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타워 로비에서 시작된 한끼 연대.. "환갑 넘어 노조 만든 건.."

김종훈 입력 2020. 12. 2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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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박소영씨가 파업하는 이유

[김종훈 기자]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16일부터 고용승계 및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청소노동자 박소영씨는 23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도중 눈시울이 붉어졌다.
ⓒ 김종훈
 
예순다섯 나이에 'LG트윈타워' 파업을 주도한 청소노동자 박소영씨는 23일 <오마이뉴스>를 만나자마자 기자가 소지한 LG핸드폰을 가리키며 "그 핸드폰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부터 꺼냈다.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박씨는 "밖에서는 LG가 엄청 '애국기업'이자 '선한기업'인 척 자랑하는데 내부에서는 자기들 배설물 닦아준 노동자들을 쫓아낼 궁리만 했다. 결국 이렇게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노조를 만들어서 그런 것 아니겠냐"면서 "LG는 정말로 위선적"이라고 말했다.

박씨가 속한 지수아이엔씨는 LG그룹의 지주회사인 주식회사 LG의 100% 출자 자회사인 에스앤아이코페레이션과 청소 용역 계약을 맺은 LG의 재하청 업체다. 이 업체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고모인 구미정씨와 구훤미씨가 각각 50%씩 지분을 나눠 소유한 회사이기도 하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민교협 등 69개 단체로 구성된 'LG 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 해결을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두 사람은 이 회사를 통해 연간 50억~60억 원에 달하는 배당금을 받아갔다. 지수아인엔씨는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임대분양과 경영대행, 고객관리, 시설관리, 미화환경, 보안안내, 주차, 파견, 보수공사, 리모델링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라고 명시했다.

박씨를 비롯해 LG트윈타워 청소원 노동자들은 노조 탄압, 단체교섭 파행 등을 이유로 지난 10월 14일 경고 파업을 하고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이후 사측은 '용역업체 변경'을 이유로 청소노동자 80여 명에게 지난 11월 30일 해고를 통보했다. 박씨를 비롯해 노동자들은 지난 16일부터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현재는 건물 로비 한편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갑질에 노조 결성... 변화 이끌었지만 돌아온 건 '계약해지' 통보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16일부터 고용승계 및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 김종훈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 회사는 평일 근무시간을 7시간 30분으로 축소한 뒤 해당 시간을 격주 토요일 근무로 채우게 하는 방식으로 주휴수당 없이 주말 근무를 시켰다. 야간조 감독은 청소노동자들이 추가 업무로 받은 수당을 자신의 개인계좌로 입금하도록 지시했고, 청소노동자들에게 돌아가면서 5만~6만 원 상당의 요리를 사 오도록 갑질도 했다. 말을 듣지 않는 노동자들에겐 까다롭고 어려운 임무를 골라 배정했다.

박씨를 비롯해 환갑을 넘긴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이유다. 노조 결성 후 노동자들은 '처우개선'과 '정년연장'을 요구하며 사측인 지수아이앤시와 교섭에 들어갔다.

지난해 11월, 교섭이 시작되자 노동자들이 일하는 환경은 변화했다. 당장 토요일 공짜노동을 위해 행해졌던 평일 '근무꺾기'가 사라졌다. 매해 계약서를 4월에 작성한다는 이유로 1월부터 인상된 최저임금을 4월부터 적용받던 관행도 사라졌다. 박씨를 비롯해 노동자들은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1년을 끈 교섭에서 사측은 '시급 60원 인상' 이외에 별다른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다. 회사는  지난 11월 30일 '계약종료'를 이유로 청소노동자들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사실상 해고통보였다. 

이에 대해 박씨는 "사측은 우리에게 '당신들은 너무 많은 걸 요구했다'고 말하더라. 시급 60원 올려준다는 사람들이 할 말인가. 나는 여기서 5년을 넘게 일했다. 오래 일한 사람은 10년도 넘었다. 우리는 항상 최저임금만 받았다. 주말에 일한 수당은 아예 없었다"라고 말했다. 결국 박씨를 비롯해 노동자들은 파업을 선택했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16일부터 고용승계 및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 김종훈
 
그러나 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열이면 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이들이다. 파업이 길어질수록 생활이 팍팍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박씨 역시 다르지 않았다. 파업하는 노동자들은 밥값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으로 찬밥을 싸와 김치와 김을 찬으로 끼니를 때웠다. 

