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경북대 실험실 사고 1년..'학생 연구원' 보상은 제자리

박영민 2020. 12. 2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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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7일 경북대학교 화학관 실험실에서 폭발 사고가 났습니다. 당시 실험실에서 시료를 폐기하던 학생 5명 가운데 4명이 다쳤습니다.

특히 대학원생 임 모 씨는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지금까지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임 씨는 여러 차례에 걸친 수술과 치료를 버텨냈지만, 피부 복원과 재활 치료 등 여전히 고통스러운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그사이 임 씨에게 청구된 치료비는 약 10억 원입니다.

사고 이후 학교 측은 치료비를 책임지겠다고 밝혔는데, 아직 절반은 미납된 상태입니다. 앞서 학교 측은 지난 4월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치료비 지급 중단 의사를 밝혔다가 학내 반발과 가족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다시 지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약속은 기약 없이 미뤄졌고,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습니다.


■경북대 "이번 주 안으로 지급 예정"…그 이후는?

벌써 사고가 난 지 1년이 다 돼가는 가운데 경북대학교가 임 씨에 대한 치료비를 이번 주 중으로 지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경북대학교 홍원화 총장은 KBS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지난 19일 학교 보상처리위원회 회의에서 치료비 5억 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치료비 지급이 계속 늦어진 이유에 대해 홍 총장은 "국립대인 경북대는 예산 사용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회계 항목을 조정하고, 학내 구성원들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다소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일단 임 씨가 지금까지 받은 치료 비용 해결이 됐지만, 문제는 앞으로 남은 치료 비용입니다. 임 씨는 피부 복원 수술과 재활 치료를 더 받아야 합니다. 학교 측은 계속해서 돕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논의가 더 필요한 상황입니다.


■"학생 연구원도 산재 포함해야"…"논의 더 필요"

각 대학은 이 같은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연구실안전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보험에 가입해야 합니다. 하지만 치료비 지급 최고 한도는 5천만 원입니다. 치료비가 그 이상을 넘어서게 되면, 학교 측이 나서지 않는 이상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만약 임 씨가 근로계약을 맺고 일을 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면, 산업재해보험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공공연구기관 직원과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들도 실험실 사고에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임 씨처럼 '학생 연구원'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국회에는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포함한 '학생 연구원'도 산재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 3건이 올라와 있습니다. 지난 10월 국회를 찾은 임 씨의 아버지를 만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법안 처리를 당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여야 간사도 법안 취지에 공감했습니다.

임 씨의 아버지는 이 법안이 정기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아직도 상임위에 계류 중입니다. 상임위는 단순히 실험 수업을 듣는 대학생도 학생 연구원에 포함시켜야 하는지, 최대 100만 명에 이르는 가입 대상자의 보험료 1,700억 원을 어떻게 부담할지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관련 부처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다음 회기에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22일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대학원생노조지부 기자회견


■"사고 겪은 대학원생 67% 보상 못 받아"

법안 통과를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두 달 동안 농성을 벌여 온 전국 대학원생 노조 지부는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경북대 실험실 사고가 난 지 1년이 됐지만, 여전히 변한 게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지난달 직장갑질119와 함께 대학원생 58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54명(9.2%)이 실험실 업무 중 재해를 겪었다"면서 "이 가운데 36명(66.7%)은 보험이나 대학 당국으로부터 어떤 것도 보상받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중 524명(89.4%)은 대학원생의 산재보험 의무 가입이 필요하거나 매우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실제로 실험실 사고는 자주 발생합니다. 최근 5년 동안 한 해 평균 117건의 크고 작은 사고가 났습니다. 올해 8월까지 집계된 것만 77건입니다. 같은 기간 실험실 사고 피해자 가운데 70%가 임 씨와 같은 이른바 '학생 연구원'입니다. 이들이 연구하다 다쳐도 걱정하지 않도록, 이제는 국회가 답해야 할 시간입니다.

박영민 기자 (youngm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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