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공포증..누군가에겐 백신 주사가 코로나만큼 무섭다

이정호 기자 2020. 12.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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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뾰족한 주사기 바늘 끝에 맺힌 백신 방울에 ‘COVID-19’(코로나19)라는 글씨가 반사돼 비치고 있다. 현재 생산되는 모든 코로나19 백신은 액체 약물을 바늘 주사기에 담아 접종하도록 만들어졌다. 로이터연합뉴스
인구의 10%가 앓는 질병인데
출시 백신 모두 주사기로 접종
긴장 넘어 최악의 경우 ‘발작’
집단면역 ‘공백’ 변수 될 수도

“건강검진 때문에 병원을 찾았는데 아이가 피를 뽑지 못하게 하네요. 달래도 봤지만 바늘이 닿는 순간 팔을 빼버리니 난감해요. 혹시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올해 초 한 인터넷 맘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바늘 공포증(Needle phobia)’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초등학교 고학년생 자녀가 울음까지 터뜨리며 주삿바늘을 수일째 거부하자 엄마는 카페 회원들에게 조언을 구한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특정인에게는 사력을 다해 피하고 싶은 대상이나 상황이 존재하는 증상을 ‘공포증(phobia)’이라고 부른다. 트인 곳을 두려워하는 광장 공포증, 막힌 공간을 무서워하는 폐소 공포증, 높은 지점을 질색하는 고소 공포증 등 유형은 다양하다.

■ 인구 10% ‘바늘 공포증’

최근 세계 과학계에서는 ‘바늘 공포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 보급이 시작된 코로나19 백신의 투약 방식 때문이다. 현재 출시된 코로나19 백신은 모두 유리병에 담긴 약물을 뾰족한 바늘이 달린 주사기에 담아 팔뚝에 접종하는 방식을 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바늘을 보거나 생각만 해도 무서움을 느끼는 바늘 공포증 환자에게는 접종 자체가 고역이다. 숨이 가빠지는 것과 같은 긴장 상태를 넘어 발작까지 일으킬 수 있다. 영국과 캐나다 등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먼저 나선 국가에선 바늘 공포증에 대한 우려가 집중 제기되고 있다.

캐나다 캘거리대 케이티 버니 박사는 CBC방송을 통해 “인구의 10%는 백신 접종을 피할 정도로 주삿바늘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경고했다. 이달 초 영국 BBC도 정부 의료지원기관인 ‘앵자이어티’의 최근 조사를 인용해 바늘 공포증 환자 비율이 캐나다와 비슷한 전체 인구의 10% 수준이라고 전했다. 한국에선 바늘 공포증만 추린 통계를 내지 않지만 주삿바늘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만큼 역시 적지 않은 환자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 ‘집단면역’ 빈틈 생길라

바늘 공포증은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의료계에선 백신 접종으로 적어도 인구의 60%, 많게는 80%가 면역력을 지녀야 코로나19 ‘집단면역’이 형성될 것으로 예측한다. 면역력을 지닌 인구가 50% 선이면 집단면역이 형성된 것으로 보는 독감 예방접종 때보다 팔뚝을 주삿바늘 앞에 드러내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코로나19는 독감처럼 확실한 치료제가 없어 감염 예방을 위한 백신 접종이 더욱 중요하다. 이런 여건에서 만약 고위험군에 속한 시민이 바늘 공포증으로 백신 접종을 미루거나 끝까지 거부한다면 방역에 빈틈이 생기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성인은 독감 백신을 제외하면 주사를 맞을 일이 흔하지는 않다”며 “광범위한 접종이 필요해진 코로나19 국면으로 인해 바늘 공포증 인구가 명확히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공포 해결책 마련 서둘러야

바늘 공포증에 의한 문제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백종우 교수는 “병원으로 출발해 접종에 이르는 장면을 잘게 나눠 단계적으로 상상하는 일종의 ‘이미지 트레이닝’ 치료법이 쓰인다”고 말했다. 최명기 정신과 전문의는 “바늘 공포증은 어린이들에게 집중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성인들에게선 상대적으로 적다”면서도 “심적 부담이 심하다면 항불안제 투약 뒤 주사를 맞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적인 대응도 모색되고 있다. 지난달 세계경제포럼(WEF)은 ‘초소형 바늘(마이크로 니들)’을 2020년 신흥 기술 10선에 꼽으며 백신 보급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초소형 바늘을 얇은 패치에 모내기하듯 여러 개 꽂아 피부에 붙여 약물을 넣는 기술이다. 통증을 일으키지 않으며 겉모습이 반창고와 비슷해 기존 주사기처럼 기다란 바늘은 찾아볼 수 없다.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정준호 한국기계연구원 전략조정본부장은 “패치를 쓰면 간편하게 피부에 붙여 주사를 놓을 수 있지만 기존 제약사들의 생산라인은 약병과 바늘 주사기를 통한 접종에 맞춰진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새 주사 방식에 대한 연구와 함께 바늘 공포증에 대비할 지침을 준비하는 등 접종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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