인정제도'를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안전 성능이나 공장 품질관리 능력을 갖춘 사업자가 자재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하고, 매년 불시 점검해 불량자재 생산과 유통을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공 교수는 "건축법 개정안이 취지대로 이행된다면 대형 화재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다만 불시점검에는 전문가가 동행해 위법 사항을 꼼꼼히 살펴야 하고 점검도 자주, 엄격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불법 자재 생산업자를 적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자재가 사용된 현장을 모두 추적해 리콜 등 적극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며 "지역건축 안전센터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한 현장 점검 등에 지자체의 참여와 협조가 필수"라고 말했다.

stop@yna.co.kr

☞ 공개 저격 당한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결국 사과
☞ MBC에 200억 안겨준 김태호 PD 1억 특별포상
☞ 대낮에 영화 '기생충' 촬영지 경찰 출동 소동
☞ '父 이스라엘 출신…' 미인대회 2위에게 혐오발언 폭격
☞ 전력 끊기면 문이 안 열린다?…심각한 안전결함 테슬라
☞ 아나운서에서 쇼호스트로…1세대 방송인 고려진 별세
☞ 이런 진풍경이…정우성, '날아라 개천용' 배성우 대타
☞ 하혈하며 구급차에 실려온 산모, 코로나 검사결과 기다리다 사산
☞ 그룹 비투비 정일훈, 대마초 흡입 혐의로 검찰 송치
☞ 나경원, 아들 군대 보내면서 국내출산 인증…"내 갈 길 간다"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