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되면 징계한다고요?

노도현 기자 2020. 12. 2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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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pixabay


“우리 회사는 확진되면 징계라….”

하루에 1000여명씩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늘고 있다. 누적 확진자만 5만여명(12월 27일 기준)에 달한다.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사례와 무증상 감염자가 만만찮다. 직장인들은 ‘조직 내 1호 확진자가 돼선 안 된다’며 몸을 사린다. 조직과 지역사회에서의 낙인, 감염에 따른 인사상 불이익이 두려워서다. 지금의 확산세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감염됐는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확산 초기 언론에서 드문드문 보이던 확진자들의 불이익 사례가 곧 내 일이 될 수 있게 생겼다. 코로나19 확진을 둘러싼 징계는 어디까지 가능한 건지 알아봤다.

징계란 복무규율이나 기업질서를 위반한 근로자에게 내리는 불이익 조치다. 회사는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에 징계사유를 정할 수 있다. 이에 해당하는 비위행위를 저지른 직원을 징계하는 건 회사 재량이다. 다만 징계를 하려면 사유가 합당해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은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확진 자체는 정당한 징계사유 아냐

누구나 감염병에 걸릴 수 있다. 확진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릴 수 없다. 코로나19에 걸렸다는 사실 자체는 정당한 징계 사유라고 보기 어렵다. 이미 2020년 초 일부 기업에서 직원들에게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징계하겠다’는 취지로 공지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확진 후 완치돼 전파 가능성이 없고, 업무에 복귀해 일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단지 확진되었다는 것만으로 징계하는 것은 오히려 감염병에 대한 편견에 기반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에 확진되면 방역당국의 안내에 따라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거나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게 된다. 증상 유무에 따라 최소 10일 뒤부터 격리해제 기준이 충족되면 바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방역당국은 “최근 코로나19 전파력 관련 역학 및 바이러스 배양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발병 10일 후 전파력은 낮은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일터로 복귀한 완치자에게 동료들의 불안을 이유로 사직을 권고하거나 해고하는 사례가 언론 등을 통해 알려졌다.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건강보험관리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코로나19 확진 이후 직장가입 상실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 2월 1일부터 9월 23일까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진료비 승인을 받은 사람은 총 2만3584명이다. 이들 중 직장보험 가입자에 해당하는 6635명의 19.7%인 1304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 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유 중 하나로 코로나19 확진에 따른 2차 피해를 추측해볼 수 있다.

코로나19 확진 자체만을 이유로 해고를 당하거나 징계를 받는다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내 그 정당성을 다퉈볼 수 있다. 다만 사측의 권유를 받고 사직서를 낸다면 해고가 아닌 권고사직에 해당해 구제신청을 할 수 없다.

사내 방역지침을 어겼다면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회사가 대면 회의, 회식 등을 금지한다는 수칙을 제시했는데도 이를 위반했다면? 징계가 가능하다. 고용노동부의 표준 취업규칙을 기준으로 “회사의 규율과 상사의 정당한 지시를 어겨 질서를 문란하게 한 자”, “회사가 정한 복무규정을 위반한 자” 등의 징계사유가 근거가 될 수 있다.

