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경에 화살 돌린 정부.."백신 결정권은 질병관리청에 있다"

정슬기,윤지원 2020. 12. 2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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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 속속 백신 접종하는데 한국만 오리무중
K방역 자신감에 취해
7월 아스트라 위탁생산을
백신 확보로 착각하며 방심
9월에도 K백신·치료제 집착
상황 오판이 韓 백신공백 불러
'방역 컨트롤타워' 라던 정부
백신 확보전쟁서 뒤처지자
"외국접종 관찰 기회" 변명만

◆ 꼬인 백신 수급 ◆

정부 실기로 코로나19 백신 도입이 지연되고 있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지만 정부가 여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보이는 발언을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제는 백신을 빨리 맞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까지 내놓으면서 논란을 키우는 모습이다. 23일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은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미국·영국보다 국내 사망자 규모가 월등히 적은 만큼 백신 부작용을 미리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손 반장은 "미국에서는 환자 31만명이 사망했고 영국은 6만7000명 정도 사망했다"며 "이들 국가는 사실상 백신 외에는 채택할 수 있는 방역 전략이 별로 없는 상황이어서 백신에 전력투구하고 선투자하며 세계 최초로 백신 개발·접종을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정부 발언은 일반 국민 감정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이날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전국 만 18세 이상 500명 대상)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약 6명은 백신의 안전성보다 긴급성을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부의 안일한 대처로 백신 조기 확보에 실패한 상황에서 방역당국이 '다른 국가들에서 발생할 부작용을 관찰할 기회를 갖게 된 게 다행'이라는 식의 변명을 내놓는 건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소 30여 개국이 연내 백신 접종에 돌입하며 내년 1월이면 단기적 안전성이 확인되지만, 이 시기에도 접종 가능한 국내 백신 물량은 없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현재 구매 계약이 유일하게 확정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내년 2~3월께야 국내에 들어온다. 이마저도 계약한 1000만명분이 모두 유입되는 게 아니라 순차적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밝혀졌다. 1차 물량은 계약 물량의 극히 일부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당초 백신 도입 논의가 시작될 당시 국내 확진자 수가 적었기 때문에 정부가 신속한 백신 도입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게 의료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애초 질병관리청 소관 2021년도 예산안에 코로나19 전 국민 백신 예산은 별도 편성되지 않았지만, 국회 예산 심사 과정에서 야당 주장에 따라 9000억원가량이 신규 반영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당시엔 K방역에 대한 자신감이 상당했고, 이처럼 3차 유행 확산세가 불붙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해 백신에 대해 재빠른 판단을 내리지 못한 지점이 있다"면서도 "지금도 정부 내부 기류는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백신의 위험을 무리하게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17일 국회에서 "화이자·모더나에서도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우리와 빨리 계약을 맺자고 그쪽에서 재촉하는 상황"이라며 "가격을 합리적인 선으로 받아내기 위해 여러 바게닝(협상)을 하고 있다"고 여유를 부렸다. 당시 정부가 백신 가격을 깎기 위해 과도하게 줄다리기를 하다가 조기 도입 기회를 놓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백신 도입 실기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청와대는 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부터 백신 확보를 지시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면서 4월 9일 문 대통령이 경기도 성남시 한국파스퇴르 연구소를 방문해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확실히 돕겠다"고 말한 것 등을 공개했다. 하지만 당시 문 대통령은 국내 백신 개발을 강조했고, 해외 백신 물량을 확보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9월 15일에야 뒤늦게 코백스 퍼실리티나 글로벌 제약사를 통해 충분한 양의 백신을 확보하라고 주문했다.

여권의 백신 오판을 두고 K방역 주역으로 꼽혀 온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에게 책임의 화살을 돌리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4월부터 문 대통령의 백신 확보 지시가 이뤄졌다는 청와대 설명은 결국 백신 확보 지체가 청와대 탓이 아니라 질병관리청의 소극 행정 때문이라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백신 구매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는 정 청장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도 이 같은 흐름과 일맥상통한다. 그간 청와대와 정부가 코로나19 컨트롤타워를 자임해 온 것과는 결이 다르다.

손 반장은 이날 "현행 감염병 예방법상 백신의 구매 결정과 그 계약 절차에 대한 조치는 질병관리청장이 한다"며 "따라서 질병관리청에서 백신 구매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백신 구매 결정권은 질병관리청에 있고 정부는 지원 역할만 할 뿐이라는 주장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조 단위에 달하는 백신 선구매에 대한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질병관리청을 탓하는 것은 억지라는 지적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을 선구매하려면 어마어마한 돈을 지급해야 하는데 우리나라가 선구매할 수 있는 법 체계나 예산 체계가 없어 집행하고 싶어도 집행할 수 없고, 예산도 짤 수 없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11월에야 백신 확보에 발동을 걸었다는 지적에 대해 정부는 6월 '백신도입 전담반(TF)'을 구성해 7월부터 아스트라제네카 등 개별 기업과 협상을 진행했고, 아스트라제네카와 7월 21일, 노바백스와는 8월 13일에 구매 의향서를 체결했다고 해명했다.

[정슬기 기자 / 윤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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