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파경보에 난방 고장' 비닐하우스 숙소서 이주노동자 숨져

윤지원 기자 2020. 12. 2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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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비닐하우스 자료사진. |서성일 기자


캄보디아 국적 이주노동자가 지난 20일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한파 경보가 내려진 날, 숙소에 난방 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 사망 원인으로 보인다.

23일 경향신문 취재결과, 캄보디아 국적 이주노동자 A씨(30)는 지난 20일 오후 경기도 포천 일동면 농장 비닐하우스 방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 사망한 채 발견됐다. 포천경찰서는 “신고가 접수된 당일 캄보디아 대사관에 A씨 사망 사실을 알렸다”며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조만간 법원에 부검 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했다. A씨 동료들이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목사와 이주민 지원단체 지구인의정류장 측에 전달한 진술을 종합하면 고장난 난방 시설이 사망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포천 지역의 영하 18.6도까지 떨어져 한파 경보가 내려진 20일에는 평소 같은 숙소에 머물던 다른 동료 4명은 모두 외부에서 잠을 자고, A씨 혼자 비닐하우스에 머물렀다. 동료들은 ‘18일부터 숙소에 전기와 난방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두꺼비 집 스위치를 올려도 소용이 없었다’고 김 목사 등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료들에 따르면 A씨는 평소 어깨 통증이나 감기약을 복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평소 별다른 건강 문제를 호소한 적은 없다. 다만 사망 당시 주변에서 각혈이 발견돼 결핵 등이 의심된다.

비닐하우스는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숙식을 해결하는 대표적 기숙사로 꼽힌다. 비닐하우스 기숙사는 농지 중간에 설치한 비닐하우스 안에 조립식 패널이나 컨테이너로 임시 가건물을 만든 형태다. 통상 이주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 기숙사에 살면서 월 20만~30만원 가량을 숙박비로 농장주에 지불해야 한다. 비닐하우스 가건물은 숙박 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에 겨울철엔 난방이 문제가 되고 여름엔 수해 피해에 쉽게 노출된다.

비닐하우스는 현행법상 기숙사 제공이 금지된다. 지난해 7월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추가된 ‘기숙사 설치 장소’ 조항에 따르면 사용자는 소음이나 진동이 심한 장소, 산사태나 눈사태 등 자연재해의 우려가 현저한 장소, 습기가 많거나 침수의 위험이 있는 장소, 오물이나 폐기물로 인한 오염의 우려가 현저한 장소 등 근로자의 안전하고 쾌적한 거주가 어려운 환경의 장소에 기숙사를 설치해서는 안 된다.

정영섭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국장은 “노동부의 현재 입장은 비닐하우스는 기숙사로 제공해선 안 되지만 비닐하우스 안에 샌드위치 패널로 가건물을 설치한 경우는 기숙사 제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라며 “비닐하우스 안에 가건물이 있든 없든 비주거용 건물이고 사실상 농지 위에 만들어진 여러 비닐하우스 가운데 하나를 주거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기에 사람이 살 수 있는 시설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고용노동부의 이주노동자 기숙사 관리·감독은 허술하다.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노동부를 통해 확보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현황에 따르면 올 1월~6월 사업장 변경을 한 2만1681건 중 기숙사 문제로 사업장 변경을 한 사례는 없다. 지난 7월 기준, 외국인 고용 허가를 받은 사업장 1만5773곳 가운데 노동부가 정한 외국인 기숙사 최저기준에 미달된 비율은 31.7%(5003곳)로 전년 10.3%보다 21.4% 포인트 증가했다.

이주민 인권단체들은 수년 전부터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고용노동부의 관리, 감독을 요구하고 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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