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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 보이는' 마스크, 왜 착용하냐구요?

손병관 입력 2020. 12. 23. 11:21 수정 2020. 12. 23.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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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맞은 서울의 장애인 복지시설들, 비대면 프로그램으로 위기 돌파

[손병관 기자]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 직원들이 2021년 신년인사카드 제작을 위해 11월 30일 립뷰 마스크를 착용하고 포즈를 취했다.
ⓒ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
 
"이런 마스크는 처음 보시죠?"

12월 16일 오전 서울 남가좌동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www.sdeaf.org)에서 만난 이정자 관장이 기자에게 기념품이라며 입술 부분을 투명하게 볼 수 있는 특수마스크(립뷰 마스크)를 내밀었다.

'립뷰 마스크'는 서대문농아인복지관에서 청각장애인들을 가르치는 교사와 치료사, 사회복지사들의 필수품이다. 기자가 이날 오후 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병원에 들렀는데, 병원 직원 한 명이 "이런 마스크는 처음 본다"며 입장을 저지했다. 마스크의 용도를 설명하자 이 직원은 "이런 마스크가 필요한 분들이 있는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2007년에 문을 연 서대문농아인복지관은 관내 청각장애인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복지시설로,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하루 200~300명이 이용했다.

코로나19 환자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수어통역사들도 마스크를 착용하기 시작했는데 청각장애인들로부터 "통역사들의 입술이 안 보여서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항의가 제기됐다.

립뷰 마스크는 지난 4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패션스쿨 교수와 졸업생들이 청각장애 학우를 돕겠다는 취지로 처음 제작됐다. 서울에서는 50플러스재단이 1700개 분량의 제작비를 지원해 서울시내 복지시설에 보급했다.

우리나라 청각장애인의 수는 약 39만 명. 5200만 인구 중에서 1%가 채 안 되는 비율이기 때문에 영리만 생각했다면 시장에 나올 수 없는 제품이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서 제작한 마스크와 같은 립마스크가 필요하다고 서울시에 에 지원을 요청했더니 시에서는 'KF 인증된 제품이냐'고 먼저 묻더래요. 처음 만든 학교에서도 생각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어쨌든 일사천리로 인증을 마쳤어요." (이정자 관장)

이성희 사무국장은 "처음 나온 제품은 마스크와 입 사이에 기포가 많이 생겨서 입이 잘 안 보인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지금은 많이 개량화됐다"고 덧붙였다.

발달장애 또는 시각장애와 달리 외형상 불편함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청각장애인들 상당수는 어린 시절부터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아무런 자극을 받지않고 방치되는 청각장애인들이 보다 인간다운 삶을 누리려면 사회 활동의 기회가 더 많이 보장돼야 한다.

1983년 대전에서 청각장애인 취업 알선을 시작으로 38년째 사회복지사 업무를  해온 이정자 관장에게도 코로나19는 전혀 새로운 종류의 위기였다.

그 동안 청각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보다 코로나19 감염률이 낮다는 통념이 있었다. 이들이 입 대신 수어로 의사소통하고, 교류 범위가 청각장애인들끼리로 제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 서울시에서 2명의 청각장애 확진자가 나오면서 이런 인식도 깨졌다. 서대문농아인복지관도 방마다 투명가림막을 설치하고, 남가좌1동 주민센터 직원 2명이 주3회 방역을 실시하는 등 방역에 특별히 신경쓰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만남이듯 수어로 의사소통하는 청각장애인들도 마찬가지에요. 코로나19로 만날 수가 없으니까 '라포'(rapport,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상호 신뢰관계를 말하는 프랑스어)가 형성되지 않는 거예요."

청각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어려움을 부딪히는 경우가 병원이나 경찰서, 관공서에 갈 일이 있을 때다. 특히 병원에서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구사하는 전문용어를 청각장애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어통역사의 지원이 절실하다.

이성희 사무국장의 말이다.

"관내에 있다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분들이 답답함을 호소할 때가 많다. 우리도 병원 출입이 안 되니 영상전화로 소통한 뒤 간호사에게 환자의 얘기를 전달하는데 당사자는 '왜 직접 와서 돕지없냐'고 우리에게 요구한다. 요양병원에 수어 가능한 인력 배치가 필요하다는 건의는 계속 넣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서울시의 장애인복지관들이 운영하는 프로그램 대부분이 중단됐다. 배드민턴과 에어로빅 교습 같은 유산소 운동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직격탄을 맞았다.

코로나19가 장기화조짐을 보이자 서울시는 시내 장애인복지관 51곳이 진행하던 평생교육 프로그램들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등 '비대면 비접촉' 시대를 대비해야 했다.

홀트강동장애인복지관은 발달장애인들이 최소한의 신체활동 및 여가활동이 유지될 수 있도록 '홀트네 집콕 생활'이라는 온라인 복지서비스를 시작했다. 사랑의복지관은 학습 키트 및 물품 지원으로 휴관이 되더라도 찾아가는 서비스로 전환했고, 취약계층에게 정기적으로 안부 전화를 묻는 정서 서비스를 제공했다.

남부장애인복지관은 거동이 불편한 중증장애인들을 위해 대형 이불을 빨래해주는 이동 빨래방 서비스로 위생환경 개선에 나섰고, 서초구립한우리복지관은 비대면 교육을 위해'참새TV'라는 인터넷 방송국을 시작했다.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의 경우 영어교실(ASL), 지역기반 장애인평생교육(알씀신잡 시사교실, 문자예술교실) 등 영상을 활용한 이용자의 교육권을 보장하려고 애썼다.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 수어통역사 황순의씨가 진행하는 영어수화 교실의 모습. 코로나19가 다소 진정됐던 5월(왼쪽)에는 방역수칙을 지키는 조건에서 대면 수업을 진행했지만 ‘가을대유행’이 시작되자 12월에는 한 명만 청강이 허락됐다.
ⓒ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
수어통역사 황순의씨가 진행하는 영어수화 교실의 경우 코로나19가 다소 진정됐던 5월에는 방역수칙을 지키는 조건에서 대면 수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가을대유행'이 시작되자 없던 얘기가 되어버렸다.

지난 17일 오전 황씨의 온라인 수업에는 73세의 이용자 한 명만이 입장했다. 익명의 이용자는 "집에 컴퓨터가 없고, 스마트폰은 잘 끊기고 화면이 눈에 잘 안 보여서 직접 오게 됐다며"며 "외국관광객에게 길 안내 자원봉사르르 하고 싶어서 늦은 나이지만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황씨의 말이다.

"1시간 동안 눈으로만 집중해서 보는 게 청각장애인들에게 쉽지 않다. 언어는 다양한 감각을 함께 이용해야 학습에 더 도움 되기도 하고. 수강자들 눈빛만 봐도 강의 양상이 달라지고, 순간순간 물어볼 수 있는 오프라인 교육에 (스트리밍이) 비할 바가 못 된다."

이정자 관장은 "장애인들이 아무리 살고자 하는 의욕이 있어도 이런 팬데믹이 찾아오면 비장애인들보다 더 큰 고통과 피해를 입는 것은 분명하다"며 "대화면 스마트폰을 보급하고 영상통화에 대한 요금감면율을 높이는 등 비대면 환경에서도 장애인과 그 가족 모두를 품을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 모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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