이에 공대위 관계자는 지난 16일 새벽 트위터에 "새벽 5시 여의도, 기온은 영하 11도. 언제나처럼 첫차를 타고 출근한 청소노동자들이 빗자루를 놓고 로비에 모였다"면서 "12월 31일 계약만료 통보를 받은 나이든 노동자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파업"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한 끼 연대'를 부탁했다. LG 구내식당의 한끼 밥값이 5500원이기 때문에 한끼 밥 값 금액으로 설정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글을 올린지 만 하루 만에 4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동참해 600만 원을 모았다. 닷새가 지나자 1400여 명이 참가해 1800만 원의 금액을 모았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도 22일 '한 끼 연대'에 동참한 뒤 트위터에 '구광모 회장님, 같이 밥 한 끼 먹읍시다. 함께 삽시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박씨는 "우리는 트위터라는 걸 아예 못하는데, 공대위 선생님이 시민들이 연대해준 메시지를 다 읽어줬다"면서 "어떤 시민은 '혼밥하지 말라"며 두 사람 몫인 11000원을 송금해줬다 하더라. 지금까지 나는 나만 알고 살았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돕고 마음 나누고. 정말로 함께 파업하는 노동자들이 전부 다 깨우치고 있다. 엄청 놀라고 진짜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고마웠다"라고 감격스러운 심경을 밝혔다.

실제로 트위터리안들을 중심으로 한 끼 연대가 이어지면서 박 분회장을 비롯해 노동자들은 도시락을 준비할 필요 없이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됐다. 

교섭 가능성 불투명... 원청 LG는 '면담 거부'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16일부터 고용승계 및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 김종훈
 
하지만 이러한 연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노조의 파업이 유의미한 결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당장 지수아이앤씨는 퇴직이 도래하지 않은 65세 이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250만~500만원의 위로금을 조건으로 한 사직서명을 받고 있다.  

박씨는 회사에서 보내온 문자를 <오마이뉴스>에 보여주며 "회사는 '그간의 노고를 고려해 당사가 마련한 최선의 조치'라는 메시지를 조합원들에게 보내고 있다. 어려운 사정 때문에 이 돈을 받고 나간 사람도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박씨는 이내 "아직까지 두렵지는 않다"면서 "부당한 걸 부당하다고 말해 현실을 바꿨다. 앞으로도 깡다구로 버티고 죽을 각오로 임해 꼭 이기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섭은 진전되지 않고 있다. 23일 공대위가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장을 비롯해 최진협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등으로 대표단을 구성해 시민들의 지지서명을 들고 LG 구광모 회장에 면담을 요청했지만 LG는 정문 출입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용역업체를 관리하는 주식회사 LG의 하청업체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 측은 24일 오전 <오마이뉴스>와의통화에서 "지난 12월 21일에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백상기업에 고용승계에 관한 회신 요청을 했다"면서 "백상기업에서 온 답은 '채용과정에서 트윈타워 근무자의 경험을 고려해 지원자가 있으면 채용을 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우리도 백상기업에 고용승계를 강권할 순 없다. 다만 지수아인앤씨에서도 다른 사업장으로 배치전환을 진행해달라고 요청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16일부터 고용승계 및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 김종훈
 
박씨는 이날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노조가 좀 더 쉽게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꺼냈다. 그 이유에 대해 "노조가 만들어지고 나서 그나마 청소노동자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면서 "그전까지는 착취와 성희롱이 기본이었다. 다른 사업장도 마찬가지다. 따로 만나자고 먼저 말한 뒤 만나지 않으면 쫓아내는 사례도 있었다. 심지어 촌지를 꼬박꼬박 줘야 갑질을 당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LG(LG트윈타워) 건물미화관리 80명 부당집단해고 말도 안되는 현실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으로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파업 중인 노동자의 자녀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글에 24일 자정 기준 900여 명이 넘는 국민들이 동의 의사를 밝혔다.

공대위는 24일 오후 청소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온오프라인 크리스마스 파티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공대위는 '청소노동자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고용승계' 및 '내년에도 일할 수 있게' 해시태그 운동도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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