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개농장서 90마리 살렸는데..'형사고발' 압박만[체헐리즘 뒷이야기]

남형도 기자 2020. 12. 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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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농장 개들 살리려 시민들 안간힘, 160마리 남은 시민 보호소..계양구청은 살릴 대책 없이 "철거 안 하면 행정대집행"

[편집자주] 2018년 여름부터 '남기자의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해봐야 안다며, 마음을 잇겠다며 시작했습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에 자식 같은 기사들이 나갔습니다. 꾹꾹 담은 맘을 독자들이 알아줄 때 가장 행복합니다. 그러나 숙제가 더 많습니다. 차마 못 다한 뒷이야기들을 가끔씩 풀고자 합니다.

계양산에 있던 개농장 뜬장서 시민들이 구한 개들. 280마리나 됐으나 시민들이 많이 구했고, 여전히 160마리가 남아 있다. 죽을 날만 기다리던 녀석들에겐 이젠 이름도 생겼다. 사진은 아린이./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태어나 보니 뜬장이었다. 바닥에서 떠 있는, 철창으로 된 사육장이 집이었다. 평평한 바닥도 사치였다. 차라리 서는 게 편했다. 발바닥이 갈라지고 관절이 나갔다. 추우면 추워야 했고, 더우면 더워야 했고, 비가 오면 맞아야 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고단한 생을 버텼다. 바깥세상에 나왔다 싶은 첫날, 그들은 도살장으로 갔다. 그곳은 개농장이었다. 무려 280마리나 됐다.

이 곳은 1992년부터 계양산에 있었다.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땅이었다. 그런데 '개발제한구역'이라, 개농장주는 이미 수십 년간 불법을 저지르고 있었다. 인천 계양구청은 2017년이 된 뒤에야 철거 압박을 했다. 25년 동안 방치한 셈이었다 .

차라리 서는 게 편했던 계양산 개농장의 뜬장. 죽을 차례가 되어서만 나왔다./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올해 4월쯤, 우연히 계양산을 지나가던 시민이 개농장의 존재를 알았다. 개들을 본 뒤 매일 맘이 쓰였단다. 도저히 모른척할 수 없었다. 언론사에 제보하고 동물보호단체들에 구해달라 요청했다. 유일하게 도와준 곳이 동물권단체 케어였다. 그리고 150여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간절히 살리고 싶었다.

280마리가 다 죽을 뻔했다
계양산 개농장에서 실제 사용했던 뜬장. 지금은 철거된 뒤 빈 상태다. 누구도 돕지 않았다. 다 시민들의 힘으로 생명을 살렸다./사진=남형도 기자
개농장을 철거하란 압박 속에서 개들이 집단 도살될 위기에 처했다. 개들은 빠르게 사라져갔다. 하루에도 4~5마리씩 도살장에 보내졌다.

속히 개농장 주인이 개들을 포기하도록 해야 했다. 케어 주도로 합의에 나섰다. 농장주는 8월 31일까지 다 분양하라고 압박했다. 대부분 대형견들이라 국내 입양이 어려웠다. 해외 입양은 코로나19 때문에 더 힘든 상황. 현실적으로 힘든 걸 알았다. 그러나 살리는 게 우선이었다. "8월 말 이후 법적 처벌을 다 감수하겠다"고 설득해 겨우 합의를 했다.

비용 역시 시민 부담으로 해결했다. 미국에 있는 한 복지가가 3300만원을 냈다. 농장주가 육견사업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위로금 명목이었다. 그래서 올해 7월 22일부터 도살이 중단됐다. 비로소 뜬장이 철거됐다. 개들은 태어나 처음 맨땅을 밟았다. 그러나 좁다란 초록색 펜스 안에서 살아야 했다. 갈 곳이 없어서였다.

그게 11월 중순까지 얘기였다. 그 무렵 아직 남은 192마리를 어떻게든 살리고 싶어 계양산으로 갔었다. 11월 21일 <개농장에 남은 192마리…"살고 싶어요">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그리고 약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그곳엔 개들이 남아 있다. 이들을 위한 뒷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영하 15도 맹추위…시민들이 살렸다
영하 15도의 맹추위가 찾아오기 전, 계양산 시민 보호소엔 비닐하우스가 생겼다. 다 독자들 마음 덕분이다./사진=인스타그램 랜드하운드(@land_hound_korea)
그 당시 가장 시급했던 건 비닐하우스 설치였다. 추운 겨울이 코앞인데, 펜스 역시 사방이 뚫려 있어 추위를 피할 수 없었다. 그대로 두면 얼어 죽을 터였다. 그러나 비용이 만만찮았다. 무려 2000만원이나 든다고 했다. '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에겐 그만한 돈이 없었다.

