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악몽의 자영업]상권 1번지의 몰락.."내년 2월까지 깜깜"
'임시휴업' 매장 앞 전단지만 수북
6층 건물 통임대 매물로 나오기도
헬스장·노래방·유흥주점 등 80% 폐업
프랜차이즈 식당·커피점도 휘청
[아시아경제 차민영 기자, 이승진 기자] 지난 22일 오후 찾은 종각역 일대 거리는 예전의 생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언제 임시휴업에 나섰는지 알 수 없는 가게 입구에는 각종 전단지와 공과금 내역서가 수북이 쌓여있었고, 거리에는 불 켜진 간판보다 임대 안내문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한 때 '상권 1번지'라 불리며 주변 직장인과 대학생들을 끌어모았던 종각역 일대는 옛 영광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한산했다. 종각역 지하쇼핑센터 12번 출입구부터 종로 3가역 14번 출구까지 700m 남짓한 거리에는 11개 점포가 텅 비어있거나 문을 닫았다. 이 가운데는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짜리 건물 전체가 임대로 나온 곳도 있었다. 그나마 대로변은 사정이 나았다. 종각 '젊음의 거리'는 점포 두 곳 중 한 곳이 불이 꺼진 상태였다. 청계천과 맞닿아있는 뒷 골목 쪽에는 상가 건물 1층 4개 점포 중 편의점을 제외하고 3곳이 모두 공실이었다.
가장 형편이 나쁜 업종은 단연 헬스장과 노래방, 헌팅포차류의 유흥시설 등 집합금지 업종이다. 종로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지난 5월부터 이 중 80%가량이 폐업한 상황이다. 건물 2·3층의 주점 대부분도 문을 닫거나 폐업 신청을 하고 새 임차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셔츠와 넥타이 등 인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남성복 매장들도 빠르게 사라졌다. 20년간 부동산 중개업에 종사해 온 유정한(가명)씨는 "부동산 일 하면서 단연 최악의 해를 보내고 있다"며 "일주일에 몇 건씩 가게 매매 문의가 들어오는데 내년 2월까지 가게를 내놓는 세입자들이 계속 늘어날 듯해 앞이 깜깜하다"고 혀를 찼다.
그나마 영업을 이어가는 식당들도 인건비 절감과 운영시간 단축 등 임시방편으로 버티는 중이었다. 연초 직원 30여명 가까이가 근무했던 대형 중식당에는 테이블 20개 모두가 비어 있었다. 직원수는 현재 3분의 1인 10명으로 줄었다. 베트남 포 전문 프랜차이즈 식당은 평일 종료 시간이 밤 10시 반이었으나 밤 9시로 1시간 반가량 당겨졌다. 24시간 국수집은 저녁 9시면 문을 닫는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커피로 유명한 한 커피전문점 지점은 매출이 전년 대비 70~80%가량 감소하면서 운영시간을 4시간이나 단축했다. 가장 바쁜 점심시간대를 통틀어 시간당 평균 손님이 5~6명에 불과해 인건비와 임대료를 제외하면 남는 게 없다. 한 식당 매니저는 "거리두기로 전체 테이블의 60%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가맹 본사가 일부 지원해주지만 매출 타격이 워낙 크다"며 "아예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와 매장 안에서 얘기를 나누다 가시는 분들이 많아 가끔 곤란하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편의점도 매출이 반토막났다. 4년간 편의점을 운영해 온 점주 김지혜(가명)씨는 "우리는 낮에는 근근히 먹고 살지만 식당과 술집이 문을 닫는 밤 9시 이후면 손님이 싹 끊긴다"며 "숙박업소들도 줄폐업을 하면서 담배, 술, 과자류 매출 타격이 크다"고 했다. 청계천 인근 상가 1층에 위치한 개인 편의점에서 만난 30대 아르바이트생 지현민(가명)씨는 "2년 이상 근무했는데 올해는 매출이 50% 정도 줄었다"며 "아예 직장인들이 출근을 안 하니까 주력 상품인 담배와 로또까지 안 팔린다"고 했다.
거리는 황폐해졌고 사람들은 갈 곳을 잃었다. 10개월 가까이 폐쇄된 종로구 낙원동 탑골공원 앞에서 발걸음을 잃고 인근 패스트푸드점을 전전하는 노년층 무리도 눈에 띄었다. 종각역 앞 롯데리아와 맥도날드는 눈치를 보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몇 안되는 장소다. 어림잡아봐도 30명 이상 빽빽히 들어찬 테이블 앞에는 커피 또는 콜라 1잔에 햄버거 1개가 놓여져 있었다. 70대 김흥순(가명)씨는 "예전에는 탑골공원에 가면 무료 배식도 있고 해서 동년배 사람들 얼굴도 볼 겸 종종 가곤 했다"며 "나이든 사람들이 시간 보낼만한 곳이 점점 더 없어지는 느낌"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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