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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멸망에 고구려는 어떻게 대응하였나?

임기환 입력 2020. 12. 2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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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명장면-113] 고구려와 느슨한 연합전선을 펼치고 있던 백제의 멸망은 고구려에도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고구려 남쪽 경계에서 신라의 군사 활동을 백제가 제어하고 있었는데, 이런 유리한 전략적 상황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645년 당태종 침입 시에 당의 요청에 따라 신라 3만 군대가 고구려 남부를 공격하였는데, 이때 백제가 신라 서쪽 영역을 공격하여 결국 신라군이 퇴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제는 그런 전략적 이로움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처럼 백제의 존립은 고구려가 요동에서 당과의 전쟁에 주력할 수 있는 전략적 조건이 되고 있는데,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에 고구려는 왜 구경만 하고 있었을까?

660년 6월 18일에 20만이 넘는 당과 신라의 대군이 백제의 북쪽, 고구려의 남쪽 경계 너머 신라 영역인 덕물도(지금의 덕적도)에 집결하고 있었다. 특히 당은 13만 병사 및 말과 군수물자 등을 모두 해로로 운반하였기 때문에 이때 동원된 함선 수만도 2000척에 이르렀다. 이들 엄청난 수의 함선들이 꼬리를 물고 서해 바다를 건너는 장면은 아무리 눈을 감고 있어도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상황이었으리라. 아마 백제와 고구려 두 나라 모두 이 나당연합의 대군이 과연 어디로 진격할지 예의 주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대군이 해로와 육로로 나뉘어 백제를 향하는 20여 일 동안 백제 중앙정부는 별다른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 무기력하게 패망하였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고구려 정권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면 아마 남쪽 국경에 병력을 집결하면서 나당연합군의 움직임에 대응하였을 것이다. 나당연합군이 고구려가 아니라 백제를 공격한다고 한다고 해서 가슴을 쓸어내리고 안심할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백제가 멸망한다면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말처럼 고구려는 요동전선은 물론 남부전선에서까지 신라와 당의 대군을 상대해야 하는 이중의 어려움에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제 못지않은 다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백제 멸망까지 고구려군의 움직임은 자료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백제는 그렇다 치고 고구려는 백제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무얼하고 있었을까? 직접 지원군을 보내지는 못할지라도 신라 북쪽 지역을 공격하여 나당연합군의 배후를 압박하면서 백제를 측면 지원하는 군사 활동조차 왜 하지 않았을까?

사실은 고구려가 백제를 측면 지원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조차 없이 백제가 너무 빨리 멸망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고구려 중앙정부 역시 백제의 존립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모르지 않았을 터이지만, 미처 준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군사 행동을 감행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백제 사비성이 그렇게 허망하게 빨리 함락될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13만 당군이 해로로 한반도에 등장하리라고는 고구려나 백제나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듯하다. 그만큼 당은 백제 원정 계획을 극비에 붙이고 있었다. 전해인 659년 윤10월에 도착한 일본 사신을 백제 원정 정보가 새어나갈까봐 억류하여 돌려보내지 않았으며, 동맹국인 신라에조차 3월 시점에야 비로소 백제 원정 기일을 최종 통보할 만큼 당의 백제 원정 계획에 대한 보안은 철저했다. 고구려와 백제는 당의 대군이 서해 바다를 까맣게 뒤덮고 동진했을 때에야 비로소 당의 한반도 출병을 알아차린 듯하다.

더욱 전해인 659년에 3월과 11월 2차례나 당은 중앙병력을 동원하여 요동 지역에서 공세를 이어가고 있었으니, 고구려로서는 서부전선에 잔뜩 경계를 집중하고 있었던 터라 남부전선에 대해서는 별다른 군사력을 배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남부전선은 불과 5년 전인 655년에 고구려가 백제, 말갈과 더불어 신라 북변의 33성을 탈취하는 성과를 거둔 바가 있어, 다소 느긋한 형세였다.