결국 독자들이 살렸다. 기사가 나간 뒤 후원과 봉사가 많이 늘었다. 시민모임 채팅방 인원은 150명에서 450명으로 약 300명 늘었다(기사 뿐 아니라 커뮤니티 등에 봉사자들이 열심히 써서 알린 덕분).

이에 힘입어 비닐하우스 설치 비용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12월 9일엔 마침내 비닐하우스를 다 설치했다. 그 역시 다 봉사자들 노고 덕분이었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시간을 희생해가며 계양산을 집처럼 드나들었다. 애달픈 땀방울이 추위를 이겼다.

그로부터 나흘 뒤인 13일부터는 예상대로 최저 영하 15도에 달하는 한파가 몰아쳤다. 그대로 뒀으면 절반 이상 얼어 죽을 뻔했다. 봉사자들은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비닐하우스가 이렇게 소중한 건 줄 몰랐어요." 다들 같은 마음이었다. 나 역시 늘 바깥에 나갈 때마다 추위에 떨 녀석들을 걱정했었다. 그때부턴 비로소 가슴을 졸이지 않게 됐다.

개농장 당시 280마리나 되던 개들은 시민들 보살핌 속에서 160마리로 줄었다. 밥과 물을 먹이고, 다친 녀석들을 치료하고, 해외 입양을 알아보고, 목욕을 시키고, 이동 봉사를 구해 보호자를 만나게 했다. 죽을 날만 기다리던 녀석들이 처음으로 '보호'를 받게 됐다. 시민들이 살리기 위해 애쓴 노력은 몇 날 며칠을 써도 다 풀지 못한다. 장담한다.

계양구청은 보호소 '철거' 예고, "개들은 우린 몰라"
개발제한구역이라 펜스 설치도 불법이라 했다. 천막을 치려 했더니 구청 공무원이 막았다. 결국 바닥엔 빗물이 고였다. 겨우 편해졌던 개들은 다시 일어서야 했다./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계양산 개들을 살리기 위해 시민들이 애쓰는 동안 계양구청은 무얼 했을까.

우선 개발제한구역 내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계양구청 도시재생과 개발제한구역관리팀 공무원들이 한 일이다.

1. 초록색 펜스를 친 게 불법(토지형질변경이라 주장)이라며, 시민모임에 대한 행정 처분에 나섰다. 비가 많이 내리던 날, 개들이 비를 맞을까 천막을 치려 했으나 이를 알아챈 해당팀 공무원들이 이를 막았다. 천막 천만 겨우 펜스에 덮었다. 비가 세차게 들어와 바닥이 다 젖었다. 개들은 뜬장서 살 때처럼 다시 일어서야 했다.

2. 이후 개발제한구역관리팀에선 '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에 공문을 보냈다. 계양산 시민 보호소를 향해 '개 사육장 설치'라 했다. 그러면서 내년 1월 4일까지 철거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행정기관이 강제 철거에 나서는 것)과 형사 고발,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계양구청 도시재생과 개발제한구역관리팀에서 시민모임에 보낸 행정처분 공문. 행정대집행이란 구청서 강제 철거도 하겠단 의미다./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시민 보호소를 강제 철거하면, 남은 개 160마리는 어떻게 하겠단 계획일까. 이에 대해 한상훈 계양구청 도시재생과 개발제한구역관리팀장은 "개들은 저희들은 모른다. 저희들에게 얘기하지 말라"며 "지역경제과, 환경과와 협력해 해결할 일"이라고 답했다. 이어 "1월 4일 이후엔 형사고발 조치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시민모임 "토지형질변경 아니다", 행정심판 나서
계양산 시민 보호소에 여전히 남은 개들. 살리기 위한 봉사자들 노력만 애달프다./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그러나 시민모임 측은 "펜스를 설치한 게 개 사육장을 설치한 것도 아니고, 토지형질변경을 한 것도 아니"라며 행정처분이 위법하다고 행정 심판을 냈다.