수도권의 행정명령 이전부터 회식과 직원들의 개별 모임을 금지하고, 꼭 필요하다면 3인까지만 허용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동료 4명이 송년 모임을 하다 감염됐을 때 징계가 가능할까. 노무법인 ‘시선’의 김승현 노무사는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하느냐의 문제가 있다”면서도 “요즘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는 징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확진됐다는 결론이 문제가 아니라 과정을 봐야 한다. 요즘 (확진자가 나올 시 파급력이 큰 기관인) 병원에서 의료진의 사적 모임을 금지하고 있는데 모임이 감염경로가 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윤지영 변호사는 “지나치게 사생활에 개입하는 등 복무규율이 과도할 경우 그 자체가 효력이 없지만 상황을 따져봐야 한다. 업무 특성상 확진됐을 때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고, 좀 더 조심을 했어야 하는 환경 등의 이유로 3인 이하 제한이 합당하다고 볼 수 있으면 위반에 따른 징계는 적당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확진은 아닌 경우라면 어떨까. 예컨대 주점, PC방 등 방문을 자제하라는 사내 지침이 내려온 상황에서 직원 B씨가 PC방에 갔다. 그가 방문한 시간 확진자가 다녀가 자가격리를 하게 된다면? 법무법인 ‘우공’의 박상진 변호사는 “어떤 상황이든 비난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이 팬데믹 상황이 아니라면 퇴근 이후에 누가 어디서 무얼 하든 회사가 개입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 팬데믹 상황이고,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 격리되든 확진되든 업무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주의해야 한다. 비난 가능성이 회삿돈을 빼돌린 정도로 아주 강하진 않지만 징계사유는 될 수 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코로나19 지침을 위반한 행위가 징계사유라 해도 어떤 징계를 내릴지는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 2월 국립발레단의 자체 자가격리 지침을 위반하고 해외여행을 간 발레리노 해고 사건을 두고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모두 부당해고라고 봤다. 발레리노를 징계할 사유는 있지만 해고감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불복한 국립발레단이 행정소송을 내면서 공방이 법정으로 이어지게 됐다.

근로기준법이 아닌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등을 적용받는 공무원의 징계 역시 큰 틀에서 기준이 같다. 지난 11월 말 정부가 공무원과 공기업 등 공공부문에 특별지침을 내리고 이를 위반하면 ‘엄중 문책’하겠다고 밝히면서 종사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별지침은 업무 내외를 불문하고 모든 불요불급한 모임은 취소하거나 연기하도록 했다. 이를 두고 공직사회가 솔선수범해야 하는 건 맞지만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포 분위기가 비난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방역당국에 순순히 협조하기보다 숨어들게 만든다는 우려도 있다.

최근 코로나19 청정지역이었던 전북 순창군에서 보건의료원 간부가 첫 확진 판정을 받고 직위해제(일시적으로 직위를 부여하지 않아 직무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잠정적 조치) 돼 논란이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간부는 가족 간 감염으로 추정된다. 순창군은 “확진 이틀 전부터 증상이 있었고, 함께 시간을 보낸 딸이 맛을 느끼지 못하는 증상이 있는 걸 알면서도 출근했다”며 방역 책임 공무원으로서 사명을 다하지 못한데다 업무공백이 생긴 데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진정한 적은 사람 아닌 바이러스

“코로나19도 무섭지만 확진돼 물어뜯길까봐 겁난다.” 수도권에서 일하는 한 공무원의 말이다. 유명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지난 10월 말 성인남녀 1000명을 조사해보니 응답자의 67.8%가 코로나19 낙인·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4개월 전 조사(58.1%) 때보다 10%포인트 가까이 오른 수치였다.

낙인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낙인은 문제를 일으키는 질병에 집중하는 대신, 평범한 사람들을 향해 더 큰 두려움 또는 분노를 일으킴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또한 낙인으로 인해 사람들이 증상이나 질병을 숨기고 즉시 검진을 받지 않고 개인이 건강한 행동을 실천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낙인이 발병 확산의 통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라고 안내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비방이 도를 넘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지난 11월 집권 자민당은 코로나19 감염자와 그 가족, 의료 종사자에 대한 차별 해소를 위한 법안을 마련했다. NHK 등에 따르면 법안은 감염을 이유로 해고하거나, 완치자 또는 의료진 가족의 출근을 막거나, 의료진 자녀의 보육시설 이용을 거부하는 등의 사례를 들며 차별은 없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벌칙 조항이 없는 것이 한계다.

이미 일본 지자체들은 차별이나 편견을 막기 위한 조례를 제정했다. ‘STOP 코로나 차별’ 캠페인을 벌이며 “우리가 싸워야 할 진짜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바이러스”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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