따라서 당군이 덕물도에 등장한 6월 시점 뒤에야 공세적인 군사 활동이 가능한 군사력을 남부전선에 집결시키는 데에는 아마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런데 백제는 예상보다 너무 빨리 항복하였고, 고구려는 백제를 구원하고 싶어도 미처 군사력을 갖추지 못하였으니, 백제의 패망을 구경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점에서 나당연합군의 백제 공격을 고구려와 백제가 전혀 낌새조차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미 승패가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군인 백제가 멸망한 후 고구려는 남부전선의 방어망을 강화해야 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백제부흥군이 곳곳에서 일어나 신라군과 당군을 괴롭히고 있었다. 백제 수도 사비성은 함락되었지만, 백제 각 지방의 무력은 여전히 온존된 상태였다. 게다가 당군의 최종 목표는 고구려 공격이었기 때문에 의자왕의 항복을 받고는 9월 초에 대군을 철수하고 유인원(劉仁願)이 1만 군사로 사비성을 지키고 있었을 뿐이었다. 따라서 각 지역에서 일어난 백제부흥군 진압은 신라군 몫이었다.

고구려는 이 틈을 이용하였다. 고구려의 대응은 한발 뒤늦었지만, 대신 공세적으로 나섰다. 660년 11월 1일 고구려는 임진강변의 요충지인 신라 칠중성(七重城)을 공격하였다. 이 성을 지키던 신라 현령 필부(匹夫)는 포위되어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20여 일을 싸우다가 결국 성은 함락되고 필부는 전사하였다. 당시 신라는 백제부흥군에 진압에 주력 군대를 투입하였기 때문에 고구려와의 북부전선에서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칠중성 전경 /사진=문화재청

칠중성은 지금 파주시 적성면 중성산에 위치한 산성이다. 이 일대 임진강이 일곱 구비를 지어 구불구불 흘러가는 모습에서 칠중하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나온 이름이다. 산 정상을 둘러싸고 성벽을 구축한 테뫼식 산성으로 북쪽에서 임진강을 도하하는 지점을 제압하는 요충지다. 칠중성을 빼앗겼다는 것은 신라 입장에서는 임진강 방어선을 잃은 셈이 되고 고구려로서는 북진하는 신라군의 주요 거점을 차지하여 임진강 방어망을 보다 강화하였고 나아가 한강 하류도 넘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중요한 거점이기 때문에 638년(영류왕 21)에도 고구려군이 칠중성을 공격하였고, 신라의 명장 알천(閼川)이 이를 격퇴한 바 있다.

이렇게 칠중성에 대한 공략은 신라군의 상황을 간파한 적절한 작전이었다. 그리고 이를 근거지로 다시 한강 유역까지 남하하는 공세를 시도하였다. 즉 이듬해 661년 5월에 술천성(述川城)과 북한산성(北漢山城)을 공격하였다. 술천성은 지금의 여주 일대로 정확한 위치는 알기 어렵지만, 여주시 금사면 이포리와 외평리의 경계를 이루는 태봉산 산성에 비정하기도 한다. 북한산성은 지금의 아차산성을 말한다. 즉 한강 중상류 일대를 공격한 것이다.

5월에 고구려 장군 뇌음신(惱音信)이 말갈 장군 생해(生偕)와 함께 신라 술천성(述川城)을 공격하다가 함락시키지 못하자 북한산성으로 공격 대상을 바꾸었다. 당시 북한산성 안에는 남녀 2800명밖에 없었지만, 성주 동타천(冬陀川)의 적절한 대응으로 20여 일 버텼고 결국 고구려군이 물러났다.

한강 하류 지역을 신라가 장악한 상황에서 당시 고구려군의 이동선은 아마도 임진강 상류에서 북한강 수계를 경유해 여주 술천성을 공격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신라의 한강 교통로를 끊어서 서울 지역을 고립시키려는 작전으로 이해된다. 술천성 공략에 실패한 고구려군은 애초의 목표인 북한산성을 직접 공격하였으나 이도 실패한 것이다. 신라는 비록 칠중성은 잃었지만, 그래도 북한산성을 지켜내서 한강 방어망을 어느 정도 수습하게 되어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고구려로서는 참으로 아쉬운 승부였다. 만약 북한산성을 손에 넣을 수 있었으면 한강을 방어선으로 삼을 수 있었고, 한강 이북에서 임진강 일대에 이르는 남부 방어선의 종심을 다소 두껍게 구성할 수 있어 신라군 공세에 대한 대응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었다.

예컨대 662년 1월에 신라 김유신이 이끈 평양행 군량 수송 작전도 훨씬 어려움이 많았으리라 예상된다. 어쩌면 661년 평양성 전투 결과도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661년 5월 한강변 작은 요충성인 신라 북한산성을 둘러싼 전투의 나비효과다.

[임기환 서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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