오히려 기존 개 사육 케이지(뜬장)를 시민모임이 철거한 것이며, 펜스는 원상회복이 어렵지 않단 것. 펜스를 철거해 보호 중인 개들을 풀어 놓으면 주민들은 물론 등산객들에게 또 다른 피해가 가므로, 개발제한구역법 및 동물보호법 입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결과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김영환 케어 대표는 "경험 많은 변호사에게 자문해봐도, '어느 지자체를 상대해도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길 하는 곳이 없다'고 한다"며 "법을 가장 좁게 해석해서 자기 방어를 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계양구청 동물보호팀도 "개농장이라 보호소 아냐"
계양산 개농장서 구조돼 미국에서 입양 예정인 안소니가 임시보호 중인 가정에서 아이와 뛰어노는 모습. 애들을 너무 좋아한단다. 개농장 개와 반려견을 구분하는 게 맞는가. /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여기에 계양구청 환경과 오수관리팀도 시민모임을 대상으로 행정 처분에 나섰다. 시민 보호소가 '가축분뇨 배출 시설'임에도 신고하지 않았단 것이다.

여기서 '유기견 보호시설'로 인정 받는 게 중요하다. 가축분뇨 배출시설에서 제외한다는 환경부 유권해석(2018년 한나네 보호소 사례)이 있어서다.

그러나 노희순 환경과 오수관리팀장은 시민모임과 면담에서 "육견 사업을 포기했어도 보호 동물이 아니다"라고 했다.

계양산 개농장 뜬장에 있던 안소니 어린 시절. 위 사진과 같은 개다./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하물며 동물을 보호한다는 계양구청 지역경제과 동물보호팀 논리도 같았다. 박성환 동물보호팀장은 "동물보호법엔 개농장 개들에 대한 내용은 없다"고 했다. 개농장 개들이 적용받을 법은 축산법과 가축분뇨처리에 관한 법률, 두 가지뿐이란 설명이었다.

즉, 동물보호법상 보호 대상은 1. 유실, 유기동물 2. 피학대 동물 중 소유자를 알 수 없는 동물 3. 소유자로부터 제8조 제2항(신체 손상 등)에 따른 학대를 받아 적정하게 치료, 보호받을 수 없다고 판단되는 동물인데, 계양산 개들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단 거였다.

계양산 개들이 해외로 입양 가기 전 봉사자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개농장서 태어났으니 가축이고, 보호 대상이 아닌가. 그 차이는 무엇인가./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쉽게 말해 개농장서 태어났으니 가축으로 구분할 수밖에 없단 얘기다. 법의 한계란다. 개농장 개들의 도살을 막았어도, 밥과 물을 먹이고 입양을 보냈어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답답함에 계양구청에 찾아간 봉사자들이 "지금 우리가 하는 활동이 보호가 아니면 뭐냐, 90마리나 살렸다"고 따졌으나, 박 팀장은 "그래도 보호소는 아니다. 원하는 답은 못 드린다"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롯데 측은 "협의하고 있다"는 말만
비가 많이 온 날, 비를 맞고 축 늘어져 있던 계양산 시민 보호소의 한 아이. 우산이 되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봉사자 중 누군가 그렸다./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계양산 개농장이 있던 땅 부지는 현재 상속인 세 명(신동빈, 신영자, 신동주)에게 갔다. 그렇다면 롯데는 대체 어떤 해결 방안을 마련하고 있을까.

김춘식 롯데지주 홍보수석은 "지원할 수 있는 것과 지원 요구 사이에서 협의하며 격차를 좁히고 있다"며 "규모에 대한 문제"라고 답했다.

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단체 채팅방은 늘 이리 분주하다./사진=남형도 기자

계양구청의 행정 처분 압박, 롯데 측의 해결 방안 부재 속에서 시민들은 오늘도 개들을 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시민모임 오픈 채팅방은 개들을 살리기 위한 맘들로 매 순간 분주하다. 봉사를 가고, 이들을 위한 샌드위치를 만들고, 녹초가 되어도 또 가겠다 다짐하며, 뻔한 살림을 내어 후원하고 있다.

그러면서 무언가라도 알리려 애쓰고 있다. 개들을 살리기 위해서다. 녀석들에겐 이름도 생겼다. 그러나 쉽지 않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한 달을 진행했으나 1만6000여명에 그쳤다.

인천시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계양산 개농장 관련 청원(https://www.incheon.go.kr/cool/COOL010201/view?petitSn=2041269&curPage=1). 공감수 3000개가 되면 인천시가 답변한다./사진=인천시청 홈페이지


현재는 인천광역시 홈페이지서 '개농장을 보호소로 지정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란 제목의 청원(https://www.incheon.go.kr/cool/COOL010201/view?petitSn=2041269&curPage=1)이 진행되고 있다. 공감 수 3000개를 채우면 인천시가 답변하게 돼 있다. 22일 밤 10시 30분 기준 공감 수는 2758개다. 250개 정도 남았다.

그리고 오늘도 계양산 시민 보호소엔 160마리의 개들이, 살아 있다.

"우리도 살고 싶어요". 우연히 개농장서 태어난 이 개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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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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