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탁현민·낙태죄..여가부 장관 후보자의 '뼈있는' 답변

임재우 2020. 12. 2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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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지자체장 사건에 "권력형 성범죄" 규정
탁현민 여성비하 저서엔 "성평등 이해도 점검해야"
낙태죄 폐지에 "여성 건강권으로 프레임 전환"

민감 사안 침묵했던 전임들과 '결 다르다' 평가
24일 인사청문회에서 내놓을 발언에 주목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24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미리 제출한 답변서에서 여권 인사가 휘말린 성범죄 의혹 등에 뼈있는 답변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직 지자체장들이 연이어 휘말린 성폭력 사건에 대해 “권력형 성범죄”라고 했고, 현 정부 핵심인사로 꼽히는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여성비하적 저서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입법시한을 코앞에 둔 임신중지 관련 법안에 대해서도 “여성의 건강권·자기결정권”을 언급하며 ‘낙태죄 폐지’ 견해에 힘을 싣는 답변을 내놨다.

여성계 안팎에서는 첨예한 현안에 대해 침묵을 지켜온 전임 장관들과는 ‘결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관심은 정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여성가족부의 분위기 쇄신을 기대할 수 있는 발언을 내놓을지에 모인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3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희정·박원순·오거돈 사건에 “권력형 성범죄”

정 후보자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사건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 등에 대해 “조직내 상하관계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권력형 성범죄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관장과 공무원이라는 권력관계의 불균형에서 발생한 성범죄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내년 4월에 있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전임시장들의 ‘권력형 성범죄 사건’ 때문인지 묻는 질문에는 “보궐선거를 치르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간 여성가족부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직 지자체장이 연루된 사건에 유독 소극적인 대응을 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여가부는 박 전 시장의 피소 사실이 알려진 지 닷새가 되어서야 “고소인에 대한 2차 가해가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는데, 이때 피해자를 ‘고소인’으로 지칭해 논란이 됐다. 여가부는 입장문 발표 이틀 후 “고소인은 관련법상 피해자가 맞다”고 밝혔다. 그 뒤에도 진상규명에 대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가 사건 발생 2주가 되어서야 서울시에 대한 특별현장점검 등 뒤늦은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이정옥 현 여가부 장관은 이들 사건에 대해 엉뚱한 발언을 내놓는 등 논란을 오히려 키웠다.

이 장관은 지난 11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대해 “국가에 굉장히 큰 새로운 예산이 소요되는 사건을 통해 역으로 국민 전체가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집단학습을 할 기회가 된다”고 말해 비판을 받았다. 이 장관은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 사건이 권력형 성범죄인지 묻는 말에도 “수사 중인 사건에 관해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답을 피해갔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피해자를 지원하고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해 노력해야 할 부처의 장이 공개적으로 ‘권력형 성범죄’라고 밝힌 부분은 늦었지만 다행스럽다. 피해자들이 아직도 심각한 공격에 노출되어 있는 만큼 인사청문회에서도 이번에 밝힌 기조에 맞는 답변이 나올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 <한겨레> 자료사진

탁현민 여성비하 저서에 “문제 있다. 사회 지도층·공인은 스스로를 점검해야”

정 후보자는 여성비하적 내용이 담긴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저서에 대한 견해도 비교적 분명하게 밝혔다. 문재인 정부 첫 여가부 장관이었던 정현백 전 장관이 탁 비서관의 경질을 청와대에 건의했다고 밝힌 뒤, 여가부 장관·후보자가 탁 비서관에 대한 직접적인 견해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후보자는 “(탁 비서관의) 과거 저서에 쓴 표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지도층이나 공인의 경우 성평등 의식과 실천에 있어 스스로 성평등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자신을 점검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탁 비서관에 대한 해임을 건의할 의사가 있는지 묻는 질의에는 “인사권자의 고유 권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보며,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의견을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답했다.

탁 비서관은 2007년 펴낸 책 <남자마음설명서>에 ‘등과 가슴의 차이가 없는 여자가 탱크톱을 입는 것은 남자 입장에선 테러를 당하는 기분’, ‘이왕 입은 짧은 옷 안에 뭔가 받쳐 입지 마라’, ‘파인 상의를 입고 허리를 숙일 때 가슴을 가리는 여자는 그러지 않는 편이 좋다’, ‘콘돔 사용은 섹스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등의 내용을 담아 논란이 됐다. 2010년 <상상력에 권력을>이라는 책에서는 “일반적으로 남성에게 룸살롱과 나이트클럽, 클럽으로 이어지는 일단의 유흥은 궁극적으로 여성과의 잠자리를 최종적인 목표로 하거나 전제한다. …그러니 이러한 풍경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동방예의지국의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썼다.

2017년 탁 비서관(당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의 책 내용이 논란이 되자 정현백 당시 여가부 장관은 청와대에 탁 행정관에 대한 사퇴 의견을 구두로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좀 무력하다”고도 했다. 이후 임명된 진선미·이정옥 장관은 탁 비서관의 저서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진선미 전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탁 비서관의 거취와 안희정 전 지사 판결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개인 사건에 대한 의견과 무관하게 여가부가 다른 부처들을 독려하고 이끌어가면서 차별 문화를 개선하는 데 힘을 기울이겠다”고 직답을 피했다.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대학생연합동아리 모두의페미니즘 회원 및 관계자들이 낙태죄 전면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낙태죄 폐지에는 “여성의 건강권·자기결정권으로 프레임 전환해야”

정 후보자는 낙태죄 폐지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처벌보다 여성의 건강권·자기결정권에 초점을 맞추는 국제적 경향을 언급하며, 이에 발맞춰 프레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정 후보자는 “최근의 국제적 동향은 낙태에 대한 처벌보다 임신 중인 여성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지원과 보호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낙태의 원칙적 금지·규제에서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확대 및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사회적 보호 차원의 프레임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국제적 경향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낙태죄 폐지’에 힘을 싣는 것으로 보이는 답변이다.

정 후보자는 과거 낙태죄 전면폐지를 위한 서명에 이름을 올린 사실도 서면질의 등에서 적시했다. 정 후보자는 “(낙태죄 폐지) 관련 활동으로는 지난 9월에 있었던 ‘여성 100인의 ‘낙태죄’ 전면폐지 촉구 선언에 참여한 바 있다”고 밝혔다. 정 후보자는 지난 9월 ‘호주제 폐지 운동을 함께한 여성 100인’이 발표한 낙태죄 전면폐지 촉구 선언문에 김영란 전 대법관,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이 성명문에는 “호주제 폐지에 대해 격렬한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여성들이 호주제로 인한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어떤 여성도 임신중지를 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도록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는 반드시 삭제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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