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윤석열 손 들어줬지만 '면죄부' 준 건 아니다

김정우 2020. 12. 2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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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 집행정지 법원 결정문 상세 분석]
재판부 분석 문건에 "매우 부적절하다" 질타
채널A 사건 감찰방해도 "징계사유 일응 소명"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은 "부당한 징계 사유"
"징계위 기피의결 위법".. 尹 승리 결정적 이유
추미애(왼쪽사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법원이 24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 처분 효력을 중단하면서 윤 총장 측 주장을 받아들인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이라는 징계 사유를 인정할 수 없고, 징계의결 절차에 ‘중대 흠결’이 있으며, 정직 2개월 처분은 ‘회복 불가능한 손해’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윤 총장이 낸 징계 처분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서 인용 결정을 내리며, 윤 총장 손을 들어주게 된 결정적 이유들이다.

그러나 법원이 윤 총장에게 ‘면죄부’를 줬다고 평가할 순 없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 평가다. 법원이 윤 총장의 부적절한 행동 및 책임을 지적한 대목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징계 절차 하나하나를 문제 삼으며 내세웠던 윤 총장 측의 위법성 주장도 대부분 기각했다.


"판사 문건, 악용 위험성... 추가 심리필요"

25일 공개된 33쪽 분량의 이 사건 결정문을 보면, 법원은 최대 논란이 됐던 ‘주요 사건 재판부 분석 문건’에 대해 “매우 부적절하다”며 윤 총장을 질타했다.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이 작성한 이 문건에 대해 재판부는 “판사들의 출신과 (과거) 주요 판결, 세평, 특이사항 등을 정리한 문건은 악용의 위험성이 있다”며 “차후 이런 문건이 작성되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사태에 대한 사과 표명을 하면서도 “범죄정보 외의 개인정보를 수집ㆍ사찰한다는 논란이 더 이상 일지 않기를 바란다”고 견제의 한마디를 덧붙이게 된 배경이다.

다만 정확한 판단을 위해선 본안 소송을 통한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법무부는 ‘수사정보정책관실은 사무규정상 수사정보만 취급할 뿐, 공소유지 정보는 취급하지 않는다’는 걸 전제했으나, 실제 업무에서 해당 문건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따져보자는 뜻이다. 또 △자료의 취득 방법 △문건 작성 목적 등에 대한 추가 심리 필요성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 윤 총장 측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측 모두에 의문을 표했다. 예컨대 “문건 내용은 법조인 대관, 인터넷 등 공개자료에서 얼마든지 확인 가능하다”는 윤 총장 측 해명에 대해선 “그렇다면 (굳이) 선택적 취합으로 문건을 만든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반대로 “재판부를 공격ㆍ비방하거나 조롱해 우스갯거리로 만들 목적으로 작성됐다”는 징계위원회 결론에 대해선 “제출된 소명자료로는 인정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채널A 사건 감찰, 중단사유 없었다"

‘채널A 감찰방해’ 혐의와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징계 사유로 일응 소명됐다”며 윤 총장 측에 다소 불리한 판단을 내렸다. 한동수 대검 감찰본부장의 조치가 현저히 부당하거나 직무 범위를 벗어난 경우에만 감찰을 중단시킬 수 있는데, 윤 총장은 ‘성명불상 검찰 고위관계자 감찰 개시’ 보고만 받고는 “감찰 활동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는 이유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신속한 감찰ㆍ수사 방해 목적이 윤 총장에게 있었는지는 충분한 심리가 필요하다”고 다툼의 여지를 인정했다. ‘채널A 수사방해’ 혐의에 대해서도 “대검 부장회의에 지휘권을 위임했다가 이를 번복해 전문수사자문단에 회부토록 한 건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 범위 내로 보이지만, 자문단 회부 요건 충족 등을 추가로 살펴봐야 한다”면서 판단을 유보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집행정지' 쟁점별 법원 판단. 그래픽=김문중 기자

"윤 총장 국감발언, 다양한 해석 가능"

재판부는 ‘정치적 중립에 관한 부적절한 언행 등 위신 손상’ 혐의는 “징계사유로 볼 수 없다”고 단언했다. 윤 총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 때 퇴임 후 정치 참여 의향을 묻는 질문에 “우리 사회와 국민들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천천히 생각할 것”이라고 답변해 정계 진출 가능성을 열어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고, 법무부는 이를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으로 봤다. 그러나 재판부는 “정치를 통한 봉사, 무료 변호, 다른 공직 수행을 통한 봉사, 일반 자원봉사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며 이를 확대해석해 징계 사유로 삼는 건 부당하다고 못 박았다. 이어 “차기 대선주자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게 윤 총장 책임은 아니다”고 하는 등 법무부가 ‘추측’에 근거해 징계 사유를 삼았다고 비판했다.


"기피의결 위법→징계 의결도 무효"

법원이 징계 절차 중 ‘명확한 위법’으로 밝힌 부분은 ‘징계위원 기피신청 의결’이다. 검사징계법 17조4항은 ‘재적위원 과반수 출석, 출석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기피여부를 의결하고, 기피신청을 받은 사람은 그 의결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돼있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징계위 인원이 7명이므로, 기피의결 땐 ‘4명 이상’이 출석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애초 5명이 출석했던 윤 총장 징계위는 ‘위원 2명 공통의 기피사유’에 대한 의결 때, 해당 위원 2명을 뺀 3명으로만 심리했다. 의결 정족수인 4명을 채우지 못했으므로, ‘부적법한’ 기피의결이 이뤄졌다는 게 재판부 지적이다. 같은 이유로 재판부는 “징계의결도 기피신청을 받은 위원들의 참여 아래 이뤄져 의사정족수 미달로 무효”라고 못 박았다. 징계의결 땐 스스로 회피 결정을 한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을 뺀 4명이 참여했는데, 이 중 3명은 앞서 위법한 기피의결 탓에 ‘기피신청 사유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본 것이다.


'회복 불가능 손해·긴급한 필요' 일부 인정

그럼에도 재판부 결정을 윤 총장의 온전한 승리로 해석하긴 힘들다. 재판부는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징계위원 임명 △심재철 국장의 기피의결 참여 후 회피△법무부의 징계기록ㆍ징계위원 명단 사전 비공개 등에 대해선 “위법하다”는 윤 총장 측 주장을 단 하나도 수용하지 않았다.

집행정지 판단 요건인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ㆍ긴급한 필요성 부분은 일부 인정됐다. 윤 총장 임기가 내년 7월 끝나는 사실을 들어 재판부는 “정직 2개월은 회복할 수 없는 손해로 볼 수 있고, 그 예방을 위해 집행정지를 할 긴급한 필요성도 인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검찰총장 징계는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 대한 정치적 보복’ ‘검찰의 독립성ㆍ중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등 윤 총장 측의 다른 주장은 기각됐다. 윤 총장 측은 또 “정직은 사실상 해임과 유사한 처분” “정직되면 식물총장이 될 것”이라고도 했지만, 재판부는 “별다른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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