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 뗀 전기요금 현실화, 어디까지 갈까

반기웅 기자 입력 2020. 12. 27.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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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새해부터 전기요금제가 바뀐다. 정부는 2020년 12월 17일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번 전기요금 체계 개편의 핵심은 유가 등락에 따라 전기요금을 조정하는 연료비 연동제 도입이다. 유가가 오르면 전기요금을 인상하고, 하락하면 요금도 인하한다. 3개월간 평균 유가가 기준연료비(50달러)보다 낮으면 전기요금이 내려가고 기준연료비보다 높으면 요금이 올라가는 구조다. 요금 변동폭은 직전 요금 대비 ㎾h당 3원, 최대 5원으로 제한했다. 급격한 전기요금 변동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다. 기후환경 요금 항목도 신설됐다. 신재생에너지 의무이행, 온실가스배출권 거래 등 그동안 전기요금에 명시하지 않고 부과했던 기후환경 요금을 별도로 고지한다는 취지다.

정부의 전기요금 체계 개편 발표 이후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탈원전 비용을 시민에게 떠넘긴다’는 비판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산업계도 전기요금 개편으로 전기요금이 올라 기업 채산성이 떨어진다며 우려를 표명한다. 전기요금 개편은 탈원전 정책에 따른 결과일까. 시민은 정말 값비싼 전기를 쓰게 되는 걸까.

한전 협력회사 관계자들이 주민들에게 발송할 전기요금 고지서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가 등락에 따라 조정 연료비 연동제

장기적으로 전기요금은 오를 가능성이 높다.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국제유가가 상승국면에 들어서면서다. 국제유가는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된 2020년 4월 배럴당 10달러 선까지 하락했다가 최근 40달러 선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계기로 2021년 상반기부터 국제유가는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2020년 수출입 평가 및 2021년 전망’ 보고서에서 “글로벌 경기 회복과 유가의 완만한 상승이 이어질 것”이라며 “석유화학과 석유제품 수출도 반등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요금 인상 폭은 제한적이다. 당장 2021년 1분기는 오히려 전기요금이 내려간다. 40달러 선에 머물고 있는 국제유가가 기준 연료비(50달러)보다 낮기 때문이다. 4인 가구 기준(월 350㎾h의 전기 사용) 한 달 전기요금은 1050원 정도 인하된다. 향후 유가가 기준 연료비를 넘어 서더라도 인상 폭은 미미하다. 월 5만5000원(월 350㎾h의 전기 사용) 요금을 내는 4인 가구의 경우 6개월에 최대 1750원을 더 내는 정도다. 연료비 급변동으로 전기요금의 추가 인상 요인이 발생한다 해도 곧바로 요금이 오르는 건 아니다. 전기요금 인상 전에 산업통상자원부가 기준 연료비를 재산정해 고시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편안에 포함된 연료비 연동제가 제도의 도입 취지를 살리지 못한 ‘무늬만 연동제’임을 강조한다. 주성관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연료비가 다시 올라가면 물가 안정을 목표로 요금조정을 할 수 있는 장치가 돼 있다”면서 “유가가 올라 요금을 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동작하지 않은 상황이 올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전기요금 개편과 지속 발전 방향 전문가 온라인 좌담회, 한국자원경제학회·대한전기학회).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경쟁 체제로 전력시장을 개방해야 연료비 연동제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전력시장에 정부가 개입해 통제하는 환경에서는 제대로 된 연료비 연동제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번 연료비 연동제 도입은 의미가 있는 변화다. 정부가 처한 정치적 상황에 따라 좌지우지되던 전기요금을 부분적으로나마 시장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첫 번째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기요금 인상은 ‘전기요금 현실화’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국가별 가정용 전기요금’ 자료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h당 8.02펜스(약 116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26개국 중 가장 저렴한 수준이다. OECD 26개국 가정용 전기요금의 평균은 ㎾h당 16.45펜스로 한국 요금은 평균의 절반 가격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내 총 전기판매량 3만9065GWh 가운데 절반 이상(58%)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의 요금 수준도 주요 국가보다 낮다. 2019년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h당 7.43펜스(약 107원)로 24개 조사 대상국 평균인 8.56펜스에 못 미쳤다(IEA·국가별 산업용 전기요금). 전기 생산자 물가지수는 2014년 100.53에서 2019년 98.28로 떨어졌다. 전기요금이 2.2% 하락한 것이다.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은 취임 초기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콩(연료)을 가공해 두부(전기)를 생산하는데 이제는 두붓값이 콩값보다 싸다”며 연료비보다 전기요금이 싼 현실을 토로하기도 했다.

낮은 전기요금은 에너지 수요의 왜곡현상을 부른다. 필요 이상의 전력을 소비해 전기사용량이 늘어나는 것이다. 한국의 1인당 전기사용량 증가세는 연평균 1.5%(2010년 이후)로 OECD 35개국 가운데 가장 빠르다. 과도한 전력 수요를 해소하기 위해 발전량을 늘리고 이 과정에서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량도 증가한다. 값싼 전기요금이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셈이다.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은 “전기사용량이 증가하는 이유는 요금이 고정돼 있기 때문”이라며 “전기요금 현실화를 통해 합리적인 전력 소비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탈원전 정책 이전부터 필요성 제기

그렇다면 이번 전기요금 체계 개편은 탈원전 정책에 따른 결정일까. 개편의 핵심인 연료비 연동제는 미국, 캐나다, 일본 등 OECD 주요 국가에서는 이미 통용되고 있는 제도다. 한국에서도 지난 2011년 시행 직전 단계까지 갔지만 물가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폐지됐다. 2013년 박근혜 정부도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시도했지만 역시 물가 안정 등을 이유로 무산됐다. ‘친원전’ 기조 아래에서도 연료비 연동제의 필요성이 대두돼 왔던 셈이다. 김선교 부연구위원은 “전기요금 체계 개편은 후진적인 전력시장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로 2005년부터 산업계, 전문가들의 논의에 따른 요청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특히 연료비 연동제는 탈원전 정책 이전부터 도입 필요성이 제기돼 왔던 사안”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연료비 원가를 신속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연료비 연동제를 개선하고, 기후위기 대응에 따른 비용 부담 논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지금보다 값비싼 전기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미 2019년 기준 2조6000억원에 달하는 기후비용(RPS 비용+배출권 구매비)을 지출했고, 앞으로 그린뉴딜과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 배출권 할당계획이 이행되면 비용 부담은 늘어난다. 에너지 전환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비용없이 재생에너지 확대가 가능하다고 잘못된 주장을 하는 것은 국민의 인식을 왜곡시키고, 기후변화 대응 자체를 어렵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그리드 패리티(화석연료 발전단가와 신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같아지는 시점)를 강조하고 비용의 하락을 공공연하게 주장하면서 비용 논의를 회피되고 있는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합리적 전기요금 체계로의 이행을 위한 정책과제 세미나·에너지경제연구원)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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